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하고 치열했던 대선전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당선으로 끝났다. 박빙으로 달아오른 대선 열기는 박 당선자의 아버지 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고 윤보선 전 대통령이 5·16 군사정부의 민정이양 후 첫 맞붙은 1963년 대선전을 방불케 했다. 그때는 계층간·지역간·이념간 갈등이 없는, 오로지 누가 국가를 더 위하고 나라를 살찌게 할 수 있는냐가 유권자 판단의 기준이었다.
오늘처럼 후안무치적 이념대립이 일어날만한 터전 자체가 용납되지 않는 ‘반공’ 국시 제1호로 뭉친 대한민국이었다. 민주화 이후 군사독재에 맞섰던 많은 재야세력과 민주화 세력들 가운데 그간 민주화투쟁 명분으로 포장했던 친북 내지 종북적 인사들이 그 이념성향을 서서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급기야 좌파 정권이 만들어졌고 국가보안법이 거의 사문화 되면서 종북세력은 더 이상 꼬리를 내리거나 감추지 않았다.
오히려 진보의 허울을 쓰고 종북이념 전파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공권력 무력화에 매진했다. 이번 18대 대선에 나타난 겉치레만 보면 야권 진보세력이 총궐기한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소수의 지휘 세력이 만든 철저한 선거교본에 의해 선거판이 요동친 흔적이 짙다. 좌파정당은 열성당원 몇 명이 끌고 간다는 말이 있잖은가, 민주당에 혐오감을 나타낸 안철수 씨가 노란 목도리를 들고 광화문 문재인 유세장을 찾은 대목이 그들 선거교본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했다.
이에 위기를 느낀 보수 세력이 결집은 했지만 보수에겐 어떠한 교본도 지침도 없었다. 모든 좌파의 공격을 박근혜 후보의 뚝심 하나에 의존하는 상황이었다. 문재인 후보가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공격하면서 박근혜에게 안주인으로서의 절반의 실정 책임이 있다고 맹공을 퍼부어도 그에 맞서는 논리조차 시원하지를 못했다.
세간에선 벌써부터 이명박 대통령 측이 다음 정권을 박근혜가 맡기보다는 차라리 야당이 집권하기를 바란다는 말이 횡횡했다. 때마침 선거 판세가 박빙으로 흐르자 지난 이명박 대선 캠프의 좌장 역할을 했던 김덕룡 전 의원이 문재인 지지를 선언했고 곧바로 4대강 사업의 실행 닻을 올린 정운찬 전 총리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민주당 지지에 나선 이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반박 논리가 충분했었다.
박근혜 당선자는 10년 넘게 대통령을 준비해온 사람이면서 대통령 할 생각이 전혀 없이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후 ‘폐족’을 칭했던 사람에게 고전했다는 사실 자체가 박근혜 캠프의 전략 부재였다. ‘필살기’ 없는 박근혜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뚝심만이 돋보였다. 역설적으로 그만큼 논공행상의 부담이 덜하긴 하다.
양당제에서의 이념 경쟁은 정책 경쟁으로 나타나야 정상이다. 꼼수를 부리고, 뒤집어씌우기로 일관하고, 애국가도 거부하는 세력이 법을 악용해서 수십억을 먹튀하는 이런 이념세력에 대한 혐오가 이번 18대 대선의 유기물로 떠올랐다. 새정부의 ‘새정치’ ‘시대교체’는 바로 이런 문제를 척결하고 바로 잡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선거가 단순한 정권교체의 수단이 아닌 공공의 선(善)을 실현하는 수단이 돼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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