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는 선거전에서는 졌지만 패장(敗將)으로서 아름다운 전적(戰跡)을 남겼다.
“너를 죽여야 내가 산다“는 사생결단의 살벌한 대선에서 그는 부드럽고 맑은 모습을 시종일관 잃지 않았다. 마치 올림픽 경기에 출전한 선수와 같은 페어플레이(공명정대)와 중세기 기사도(騎士道) 같은 반듯한 정신을 보여주려 애쓴 흔적이 뚜렸했다. 그동안 우리나라 선거 마당에서 고질적으로 표출되었던 살기등등한 추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언론매체들은 문 후보가 12월 19일 밤 대선 패배를 깨끗이 승복했다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어떤 신문은 ‘아름다운 승복’이라고 주먹만한 크기의 제목도 달았다. 그렇지만 ‘아름다운 승복’은 기실 오래 전부터 우리 선거문화에 정착된 모습이다.
2007년 17대 대선에서 패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도 아름다운 승복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국민 여러분의 선택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했다. 16대 대선에서 낙선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도 “당선된 민주당 노무현 후보에게 축하한다.”고 했다.


이미 1987년 민주화 이후 ‘아름다운 승복’ 관행은 정착되었다. 옛날처럼 “부정 선거 승복 못한다”느니 “정신적인 대통령은 나” 라는 등의 외마디 소리는 사라진지 오래다.
그러나 문 후보가 올 18대 대선에서 보여 준 모습은 통과 의례로 말하는 ‘아름다운 승복’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대선 기간 거친 선거판에서도 예의를 지킬 줄 아는 신사도와 공명정대한 정치적 경쟁을 보여주었다.


그는 세 번에 걸친 대선 후보 3자 TV토론에서도 절제되고 예의를 잃지 않는 모습을 드러냈다. 치고받는 가시 돋친 토론 중에서도 한 번도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거친 표정을 터트린 적이 없다. 그는 늘 말 끝 마다 “박 후보님”이란 “님”자를 빠트리지 않았다. 여성에 대한 기사도 정신을 연상케 하였다. 도리어 박 후보가 문 후보에게 “님”자를 빼고 “문 후보”라며 말을 자를 때가 있었을 따름이었다.
여론조사에서 밀리는 후보는 으레 지지도를 만회하기 위해 토론에서 상대편에게 공격적으로 나서기 마련이다. 선거 전략의 기본 교과서이다. 하지만 문 후보는 세 번에 걸친 TV토론에서 절제를 잃지 않고 차분하게 끝까지 임하였다. 그밖에도 그는 TV토론 중 박 후보가 주장하는 말에 가끔 “옳은 말씀“이라고 공감하는 여유도 보였다.


문 후보는 유세기간 중 박 후보와 함께 같은 행사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 때 그는 연설문을 읽어내려 가던 중 박 후보를 비판하는 대목이 들어있자, 순간적으로 “새누리당‘으로 고쳐 읽는 예를 잃지 않았다고 한다.
문 후보는 “국기나 애국가를 부정하는 정치세력과 정치적 연대 같은 것을 할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초박빙의 경쟁 속에 1표도 아쉬운 판국에 애국가를 부정하는 세력의 표를 얻어 당선되고 싶지는 않다는 결연한 의지 표명이었다. 그의 깔끔한 매너에 일부 보수층 유권자들은 그에게 표를 주고 싶은 충동을 금치 못했다는 말도 들린다.


문 후보가 대선기간 중 유감없이 나타낸 기사도와 페어플레이 정신은 대한민국 선거사상 유례를 찾기 어렵다. 특전사령부 A급 병사 생활로 단련된 남성다운 기개, 태권도와 유도로 다듬어진 스포츠 정신, ‘흥남 철수“ 난민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적 연탄 리어카를 끌며 체질화된 약자에 대한 연민의식, 등이 영글게 한 결정체로 보인다.
문 후보는 대선에선 졌지만 한국 대선 역사에 기리 기억될 아름다운 발자취를 남겼다. 그가 보여준 기사도와 페어플레이는 앞으로 모든 후보들에게 귀감이 되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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