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평통 여성부의장을 맡고 있는 이길여 가천길재단 회장이 재단 내부의 송사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가천길재단을 이끌어 온 또다른 실력자 A씨가 이 회장의 명의를 도용해 10억원대의 거금을 횡령한 의혹이 제기되는 등 내부 비리가 잇따라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국내 최고 의료재단인 가천길재단이 때아닌 송사에 휘말린 까닭은 무엇일까.가천길재단의 내부 비리가 본격적으로 외부에 불거진 것은 지난 3월31일. 당시 서울중앙지검에 L재단(길병원 등 병의원들로부터 임상병리검사를 수탁받아 검사를 대행하는 의료법인) 관리이사 이모씨가 진정서를 접수하면서 시작됐다.

이씨는 진정서에서 “가천길재단의 고위 경영인을 지낸 A씨는 2000년 3월 측근 S씨를 통해 신한은행 구월동지점에서 L재단 전 이사장인 박모씨 명의로 15억원을 대출받았으나, 이 돈을 벤처기업인 E사 계좌로 넣은 뒤 몰래 빼내 횡령했다”고 폭로했다. 특히 A씨는 돈을 대출받는 이 과정에서 재단 확인서 등 각종 사문서를 위조했다고 진정인 이모씨는 주장했다.이씨는 또 진정서를 통해 A씨가 지난 2000년 2월 자본금 5억원의 벤처기업 E사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L재단 이사장 명의로 대출받은 15억원을 포함해 총 29억원의 증자대금을 가장 납입하는 등 투자금이 290억원이라고 모경제지에 허위보도를 게재해 S씨 등으로부터 34억원을 편취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마치 이길여 이사장이 E사에 5억원을 투자한 것처럼 허위선전해 투자자들을 끌어모으는데 이용했다는 게 이씨의 주장이다.

진정인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A씨는 지난해 4월 검찰 조사과정에서 “박모씨의 명의를 빌려 15억원을 대출받은 것은 사실”이라고 전제한 뒤 “하지만 이는 E사의 설립자본금을 길병원 의료재단으로부터 차용해 납입자본금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이를 변제하고자 박모씨를 보증인으로 하여 위 납입자본금을 질권으로 설정한 뒤 15억원을 대출받아 길병원에 변제하는데 사용하였을 뿐 대출금 15억원을 횡령한 것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하지만 진정인 이씨는 “A씨는 대출금 15억원을 E사에 납입하지 않고 개인적인 용도로 임의사용했으며, 이같은 사실을 알고 피해자들과 직원들이 항의하자 재단 직원들을 강제로 해고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L재단 전 이사장 박모씨는 검찰 진술서에서 “2000년 3월 신한은행에서 15억원을 대출받을 당시 A씨는 진술인이 모르게 자신의 측근 S씨를 통해 대출서류를 만들게 하고 인장 등을 임의로 사용했다”고 밝혔다.

이길여 회장의 명의 위조 논란과 관련해 가천길재단 비서실 관계자는 “이 회장의 한자 서명은 아직 본 적이 없다. 영문으로 서명하는 걸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또 “이 회장은 병원운영과 교육문화사업 외 다른 사업에는 전혀 관여를 안하고 있는 걸로 안다”며 “특히 L재단이나 E사와 관련해서는 아는 바도 관심도 없는 걸로 안다”고 전했다. 한편 A씨는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관련해 <일요서울>과의 전화 통화에서 “답변하고 싶지 않다”며 “모든 진실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밝혀질 것”이라고 답했다. 또 2000년 E사 설립 추진 당시 감사를 맡았고, 현재 가천길재단의 또다른 핵심실세인 L씨는 기자의 수차에 걸친 취재 요청에 불응해 부득이하게 입장을 반영하지 못했다.

가천길재단 이길여 회장은?
맨손으로 성공신화 일군 여장부
가천길재단 이길여 회장은 호남이 낳은 대표적인 ‘여장부’로 통한다. 이 회장은 인천의 작은 산부인과 의사로 시작해 맨손으로 ‘의료왕국’을 건설한 성공신화의 대표적인 인물. ‘여장부’ ‘철의여인’ ‘여걸’ 등은 이 회장이 일궈낸 성공신화를 뒷받침하는 형용사들이다. 전북 군산출신인 이 회장은 57년 서울대 의과대학을 졸업한뒤 인천에서 산부인과 의원을 시작으로 의료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78년 의료법인인 인천길병원(현 가천의대 인천길병원)을 설립한 것을 시작으로 82년 양평길병원, 87년 중앙길병원(현 가천의대 길병원), 88년 철원길병원, 95년 백령길병원 등을 개원했다.길병원을 국내 10대 병원으로 성장시킨 이 회장은 본격적으로 교육사업에 뛰어들었다. 97년 가천의대를 설립한데 이어 98년 학교법인 경원학원(경원대·경원전문대) 운영권을 인수했다.

99년에는 경인지역 최대 일간지인 경인일보를 인수해 회장으로 취임했고, 가천문화재단, 가천박물관 등을 설립하는 등 언론, 문화계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의 왕성한 사회활동은 2003년 국민훈장 무궁화장,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을 잇따라 수상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가천길재단은 이 회장의 ‘호(號)’와 이름 가운데 자(길)를 붙여 지어진 명칭이다. 가천(嘉泉)은 한국정신문화원 원장을 지낸 류승국 박사가 이 회장에게 지어 준 호다.한편 이 회장은 지난해 9월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라는 대형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향후 5년 동안 64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결단을 내려 화제를 낳기도 했다. 이 회장이 추진하고 있는 뇌과학연구소를 맡게 된 인물은 다름아닌 조장희(68·어바인 캘리포니아대) 박사. 조 박사는 뇌영상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자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노벨 생리·의학상 후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건 왜 불거졌나?

가천길재단의 실력자로 알려진 A씨가 연루된 이번 송사가 시작된 것은 가천길재단과 의료재단인 L재단 관리이사였던 이모씨가 지난해 4월 서울중앙지검에 A씨를 횡령 혐의로 고소하면서 불거졌다. 당시 서울지검은 이 건에 대해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A씨에 대해 무혐의 결정을 내렸고, 이씨는 같은 해 5월 서울고검에 항고했다. 이에 대해 서울고검은 지난해 8월 “수사에 의문이 있다”는 이유로 재수사 명령을 내려 현재 서울중앙지검에서 재수사가 진행중이다. 이런 와중에 지난 3월 이씨가 검찰에 추가 진정서를 접수하면서 사건 자체가 외부로 불거졌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