‘먹고 마시기만 하는 송년회는 가라.’2005년 한해가 저물고 있다. 송년회는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내년을 다짐하기 위한 연말 모임이지만 ‘부어라, 마셔라’ 하는 음주문화는 아무리 주당이라도 부담스럽기 마련. 최근 기업들의 송년회 문화가 바뀌고 있다. 더 이상 두주불사하는 음주문화를 지양하고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승부한다는 전략이다. 각 기업들의 새로운 송년회 풍속도를 공개한다.

송년회 대신 ‘단체여행’ 인기

“야~호!!!”산 정상에 오른 ‘메트릭스’ 직원 A씨는 고함과 함께 묵은 스트레스를 날려버렸다. 인터넷 조사업체 ‘메트릭스’의 송년회는 매우 독특하다. 다른 회사의 송년회가 연말연시 흥청대는 도심의 분위기에 편승하는 것에 반해, 이 회사는 벌써 6년 째 송년회로 산행을 떠난다. 힘들게 산에 오르내리기 귀찮을 법도 하지만 오히려 직원들이 등산을 적극 추천한다. A씨는“1년 간 지쳐있던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데는 산행이 최고”라며 “등산하면서 땀 흘리고 서로 손 잡아주면서 인간적인 면을 볼 수 있어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고 말한다. 또“설원을 바라보고 있으면 탁 트인 바다만큼이나 시원하고 답답한 가슴을 풀어 헤치는 느낌을 받는다”며 겨울산행의 매력을 늘어놨다.

이처럼 ‘메트릭스 송년회’하면‘단체산행 가는 것’으로 생각하는게 당연시 돼 이제는 ‘관행’처럼 됐다고 홍보팀 관계자는 귀띔한다. 그는 또한“등산은 동료애를 재확인하고 자신감을 한층 강화시키는 새로운 계기가 된다”며“등산을 통한 직원들과의 화합은 팀워크를 향상시켜준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회사는 전년대비 매출액이 큰 폭으로 올라 작년 송년회만큼은 방콕으로 단체 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메트릭스’는 직원들 사기를 위해 올해도 어김없이 산에 오를 계획이다. 등반코스가 어렵지 않으면서 얼마전 내린 눈으로 멋진 설원을 기대, 덕유산으로 떠날 예정이다. 홍보팀 관계자는 주 5일제를 활용, 산행 후 스키 및 온천을 1박2일로 즐기는 것도 고려중이라고 덧붙였다.

‘패밀리 시상식’ 들어보셨나요?

리니지Ⅰ,Ⅱ로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는 ‘엔씨소프트’는 작년 송년회를 위해 롯데월드 어드벤처를 통째로 빌렸다. 밤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 갖가지 흥미로운 이벤트들이 진행된 이 회사의 송년회에서 딱 한 가지 빠진 것이 바로 술이다. 술 안 마시는 송년회를 기획한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해마다 흥청망청 먹고 놀기보다는 건전하게 즐길 수 있는 이벤트 준비에 고심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난 2001년에는 ‘수학여행’이라는 주제로 전 직원이 교복을 입고 안면도로 여행을 다녀왔고 작년에는 롯데월드 이벤트를 열었으며 올해도 뭔가 색다른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상상력이 돋보이는 ‘엔씨소프트’의 올해의 송년회는 바로 ‘패밀리 시상식’. ‘패밀리 시상식’은 말단사원부터 사장, 그들의 가족이 모두 참여해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이를 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흥청망청 노는 것은 아니다. 놀이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고 신뢰감을 쌓아 새로운 팀워크를 다지는 효과를 얻게 된다. 올 연말에는 직원들 가족 중심으로 문화공연을 관람할 계획이다. 또한 ‘올해의 베스트드레서’, ‘술자리 감초’, ‘의리 빼면 시체’ 등 직원들에게 독특한 상도 준비돼 있다. 부인 안마해 주기, 부인의 남편자랑 등 부인들을 위로하는 다양한 놀거리도 구성돼 있어 가족들과 함께 어우러져 흥을 돋울 예정이라고 한다.

‘불우이웃’과 함께 하는 송년회

‘굿모닝신한증권’은 사내 이벤트로 유명하다. 작년엔 각 지점의 직원을 20여명 선발, ‘마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색문화를 체험함으로써 직원들의 사기를 고조시키는 효과는 물론 사내 건전한 놀이 문화를 위한 회사측의 특별한 배려였던 것이다. 올해 역시 직원들의 신청을 받아 ‘아로마테라피’로 웰빙 체험을 할 계획이다. 강남 모 전문업체에서 정신건강을 상담하고 취향과 기분에 따라 원하는 아로마테라피 요법으로 정신적·육체적·심리적 스트레스를 치유한다는 게 골자. ‘굿모닝신한증권’은 특히 지난 8월부터 사내에 ‘미니올림픽’이라는 게임을 개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미니올림픽’은 직원들이 참가비를 내고 함께 각종 경기에 참여하고, 모금한 참가비는 1위를 한 직원이 희망하는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프로그램이다. 모금된 참가비는 연말에 결식아동 돕기, 희귀병 어린이 등을 돕기 위한 단체에 기부한다. 또 ‘모아해피’라는 이름으로 1만원 미만의 급여 자투리를 모아 발렌티어(지원자, 자원봉사자)로 활동, 불우이웃기관에 정기적으로 기탁해 오고 있다. 홍보팀 관계자는 “회사가 먼저 모범을 보이면 젊은 직원들도 봉사에 대한 마인드가 생길 것이라는 판단 하에 이런 이벤트를 마련했다”고 한다. 이런 행보는 갈수록 각박해져 가는 사회분위기 속에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기분 좋은 청량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 ‘연말을 노려라’ 판촉전 치열!

불경기로 인해 송년회를 점심에 하거나, 술 없이 간소하게 넘어가는 것이 일반화되면서 연말 술 소비가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류업계의 각오는 더욱 비장하기만 하다. 주류업계 관계자 A씨는 “12월은 이것저것 회식 모임이 많아 술 소비가 많은 편인데, 올해에는 작년보다 더 힘든 실정”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이에 위스키업계는 줄어든 시장에서 선두를 놓치지 않기 위해 예년보다 강도 높은 마케팅을 전개할 태세다.

또 와인업계는 차분한 송년회의 수혜를 기대하고 있고, 지방소주사는 하이트와 진로의 위력을 경계하며 스타마케팅을 전개, 1위를 고수하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A씨는 “해외여행을 보내주고 값비싼 ITㆍ가전제품 등 푸짐한 경품을 안겨주는 것은 기본”이라며 “송년회에 현금을 보내는가 하면 낭만적 분위기 공간으로 가족ㆍ연인을 초대하는 문화마케팅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웰빙 바람을 타고 ‘술 덜 먹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주류업계의 송년마케팅 전략이 먹힐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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