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 사건 시작

지난 2003년 4월 22일 밤 러시아의 한 노래주점. 10여명의 한국인들이 러시아 여성접대부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들은 시민의 혈세로 해외시장 개척에 나선 경남 마산시의 ‘동유럽 시장개척단’으로 시장과 시의원 4명, 공무원, 기업인들이 포함돼 있었다.여흥이 끝날 무렵, 황철곤 마산 시장이 먼저 자리를 뜨자 한 공무원이 김석형 시의원에게 다가가 “준비된 자리로 가시죠”라며 분위기를 띄웠고, 김 의원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김 의원이 자리를 옮긴 것은 노래주점 화장실을 통해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는 이른바 ‘창고방’. 어두운 조명에 침대가 딸린 작은 방이었고 거기서 러시아 여성접대부와 ‘부적절한 행위’가 이뤄졌다. 그리고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해외시장 개척활동을 벌이고 돌아온 지 10개월 뒤인 지난해 2월 10일. 평소 마산시정에 대해 ‘입바른’ 소리를 자주 했던 것으로 알려진 김 의원은 시장 보좌관인 배 모씨로부터 협박을 당해야 했다.

열달후 협박 시작

다가올 시의회 임시회에서 민감한 시정현안을 따지려고 벼르든 김 의원에게 배 보좌관은 동영상을 캡쳐한 사진을 은근히 들이밀었다. 그 사진에는 김 의원과 러시아 여성이 ‘부적절한 행위’를 하고 있는 장면이 희미하게 나타나 있었다. 황급히 사진을 뺏으려던 김 의원과 보좌관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고, 급기야 밀고 당기는 몸싸움으로 이어지면서 김 의원이 이마를 다쳤다. 소동이 벌어지자 김 의원 옆 사무실에 있던 정 모 시의원이 김 의원 사무실에 들어가 싸움을 말리는 과정에서 김 의원이 정 의원을 향해 외쳤다. “보세요. 이 X이 시정질문을 못하게 협박합니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사진을 본 정 의원이 “사진의 출처가 어디냐? 왜 이런 것을 내놓느냐”며 추궁했으나 배 보좌관은 “업무와 관련해 설명드릴 것이 있어 왔다가 이면지로 사용하려고 한 종이가 떨어졌을 뿐 협박할 의도는 아니었다”면서도 사진의 출처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김 의원은 당시 “배 보좌관이 찾아와 사진 2장을 보여주며 ‘이것이 알려지면 김 의원의 정치생명이 끝장인데, 그래도 시정질문을 하겠느냐’며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러시아를 다녀 온 뒤 4개월쯤 지난 그해 8월, 러시아에서 술값을 지불한 기업인 배 모씨로부터 만나자는 얘기를 듣고 마산시내의 한 일식집에 나갔더니 기념사진으로 보관하라며 같은 사진을 내보이는 등 협박한 사실도 있다”고 덧붙였다.이때부터 황철곤 마산시장측과 김 의원간의 무차별 폭로전이 시작된다. 김 의원은 황 시장이 승진인사를 대가로 1,000만원의 뇌물을 받았다고 폭로했고, 황 시장측도 김 의원이 여과설비업체 사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몰카사건으로 확산

양측의 폭로전은 이밖에도 각종 이권을 둘러싼 뇌물수수와 협박으로 확산됐고, 급기야 김 의원이 ‘몰카협박’ 사건까지 공개하기에 이르렀다.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황 시장을 불구속 기소하고 김 의원은 영장실질심사를 거쳐 구속하는 한편, 시장 보좌관인 배씨 역시 구속했다.그리고 창원지방법원 제1형사단독 윤장원 부장판사는 지난 22일 보좌관 배씨에 대한 공판에서 “공무원 신분으로 시의원의 시정 질문을 못하게 하려고 협박한 사안은 죄질이 나쁘다”며 공소사실을 모두 사실로 인정하고 징역 10월을 선고했다.

배후에 누가 있나?

하지만 검찰의 기소내용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나 일반인들의 시선은 ‘부적절한 행위’를 누가 왜 촬영했는지에 대해 쏠려 있다. 재판 과정에서 나온 피의자나 증인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러시아 마피아로부터 1만달러의 돈을 주고 샀다”는 기업인 배씨의 주장과는 달리 시장 보좌관이 직접 촬영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재판부도 공소내용 외에는 언급하지 않는 관례를 깨고 이례적으로 “시장 보좌관이 직접 촬영한 것 같다”고 말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문제는 구속된 김 의원의 주장대로 보좌관이 직접 촬영하게 된 배경에 황철곤 마산시장이 개입했느냐의 여부다. 김 의원은 재판도중 줄곧 캠코드를 들고 다니던 배 보좌관이 직접 촬영했다는 주장과 함께 ‘황 시장 배후설’을 강력히 주장해 왔다.또 황 시장이 “김 의원의 항의가 있어 보좌관과 화해를 시킨 적이 있다”고 말했다는 증언과 함께 러시아 노래주점에서의 술자리 역시 시장이 주선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황 시장 비서실 관계자는 이에 대해 “시장은 출장 중이다. 얘기할 입장이 안 된다”고 말하고 “1심 결과에 불복해 항소한 만큼, 그 결과를 지켜봐야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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