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 월 수십억 원 대외 활동비 명목 사용 자금관리인 의혹

 조직개편 때 수상한 인사이동 로열패밀리 소문 증폭
“로비할 돈이 필요하다” 명목 거액 수수한 정황도


최근 몇몇 대기업에서 석연치 않은 소문이 조금씩 새 나오고 있다. 해당기업에서 근무하는 일부 직원들이 거액의 회사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하거나 도박 등으로 탕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는 삼성전자의 박모(32) 대리가 돈을 빼돌리다 적발되는 사건이 발생해 주목을 끌었다. 최근에는 두산가 4세 박중원(45)씨가 억대 사기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도중 잠적해 주목을 끌고 있다.
또 서울 중부경찰서는 2년6개월간 회사 돈 7억여 원을 빼돌려 명품백 구입 등에 사용한 혐의(업무상 횡령)로 호텔신라 마케팅과장 이모(39)씨를 구속했다고 지난해 12월 25일 밝혔다.
내부 직원들의 횡령 사건이 잇따라 불거지자 일부에서는 “이들의 자금 횡령에 다른 내막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2009년부터 올해 11월 초까지 1만 원권 삼성상품권 7만여 장을 빼돌려 현금화한 후 자신의 계좌로 입금시키는 수법으로 7억여 원의 회사 돈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09년 카드빚을 갚기 위해 200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빼돌리기 시작한 이씨는 점차 액수를 늘려 최근에는 1회에 1000만 원씩 횡령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한 달에 세차례씩 상품권을 빼돌렸고 상품권거래업자에게 1만 원짜리 상품권을 건넨 뒤 9200원을 돌려받는 방식으로 상품권을 현금화했다. 이씨는 횡령한 7억원 중 6억 원을 명품백 등 사치품 구입과 유흥비로 탕진했고 한달에 평균 1000만 원 가량을 썼다. 또 신세계백화점에서도 쇼핑을 자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씨는 해당 상품권이 호텔신라에 외국인관광객을 유치한 가이드에게 선물용으로 나갔던 1만 원짜리 소액상품권인 점을 노리고 상품권 제공과 관리를 담당하는 업무상 지위를 이용해 2년6개월간 횡령을 계속한 것으로 드러났다.
호텔신라는 내부감사를 통해 이씨의 횡령을 적발하고 지난해 11월 29일 경찰에 고소했다.

○○사 A씨도 미스터리

이처럼 기업 내부 인사들의 횡령 사건이 연달아 터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사정기관 주변에서는 “○○사가 조만간 수사 선상에 오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고 있다. 이 기업수사와 관련, 사정기관은 A씨를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씨가 ○○사의 비자금 조성 혐의를 규명하는 핵심 열쇠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회사가 굴지의 대기업이라는 것과 수사 내용 중 정관계 로비 의혹이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수사가 본격화 되면 사회적으로 적지 않은 파장이 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정기관 소식통에 따르면 A씨는 월 지출이 적게는 2억 원에서 많게는 30억 원에 이른다. 그는 이 돈의 대부분을 개인적인 용도로 지출했지만 일부는 규명할 수 없는 해외 차명계좌로 보낸 흔적이 드러났다고 한다.
또 A씨가 운용한 자금 중 일부는 회사가 아니라 외부에서 따로 조달 받은 것으로 사정기관은 파악하고 있다. ○○사가 차명계좌 의혹을 산 적 있다는 점을 감안해 해외에서 송금받은 차명계좌의 주인을 파악하는 게 이 자금 조사의 관건이다.


그러나 사정기관 관계자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아직 본격적으로 수사하기에는 단서가 부족하다는 게 그 이유다.
이 관계자는 “지금까지 파악된 여러 정황에 비춰 A씨가 ○○사의 해외 차명계좌로 돈을 송금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도 “심증을 가게 하는 여러 정황들은 있지만 사실을 뒷받침 할 수 있는 객관적 근거가 아직 조금 부족해 조사를 계속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A씨의 행적을 살펴보면 수상한 구석이 하나 둘이 아니다.
A씨는 회사 내부에서 직급에 비해 상당한 직권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이는 회사 관계자의 증언을 통해서도 확인이 가능했다.
이 회사의 한 관계자는 “A씨가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하는 지 아는 이들이 거의 없다”며 “A씨는 사내에서 입김이 상당하다. 자신보다 상관인 이들도 쉽게 대하지만 그의 상관들은 문제 삼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회사 내에서 A씨가 회장 측근 이른바 ‘로열패밀리’와 관련된 인물 아니냐는 말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고 말했다.
더 이상한 것은 A씨의 대외 활동이 활발하다는 것이다. A씨는 외근직 부서에서 근무하는 게 아닌데도 업무와 무관한 해외 출장을 가거나 자리를 비우고 외부에서 손님을 만나는 일이 종종 있다고 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그가 외부에서 만나는 인사들이다. 그는 정치권 인사들, 관가의 고위 관계자들 심지어 언론사 간부들과도 접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이들을 만나 상당한 접대비를 지출해 한 때 회사 감사에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소비행각은 무마됐다.
A씨가 적지 않은 공금을 쓰는 것도 미스터리한 일이지만 더 수상한 것은 그가 외부에서 상당한 금품을 챙긴다는 소문이다.


