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몸에 피가 잘 안돌면 육체건강이 위험해지고 돈이 안돌면 정신건강이 위험해진다. 날씨는 수십 년만의 강추위를 나타내고 있고 더욱 옥죄어지는 경제 불황속에서 뼛속까지 시려하는 서민들 마음이 책처럼 읽혀진다. 서민계층 모두가 정신건강이 송곳처럼 뾰족하고 칼날같이 예리해져 있을 것이다. 그만큼 세속은 더 각박할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지난 연말 적잖이 들려온 얼굴 없는 기부천사들 얘기는 많은 사람들 가슴을 뭉클하도록 만들었다. 이런 일들을 몇몇 재벌이 이유 있는 선심으로 행하고 졸부들이 쓰고 넘치는 돈을 값싼 동정심으로 던진 것이면 아마 사람들은 개나 먹으라며 냉소했을 것이다. 집이고, 옷이고, 먹거리고 간에 값이 비싸야 자존심이 살아 싸구려 물건에 0하나 더 붙여놓으니 물건이 동이 나더라는 판이다.

그래도 세금 내는 손이 떨려 못 내고 있다가 값비싼 고미술품 등에 기습적인 압류딱지가 나붙고서야 부랴부랴 세금 내는 부자들이 활개를 친다.

재벌 총수들 이야기는 신문에 났다하면 비자금 마련에 회삿돈 횡령관련 사건이다. 또 귀에 들렸다하면 부자간, 형제간의 재산분쟁 내막이다. 뼈 빠지게 자식들 위해 돈벌어놓고 간 부모제사를 형제 모두가 따로 지낸다는 말도 이제 낯 설은 얘기가 아니다. 이런 마당에 국내 재벌그룹 순위 다툼이 무슨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몇 일전 신문에 삼성전자가 작년 한해 매출실적 200조원 선을 돌파하고 순수익 29조원 이상을 올렸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 엄청난 소식을 과연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경이롭다는 생각을 했을지 의문스럽다. 이건희 회장이 존경스럽다는 생각도 일반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고 묻지도 않겠지만 설명 안 해도 이유를 모를 사람이 없을 만치 삼성이 국민들 가슴속에 드리워 놓은 그림자가 짙다. 일찍이 박정희 전 대통령은 국리민복에 기여할 삼성의 가능성을 읽어 ‘밀수’라는 엄청난 죄과까지 ‘한국비료 헌납’ 명분으로 국민감정을 무마해 덮고 국가산업화의 선봉을 맡겼다.

그리고는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편의를 제공했다. 그 시대의 그 같은 관용과 배려가 오늘의 삼성그룹을 견인해 온 것이라는 표현에 삼성로얄패밀리 내부도 발끈하지 못 할 것 같다.

이런 삼성의 역사는 한국의 산업사요 경제사라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삼성의 사업범위는 제당·제분·모직·화학·제지·화섬·건설·조선·전자·항공·엔지니어링·은행·보험·증권·부동산·리조트·광고·백화점·호텔 등 거의 모든 산업분야에 걸쳐있다. 세계시장이 상상하기 힘든 사례다. 그야말로 국내 1등 재벌 구호가 의미 없는 일이다.

반드시 세계시장을 석권해야 할 책무가 삼성에 있는 것은 삼성이 국민의 꿈을 먹고 성장한 국민기업인 까닭이다. 이제 삼성은 산업화시대를 개막시켜 나라 부흥을 이끌고 부흥 역군으로 삼성을 선두에 세웠던 고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또 경제성장론에 갇혀 기본권을 유예 당했던 많은 국민들께 보은을 연구해야할 때다.

마침 시대는 그 딸이 대통령으로 당선돼 ‘국민행복시대’를 주창하고 있다. 이 시대에 삼성이 꼭 해줄 일은 우리사회의 그늘진 어느 한 곳을 통 털어 책임지는 일이 어떨까 생각한다. 소외층 한 곳만 삼성이 떠안아도 훌륭한 사회 환원이 되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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