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 내려놓기 ‘뒷전’… 실세들 ‘지역구 챙기기’만 급급

[일요서울ㅣ정찬대 기자] 대선 전 여야 국회의원들이 앞 다퉈 외쳤던 특권 폐지는 말뿐인 헛공약이 됐다. 지난 1일 여야는 국회의원 연금 128억2600만 원을 새해 예산안에 그대로 포함해 통과시켰다. ‘특권 내려놓기’의 일환으로 국회의원 연금 지급을 축소하겠다던 정치권이 대선이 끝나자마자 안면을 바꿔 예년 그대로 연금을 지급한 것이다.

65세 이상 전직 국회의원에게 지급되는 ‘헌정회 연로회원 지원금’은 국회의원을 단 하루만 하더라도 평생 월 120만원씩의 연금을 받는 예산이다. 일반인이 월 120만원의 연금을 받기 위해서는 월 30만원씩 30년을 납입해야 한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지나친 특권 아니냐는 지적이 그간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특히 총선 이후 이 문제가 불거지면서 국민적 비판 여론이 확산됐고, 대선을 앞둔 여야는 일제히 연금법 개정 및 폐지를 공언했다. 그러나 새해 첫날부터 국회의원 연금법은 여야 합의대로 슬그머니 통과됐다.

논란이 일자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관계자들은 “여야가 약속한 것은 19대 현역 의원들부터 연금을 폐지하겠다는 것이었지, 전직 의원들에게까지 소급 적용되는 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65세 이상 전직 국회의원에게 지급되는 연금인 점을 감안할 때 19대 현역의원들은 애당초 지급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국민들은 “눈 가리고 아웅 한다”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그런가하면 지난 1일 여야가 처리한 2013년 예산안에 실세 의원들의 ‘지역구 챙기기’ 예산이 어김없이 반영돼 이 또한 빈축을 사고 있다. 국방·안보 관련 예산을 비롯해 기초생활수급자 등의 진료비를 지원하는 의료급여 예산과 건강보험 가입자 지원 예산 등이 삭감되는 상황에서도 민원성 ‘쪽지예산’은 오히려 5000억 원 가량 늘어났다.

‘밥그릇 챙기기’의 최고 주역은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5선·인천 연수구)와 이한구 원내대표(4선·대구 수성갑)가 차지했다. 새누리당 두 실세는 무려 900억 원 가량의 예산이 증액됐다. 이 원내대표는 당초 예산보다 37배 가량 늘어났으며, 서병수 사무총장(4선·부산 해운대 기장갑) 역시 32억 원이 증액됐다.

또한 민주통합당 예결위 간사인 최재성 의원(3선·경기 남양주갑)은 40억 원 가량이, 박기춘 원내대표(3선·경기 남양주을)는 30억 원 가량의 지역구 예산이 증액됐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3선·전남 목포)는 10억 원의 예산이 증액됐다.

여기에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계수조정소위 소속 여야 의원들이 예산안 처리 후 곧바로 외유성 해외출장까지 떠나면서 비난 여론은 더욱 들끓고 있다. 예결위 소속 의원 9명(새누리당 장윤석 예결위원장, 김학용 예결위 간사, 김재경, 권선동, 김성태 위원, 민주통합당 최재성 예결위 간사, 홍영표, 안규백, 민홍철 위원)은 2개 조로 나뉘어 지난 1일과 2일 각각 출국했다.

이들은 ‘예산심사 시스템 연구’를 목적으로 장윤석 위원장, 김재경, 권성동, 안규백, 민홍철 의원은 11일까지 멕시코·코스타리카·파나마 등에, 김학용, 최재성 간사, 김성태, 홍영표 의원은 케냐·짐바브웨·남아프리카공화국을 둘러볼 예정이다. 특히 일부 의원의 경우 배우자도 함께 동행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정찬대 기자> minch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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