그에 대해 잘 아는 한 인사는 “A씨는 외부에서 여러 인사들을 만나면서 그들 중 일부로부터 금품을 요구해 받아내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들었다. 그가 자꾸 여러 이유를 빌미로 금품을 요구해 힘들다고 하소연 하는 사람도 있다”며 “평범한 직원이라면 꿈도 꿀 수 없는 일인데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금품요구)그렇게 하고 있고 회사에서도 이를 문제 삼지 않고 있어 A씨 배후에 막강한 누군가가 있는 게 틀림없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또 이 인사는 “지난해 중반 경 A씨에게 돈을 상당히 많이 쓰는 것 같은데 무슨 돈을 그렇게 많이 쓰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개인적으로 쓰는 게 아니라 회사일 때문에 쓰는 것이라고 했다”며 “그 뿐 아니라 고가의 골프채나 그림 등을 수시로 구해 달라고 해서 힘들게 구해주면 ‘내가 쓰려는 게 아니라 다른 곳에 쓰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마도 다른 곳에 로비를 할 목적으로 금품을 받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A씨도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사도 수상한 점이 다분하다. 이 회사는 작년 인사에서 A씨를 모두가 희망하는 부서의 간부로 승진시켰다. 이를 두고 회사 내부 직원들 사이에서는 A씨를 두고 “회사 오너의 자금을 담당하는 핵심인사이거나 로열패밀리의 측근일 가능성이 높다”는 소문이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사정기관은 A씨의 주변 조사를 통해 이 회사의 오너와 핵심 인사들의 횡령 배임 혐의 등을 뒷받침하는 단서를 찾는데 주력할 계획이다.

거액 빼돌린 수법

이와 함께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부장검사 김재훈)는 100억 원대 회사자금을 임의로 빼돌려 도박자금으로 사용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로 전 삼성전자 대리 박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지난해 12월 21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삼성전자 재경팀에서 여신관리 업무를 담당하던 박씨는 출금전표와 송금영수증을 위조하는 수법으로 2010년 4월부터 2012년 10월까지 총 165억5000만 원 가량의 회사돈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박씨는 수출관련 수수료란과 은행 출금전표 등에 부풀려진 금액을 오려붙여 문서를 위조하고 이를 다시 회사 경리팀 혹은 은행에 제출해 돈을 빼돌린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경찰은 “박씨가 빼돌린 돈을 환치기 업자를 통해 해외 계좌로 송금했다”며 “해외에서 이 돈은 대부분 도박자금에 사용되는 등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박씨는 이 돈을 마카오 원정 도박과 개인채무 변제 등에 쓴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박씨는 2010년 4월부터 지난 10월까지 삼성전자 재경팀 자금그룹에서 채권 매각과 외화 운용, 여신 관리 업무 등을 담당하며 법인계좌의 입출금 업무를 맡았다. 그는 2010년 10월 4일 출금전표 양식의 ‘발신일자’란에 ‘2010.10.4’라고 기재된 인쇄물을 오려 붙이고 ‘수출 대고객 수수료’란에는 6700만 원이라고 적힌 인쇄물을 붙인 후 복사했다.
박씨는 이렇게 위조한 문서를 경리팀에 제출해 법인 인감을 받은 후 거래 은행에 제시해 지정한 계좌로 돈을 송금받았다. 회사에는 역시 위조한 은행 영수증을 제출해 횡령 사실을 속였다. 그는 이런 수법으로 5차례에 걸쳐 돈을 빼돌렸다.
그는 또 펌뱅킹 수수료나 인지세를 부풀리는 방식으로 61차례에 걸쳐 거액을 빼돌렸다. 출금전표 양식의 금액란에 ‘7만3000원’을 기재해 결제를 받은 후 이 금액 앞에 ‘930’을 첨가해 9300만 원을 빼돌리는 식이었다.
삼성전자는 최근 자체 감사에서 박씨의 횡령 사실을 적발해 경찰에 수사 의뢰했지만 최초 범행이 발생한 지 이미 2년 6개월이나 지난 시점이었다. 박씨는 앞서 상습도박죄로 지난달 법원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허술한 운영 의혹 증폭

이들 사건에서 드는 의문은 직원이나 간부에 대한 회사 관리가 이토록 소홀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특히 삼성전자의 경우 범행이 장기간 지속돼 왔는데도 이를 감사 등을 통해 적발해내지 못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박씨의 행각이 아무리 치밀하다고 해도 액수가 적지 않은데 이를 회사에서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안 가는 일”이라고 물음표를 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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