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같이 떠들썩하게 신문과 방송 뉴스를 뒤덮던 대통령 선거가 끝나 조용해졌다. 그러나 다시 흥청대는 연말연시 망년회로 주변이 들썩댄다. 12.19 대선에서 승리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송구영신 모임에 나서는 연회객들에게 가볍게 띄우고 싶은 말이 떠오른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은 대선 운동기간 중엔 생선가게 아주머니의 비린내 나고 젖은 손도 덥석 잡으며 서민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그러나 당선된 뒤 청와대로 들어가면 구중궁궐속 임금님처럼 고고하게 군림한다. 유세 중 침이 마르도록 외쳐댔던 보통사람의 온기는 없다.
하지만 선진국 국가 원수들은 구중궁궐에 들어가서도 옛날 그대로 살아간다.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만 해도 그렇다. 그는 취임 후 첫 미국 방문길에 나섰다. 그는 보잉747 점보 항공기를 전세내지 않고 민간 여객기를 탔다. 1등석도 아니라 비즈니스석 이었다. 경제난으로 영국인들이 고생하고 있는 터에 혼자만 널찍한 전세기를 탈 수 없다는데서였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외부 행사를 위해 길거리에 나설 땐 일반 차량들을 신호통제로 차단해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하고는 텅 빈 거리를 달린다. 하지만 영국이나 독일을 비롯한 서유럽 국가 수뇌들은 일반 차량 흐름과 같이 신호등을 기다린다. 그게 민주주의의 참된 모습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유세 중 “민생 대통령”을 강조했고 당선 후 첫 모임인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도 “민생 대통령”이 되겠다며 되풀이했다. 보통사람의 삶인 민생을 보살피며 함께 아픔을 나누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약속이다. “민생”을 위해 박 당선인이 해야 할 일은 정치·경제·문화적으로 복잡하고 다양하다. 그러면서도 박 당선인이 “민생 대통령”으로서 소박하고 손쉽게 보여 줄 수 있는 대목이 있다. 외부행사에 나설 때 시끄럽게 사이렌을 울려대며 일반 차량들을 막아 “민생”을 고달프게 하지 말고 “민생”과 함께 섞여가며 신호등을 기다리는 일이다. “민생”과 함께 하겠다는 “민생  대통령” 공약의 첫 걸음이다.
보통사람들의 연말연시 모임도 허례허식에 들뜰 필요가 없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 미국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의 서울 롯데호텔 숙박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작년 3월 서울에 왔다. 롯데호텔측은 그에게 1200만 원 짜리 국빈전용 스위트룸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그는 가장 싼 200만원 스위트룸으로 들어갔다. 그 날 저녁 롯데그룹 신동민 회장이 그를 초청하면서 메뉴를 물었다. 버핏의 답변은 간단하였다. 맥도널드 햄버거와 코카콜라였다.
지난 5월 ‘페이스 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가 28세로 결혼식을 올렸다. 그의 결혼식은 검소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초대하는 90명에게도 결혼식을 알리지 않았고 장소는 자신의 집 뒤뜰, 피로연은 동내 식당서 주문한 요리, 디저트는 초콜릿, 등 조촐하기 그지없었다.
전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러시아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도 오찬을 햄버거로 대신했다. 그들은 2010년 6월 버지니아 주 알링턴에 있는 한 햄버거 가게에 들러 햄버거를 들며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식사 후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공동기자회견에서 햄버거 예찬론을 빼놓지 않았다. 그는 햄버거가 “몸에 썩 좋을 것 같지는 않지만 아주 맛있다.”며 “미국의 영혼을 담은 음식”이라고 했다.
우리의 송구영신 회동도 호화스런 호텔이나 요리집의 주지육림(酒池肉林) 보다는 조촐한 식당을 찾아 순두부찌개와 파전에 막걸리를 곁들이는 메뉴로 족하리라 본다. 그것이 바로 한국의 “영혼을 담은 음식”이며 뜻 깊은 ‘송구영신’의 “영혼”이 숨 쉬는 모임이 아닌가 싶다.
박근혜 당선인도 외출할 때 요란한 교통통제로 “민생”을 불편케 하기 보다는 “민생”과 함께 신호등을 기다린다면 거기에 “민생 대통령”의 “영혼”이 살아 숨 쉰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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