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리모인가”

지난 19일 중국의 신화통신이 보도한 ‘대리출산 유행’에 관한 소식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그러나 임신이 불가능할 경우, 제 3의 여성의 자궁을 빌려 아이를 갖는 것을 의미하는 대리모 출산은 더 이상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국내에서 불임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부부는 대략 100만명으로 이는 임신을 원하는 부부의 15%에 달한다. 이들 부부에게 대리모를 통한 출산은 유일한 희망으로 대리모에 대한 명확한 법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대리모 출산은 늘고 있다.문제는 ‘생명거래’로 볼 수 있는 대리모 출산이 ‘돈’을 대가로 무분별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 심지어 경제적 사정을 이유로 출산경험이 없는 여성들까지도 자궁을 빌려주고 대신 출산해주는 ‘생계형 대리모’로 나서는가 하면, 20대 초반의 여성들이 돈을 목적으로 무분별하게 난자를 파는 ‘비도덕적’이고 ‘위험한’ 거래도 이뤄지고 있다.

서울의 한 불임클리닉의 원장 K씨는 “대리모를 통한 출산은 은밀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으나 상당수의 불임부부들이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K원장은 “불임 부부가 대리모를 직접 섭외해 시술을 요청할 경우 그들의 절박한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거절할 수는 없다”고 전했다. 대신 추후 문제를 대비해 ‘대가성 거래가 없다’는 각서를 받는다는 것이다. K원장은 많은 불임부부들이 대리모 출산을 선호하는 이유로 ‘혈연에 대한 집착’을 꼽았다. 상담 결과 대부분의 불임부부들은 피한방울 안섞인 남의 아이를 입양해 키우느니 타인의 몸을 빌려서라도 ‘내 피가 흐르는 자식’을 갖겠다는 의사를 보인다는 것. 서초구에 사는 정수진(40·가명)씨의 경우가 좋은 예다.

정씨는 남편을 쏙 빼닮아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아들(5)을 볼 때마다 대리모 시술 결정에 만족감을 느낀다. 자궁이 둘로 나눠진 ‘쌍각기형’으로 수차례 유산을 반복해야했던 정씨는 고민 끝에 5년전 대리모를 통해 현재 아들을 얻었다. 대리모는 그의 여동생. 생판 모르는 타인의 몸을 빌리기가 내키지 않았다는 정씨는 여동생에게 부탁을 했고, 당시 출산경험이 있던 정씨의 여동생은 언니네 부부의 고충을 익히 알고 있던터라 이를 받아들였다는 것이다.정씨는 “유난히 혈연을 강조하는 우리사회에서 입양은 불임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입양아에 대한 편견을 평생 짊어지고 살 자신이 없었다”는 정씨는 “다른 사람의 몸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유전자를 타고난 아이를 갖고 싶은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자궁임대형 대리모 등장”

그동안 대부분의 대리모가 친인척인 경우가 많았던 점으로 볼 때, 여동생의 몸을 빌린 정씨의 경우는 가장 ‘정상적’인 경우에 속한다. 그러나 문제는 최근 돈을 받고 자궁을 임대하는 ‘위험한’ 거래가 부쩍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거래는 불임클리닉을 운영하는 병원 게시판은 물론 인터넷을 통해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는데, 돈을 목적으로 대리모를 자청하는 여대생과 주부까지 등장한 것은 충격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한 포털 사이트에는 ‘불임’ 또는 ‘난자’와 관련해 대략 100여개에 가까운 관련 카페들이 운영중이다. 이들 카페의 게시판에서 ‘출산해드립니다’, ‘대리모 구함’이라는 글을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또 ‘최상의 대리모 구해드림’이라는 게시물로 미뤄볼때 이들 거래에 개입하는 ‘브로커’가 존재한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대리모에 나서는 여성 대부분은 ‘카드빚’이나 ‘등록금’, ‘사채’ 등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한 ‘생계형 대리모’에 속한다. 22일 삼성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여성 안미경(29·가명)씨는 “솔직히 사람이 할일은 아니죠”라는 말로 입을 열었다. 2년전 이혼한 후 도매시장에서 장사를 하다가 사기를 당해 졸지에 빚더미에 앉은 그는 도저히 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고 판단, 대리모를 자청하고 나섰다. 안씨는 “5쌍의 부부에게서 연락이 왔는데 4쌍은 가격 및 대우조건이 안맞아서 포기했고 나머지 한 커플과는 협상중”이라고 전했다. 비교적 조건이 좋은 안씨를 잡기위해 상대 부부측에서 제시한 사례비는 무려 5천만원. 그러나 안씨는 현재 1천만원의 추가 비용을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나이가 젊고 혼인기간도 짧은데다가 출산경험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안씨의 설명이다. 그는 또 “출산때까지 거처할 오피스텔과 생활비를 추가로 제공해달라는 조건도 포함되어 있다”고 귀띔했다.

