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장’ 문재인의 심상찮은 움직임... 비주류 “자중하라” 일침

▲ 12·19 대선 패배 이후 칩거에 들어갔던 민주통합당 문재인 전 대선후보가 지난해 12월 30일 오전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일요서울ㅣ정찬대 기자] 민주통합당 문재인 전 대선 후보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대선 패배에 대한 책임으로 두문불출하던 시간은 일주일여 남짓. ‘패장’ 문재인의 회복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책임론’으로 어깨가 움츠렸던 친노진영은 문 후보를 중심으로 다시금 전열을 정비하는 분위기다. 당내 일각에선 ‘자숙해야 한다’며 우려스런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문 후보는 ‘비관주의자’를 운운하며 정면 돌파를 시도하는 것은 물론 “비대위에 힘을 실어주겠다”며 향후 정치적 행보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

대선 패배에 대한 책임론으로 민주통합당이 자중지란에 빠진 가운데 문재인 전 대선후보가 열흘간의 칩거를 끝내고 본격적인 외부 활동을 전개했다. 문 후보는 지난해 12월 27일 부산을 방문, 한진중공업 노동자 고 최강서 씨의 빈소를 깜작 방문한데 이어 같은 달 30일에는 광주 5.18 국립묘지를 참배, 이 지역 원로들과 회동을 갖는 등 외부 일정을 소화했다. 또한 신년에는 이해찬 전 대표를 비롯한 친노계 핵심 인사들과 함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하기도 했다.

대선 패배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문 후보의 정중동 행보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관측됐다. 본인 스스로도 “개인적인 꿈은 끝났다”며 애써 중앙 정치와 거리를 두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 때문에 지역구 활동에 전념할 것이라는 전망도 높게 점쳐졌다.

그러나 연말연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광주와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인 김해를 잇달아 방문하면서 정치 행보를 본격화하고 있다. 자신에 대한 퇴진론에는 “비대위에 힘을 보태겠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당내에선 찬반 논란이 불거졌고, 친노가 또 다시 당 전면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우려스런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文 ‘칩거 끝’... 외부활동 재개

문 전 후보의 행보가 더욱더 주목을 받는 이유는 그가 보여주는 정치적 행보와 함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한 거침없는 발언이 다양한 정치적 해석을 낳고 있다는데 있다.

대선 패배 후 일주일 남짓 지난 12월 27일 한진중공업 노동자 고 최강서 씨의 빈소를 비밀리에 찾은 문 전 후보는 “벌써 다섯 분이나 돌아가신 만큼 문제가 심각하다. 이 문제 만큼은 싸우겠다. 민주당에서 비상대책위가 구성되면 당 차원에서 도울 방안을 최대한 강구해 도왔으면 좋겠다. 박근혜 당선인도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노동자들의 잇따른 죽음에 대해서도 박 당선인을 향해 “노동자들의 아픔에 앞장서 관심을 기울여 달라”며 “이것이 국민대통합의 출발점이 아니겠느냐”고 거듭 당부하기도 했다.

지난달 30일 공식일정으로 광주를 찾은 문 전 후보는 향후 정치적 행보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밝히기도 했다. 이날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한 뒤 지역 원로들과 회동을 가진 그는 “5년 뒤로 정권교체의 꿈을 미뤄야 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이어 비대위 참여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논의된 적은 없다”면서도 “비대위가 마련되면 힘을 보태겠다”고 전했다.

광주 방문이 자신의 정치 행보를 나타낸 것이었다면 김해 방문은 향후 친노계의 전면적 행보를 암시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지난 1일 문 전 후보는 노 전 대통령의 묘소가 있는 김해 봉하마을로 향했다. 노무현재단 주최로 열린 이날 신년 참배식에는 이병완 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 민주통합당 이해찬 전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 이광재 전 강원지사,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 참여정부 출신 핵심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참배객만 1천여 명이 넘었다.

친노 건재함 여전... 文 중심으로 결집

노 전 대통령 신년 참배식은 친노의 세를 잘 보여준다. 특히 이날 행사는 야권 재편을 앞두고 친노계가 문 전 후보를 구심점으로 또 다시 뭉치는 계기를 만들어줬다는 점에서 정치권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대선 패배의 책임론으로 그간 움츠렸던 친노진영은 문 전 후보의 행보와 함께 힘을 결집하는 모양새다. 당내에서도 일부 쇄신파 의원들을 제외하고는 상당수 의원들이 ‘친노 책임론’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더욱이 당 쇄신을 책임질 박기춘 원내대표는 문 전 후보를 보란 듯이 비호하고 나섰다. 그는 지난 4일 한 라디오인터뷰에서 문 전 후보의 향후 역할과 관련, 당 안팎의 의견이 엇갈리는 것에 대해 “그에 대한 의견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며 “다만, 문 전 후보가 아니었다면 이번 대선에서 48%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겠느냐는 생각”이라고 두둔했다.

그는 또 “문 전 후보는 당의 소중한 자산으로 앞으로 여러 가지 역할이 기대되는 분”이라며 “이 때문에 우리가 지금 문 전 후보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놓고 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부연했다. 문 전 후보 쪽으로 쏠리는 대선 패배에 대한 책임론을 전면 차단한 것이다.

당내 이 같은 분위기는 오는 9일 비대위원장 선출과 맞물리면서 정치권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일각에선 ‘친노 책임론’이 잦아들면서 문 전 후보가 조기등판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쇄신파 “아직은 자숙할 때” 일침

대선 패배 후 당이 수습되지 않은 상태에서 문 전 후보가 조기에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자 당 안팎에선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도 들린다. 특히 대선 패배의 책임을 친노 세력에 돌리고 있는 비주류 측은 이에 대해 강한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다.

비주류로 분류되는 ‘손학규계’ 정장선 전 의원은 지난 4일 한 라디오인터뷰에서 “(문 전 후보에게) 책임이 얼마나 있느냐에 대한 논의는 나중에 하겠지만 대선에 나선 후보들이 꼭 정치활동을 재개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는 진지하게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고 부정적 입장을 견지했다.

그는 “대선에서 패한 뒤 정치 활동을 하는 것은 본인이 판단할 문제지만 후보까지 하셨던 분은 당분간 활동을 조용히 하면서 당이 반성하고 제대로 갈 수 있도록 뒷받침 해주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비주류인 김영환 의원 역시 “문 전 후보와 당의 책임 있는 분들이 다시 다음 시대를 준비한다는 생각은 버리길 바란다”며 “우선은 뒤로 물러나야 한다. 실패한 이회창 후보의 전철을 따라가지 않길 바란다”고 재차 강조했다.

한편, 문 전 후보는 지난 2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하나의 행복의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그러나 가끔 우리는 그 닫힌 문만 너무 오래 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열려 있는 다른 문을 보지 못한다”며 ‘내 인생 후회되는 한 가지’ 책속에 인용된 헬렌 켈러의 말을 언급했다.

그는 또 “비관주의자들은 별의 비밀을 발견해낸 적도 없고, 지도에 없는 땅을 향해 항해한 적도 없으며, 영혼을 위한 새로운 천국을 열어준 적도 없다”는 글을 남겼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선 ‘친노 책임론’을 거론하며 자신의 2선 후퇴를 요구하는 일부 목소리에 대한 불편한 심경을 담아낸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정찬대 기자> minch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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