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 대입을 앞둔 고등학생 신분으로 학내 종교의 자유를 외치며 장장 46일간이나 단식투쟁을 펼쳐 화제를 모은 강의석(20). ‘목숨’을 건 단식으로 교내 종교선택권을 얻어낸 그는 서울대 법대 수시모집에 합격하며 또다시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한동안 잠잠하다 싶더니 그는 뜬금없이 ‘권투 신인왕’을 선언하고 나섰다. 또 종교자유를 위해 1인시위와 거리행진, 공익 소송 소장 접수를 준비하고 있는 등 ‘운동가’로서의 활동도 재개했다. 그러나 ‘유명세’만큼 그를 둘러싼 갖가지 소문들도 여전히 무성하다. 또래답지 않은 특출난 행동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그의 요즘 생활은 어떨까.9월 27일 오전. 서울대 법과대 건물앞에서 강씨를 만날 수 있었다.

노랗게 물들인 머리에 니트와 면바지 차림의 그는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단식 당시 몸무게가 50kg까지 빠졌던 그는 현재 77kg의 건장한 모습으로 법대생으로서의 학업과 복싱대회 준비, 종교운동가로서 그 누구보다 바쁘고 치열한 삶을 살고 있었다. 두꺼운 법전대신 스피커를 들고 나타난 그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종교자유의 이행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하기 위해 가는 길이었다. 항간에서는 부푼 꿈을 품고 들어간 서울법대를 한달만에 그만두고 뜬금없이 권투를 한다며 그를 비난했지만, 확인결과 그는 이번 학기에 복학해서 열심히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또 10월에 있을 아마추어 시합을 위해 아침저녁으로 집근처 신도체육관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하고 있다. 고등학교때 대입준비로 그만둔 복싱을 다시 시작한 이유에 대해 그는 “도전의식을 느낄 수 있어서”라고 말했다.

보통 서울 법대생들이 1학년 때부터 사시를 준비하며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하는 것에 비춰볼 때 그는 확실히 ‘튀는’ 청년임이 분명했다.단식투쟁과 퇴학, 삭발 등 갖은 우여곡절 끝에 들어간 서울대 생활은 어떨까. 그는 “공부는 재미있어요. 다 좋은데, 집에서 너무 멀어요”라고 말한다. 그는 짐이 없는 날은 집인 청량리에서 신림동의 학교까지 1시간에 걸쳐 자전거로 통학을 하고 있다. 강씨에 대한 평가는 크게 두가지로 엇갈린다. 불의에 저항하는 용기있는 청년운동가와 언론플레이를 하는 영악한 철부지가 그것이다. 항간에서는 그가 수시전형을 앞두고 단식투쟁을 강행한 점을 두고, 서울대 입학을 노린 ‘술수’였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또 서울대에 입학하자마자 휴학을 한 것을 두고 학습능력 미달이나 공개 프로포즈를 했다가 거절당했기 때문이라는 소문도 있다. 또 단식투쟁이나 1인시위, 챔피언 도전과 같은 특이한 행동도 언론의 시선을 끌어 나중에 정치판에 입문하기 위한 사전작전이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그에 따르면 정치에 관심은 있지만 정작 정치인이 꿈은 아니다. “제 미래에 대해 딱히 고정된 틀을 정해두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것이 그의 말이다. 사시를 볼지도 아직은 결정하지 않은 상태. 그렇지만 비리와 안위에 젖어 있는 타락한 정치인이 아니라, 세상의 부조리한 것들을 바로잡는 일이라면 발벗고 나설 의향이 있다고 한다. 자신에 대한 일부의 맹목적인 비난과 오해, 갖가지 루머들에 억울할 법도 한데, 그는 의외로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오해를 받아 속상할때도 있지만 저에 대해 잘 모르니까 그런거겠죠. 또 모두들 저를 나쁜 쪽으로 평가하는 것만은 아니에요”라며 웃어넘긴다. 다만 일부 언론에서 ‘종교의 자유’라는 자신의 취지와는 별도로 자신을 대광고및 특정 종교간 대립구도로만 몰아가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는 것. ‘찔러도 피 한방울 안나올 것’같은 그는 실제로 만나본 결과 예의바르고 깍듯한 청년이었다.

46일간이나 단식을 감행한 ‘독종’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만큼 그는 차분했으며, 세상 곳곳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었다. 건드리면 터질 듯한 운동권 기질이나 투사적 성향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자신으로 인해 마음고생을 하면서도 아들을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인간적인 면을 보이기도 했다. 깡으로 똘똘 뭉친 운동권 스타일일줄 알았는데 의외라는 말에 그는 “제가 정말 그렇게 독종으로 보였나요?”라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워낙 돌출행동을 하는 까닭에 주변에 친구가 없을 것 같다고 하자, 그는 크게 웃더니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어찌보면 그는 세상과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부에서는 그의 순수한 의도를 단순히 ‘튀기위해’ 하는 ‘쇼’쯤으로 여기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싸잡아 손가락질을 하기도 하지만 그는 자신이 옳다 생각하는 일을 추진하는 강단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젊음’은 최대의 무기. 그는 “세상이 뭐라해도 저는 제 갈길 갑니다.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 또 하고 싶은 일을 할 뿐”이라며 바쁘게 발걸음을 옮겼다. ‘최연소 사시합격?’, ‘최연소 국회위원?’, ‘세계 복싱 챔피언?’ 그의 행보는 도무지 예측이 불가능하다. 심지어 농부나 장사꾼, 회사원, 한 가정의 가장 같은 평범한 서민으로 살아갈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언제 어떤 모습으로 또 한번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저 연애중이에요”

세상의 부조리한 부분을 바로잡고 세상을 바꾸는 ‘사명’을 부임받은 듯한 그도 ‘사랑’앞에서는 로맨티스트였다. 사랑고백 역시 ‘강의석 답게’ 화끈하게 시도했다. 지난 학기 300여명이 듣는 교양과목 수업에 불쑥 들어와 사회대 여학생에게 장미꽃으로 공개 프로포즈를 한 사실은 알만한 이들만 아는 비밀이다. 모르는 척 그 여학생과는 잘 되고 있냐고 물었더니 그는 “앗! 그건 또 어떻게 아셨어요?”라며 깜짝 놀라더니 “그게 어떻게 된거냐면요… 하튼 좀 복잡해요”라며 넘긴다. 결과는 실패.그러나 그는 실연의 상처로 돌연 휴학했다는 소문과 달리 전혀 부끄러운 기색이 없었다.

그에게 있어 공개 프로포즈 역시 하나의 도전이었던 셈이다. 그는 “사실… 현재 100일 넘게 사귄 여자친구가 있어요”라고 슬그머니 말을 꺼낸다. ‘일등 신랑감’이자 ‘최고의 엘리트‘인 서울법대생의 연애상대가 18살 회사원이라는 것은 다소 의외였다. 그러나 그는 “사람을 좋아하는데 학벌이나 직업, 환경같은 조건이 뭐가 중요한가요?”라고 되물으며 “제 여자친구는요 예쁘고 착하고 너무 좋은 여자예요. 특히 저를 많이 좋아해줘서 고맙고 좋아요”라며 연신 함박웃음을 지어보였다. 그에게서 서울법대생의 엘리트 의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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