“대리모에 대한 최고의 대우”

안씨에 따르면 불임부부들은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절박한’ 사람들이다. “조선족 여성의 몸을 빌릴 경우 보통 천만원선에서 가능하지만 최근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불임부부들은 몇 배의 돈을 주고서라도 보다 좋은 조건의 대리모를 찾아나서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안씨의 말이다. 대리모가 결정된 후 이들 부부들은 직접 임신과 출산을 한다는 각오로 임한다. 이들은 수천만원에 달하는 사례비뿐 아니라, 자신의 아이가 열달동안 머무를 자궁을 제공하는 대리모에게 시술 몇 달전부터 최대한의 배려와 대우를 약속한다. 또 의학적인 검사는 물론이고 흡연이나 음주, 성생활, 기본적인 소양 등에 대해서도 꼼꼼히 체크할 뿐 아니라 태교에도 만전을 다한다는 것.“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에 고민도 많이 했지만 ‘장기매매’라도 해야 할만큼 생활이 어렵다”는 그는 “오죽하면 출산경험도 없는 내가 남의 아이를 대신 낳을 생각을 했겠나”며 한숨을 내쉬었다. 안씨는 대화내내 남의 아이를 10달 동안 품고있어야 한다는 부담감과 초산에 대한 불안함에 대해 털어놨다. 그러나 안씨는 조건합의만 되면 ‘출산 프로젝트’에 들어갈 결심이 굳어진 상태였다. 그는 “이제는 불임부부에게나 나에게나 서로 도움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기로 했다”며 “이것은 무덤까지 갖고 가야할 짐이 될 것”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 난자가격 학력·외모따라 프리미엄 붙는다

“난자시술 간단하지 않다”


지난 3월 전북 익산에서는 모 대학교수가 학생들을 상대로 “얼굴이 예쁠수록 난자가 비싸다”는 발언을 해 파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러나 실제로 자신의 난자를 파는 일부 젊은 여성들의 행위는 비밀아닌 비밀로 버젓이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이를 증명이나 하듯 포털 사이트에는 ‘난자팝니다’라는 게시물이 쉽게 눈에 띈다. 22살의 한 여성은 카드빚으로 인해 급전이 필요하다며 “Y대 재학중. 168m, 외모준수”라는 광고를 냈다. 그가 요구하는 사례비는 600만원. 보통 난자가 300~400만원선에 거래되는 것과 비교해볼 때 약 두 배에 달하는 가격이지만 정작 그는 “20대 초반의 건강한 여성인데다가 준수한 외모의 명문대 출신이기 때문에 ‘프리미엄’이 붙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불임 부부에게 난자 제공자를 소개해주는 업체인 DNA 뱅크에 따르면 학력이나 외모를 따지는 의뢰인들도 상당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사적인 통로를 통할 경우 건강한 난자를 제공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난자 제공자는 정신적·육체적으로 건강한 만 22세 이상의 여성으로 보통 이상의 사고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데 이를 증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돈으로 난자를 거래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난자제공에 돈이 거래되는 것을 부정적인 것으로만 볼 수 없다”며 조심스런 입장을 보였다.“난자제공자는 2주 연속 주사를 맞고 채혈과 초음파검사를 감수해야할 뿐 아니라 전신마취 하에서 난자를 채취해야한다”며 “아무 대가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타인을 위해 시술하기에는 벅찬 것이 사실”이라 설명했다. 하지만 그 역시 “단순히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난자를 팔거나, 음성적인 방법으로 미확인된 난자를 거래하는 것은 분명 위험할 뿐 아니라 윤리적인 비난 역시 피할 수 없을 것”이라 강조했다.

# “제도적 장치 및 대리모에 대한 사회적 합의 시급”

‘비록 남의 몸을 빌리지만 내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기대와 설렘 뒤에는 의뢰 부부들만의 말못할 고민이 있다. 즉 학계나 종교계, 법조계에서도 우려하고 있는 갖가지 현실적인 문제들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에 의뢰 부부들은 추후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방지하기 위해 대리모에게 모권을 포기하는 각서를 받고 자신의 아이로 입양시키거나, 집에서 출산한 것으로 서류를 꾸며 출생신고하는 편법을 취하기도 한다. 한 산부인과의 관계자는 “아예 모권 분쟁을 일으킬 염려가 없는 중국교포 여성을 싼 가격에 대리모로 이용하는 방법은 가장 흔한 ‘편법’중의 하나”라고 귀띔했다.이와관련, 일부에서는 대리모를 무조건 법적으로 금지할 경우 더 큰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대리모와 관련된 법적 근거를 만들어 대리모에 대한 공감대 형성과 사회적인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동시에 불임부부에 대한 국가정책적인 지원도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불임부부들은 “정부는 출산을 부추기고 있으면서도 정작 불임부부에게는 기본적인 지원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 울분을 터뜨리고 있다. 일부러 안낳는 여성에게 출산을 장려하느니, ‘생명거래’를 하면서까지 아이를 원하는 불임부부들에 대한 의료적, 제도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것.모 불임클리닉 관계자는 “아이를 원하는 부부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의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고 이 과정에서 ‘전문 브로커의 개입’과 같은 음성적인 방법이 동원될 수 밖에 없다”며 무조건적인 대리모 금지가 능사는 아니라는 의견을 밝혔다. 또 ‘불임부부의 행복 추구권’을 법적, 윤리적인 잣대로 재단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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