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사는 우왕좌왕, 소비자는 좌불안석

 

- 카드사 vs 대형가맹점 격돌…애꿎은 이용자 피해만
- 제2의 화폐 된 신용카드, 수수료·이자 부담 날로 치솟아

- 날 세우는 양측 입장…정작 여전법 개정한 정부는 뒷짐만
- “대기업들이 손실 흡수해 소비자 피해 최소화해야 할 것”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주요 신용카드사들이 상시 무이자할부 서비스를 전격 중단했다가 열흘 만에 재개하는 혼선을 빚었다. 앞서 카드사들은 이 서비스를 지난 1일 별다른 공지 없이 중단했다가 이용자들의 항의가 커지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카드사들이 서비스를 중단했던 이유는 대형가맹점과 이자비용을 반씩 부담하는 것이 틀어졌기 때문이다. 이미 여전법이 시행된 이상 양측 협상에 진전이 없으면 또다시 서비스가 중단될 것은 명약관화다.

지난 10일 카드업계에 따르면 주요 카드사들은 지난 1일부터 중단했던 무이자할부 서비스를 설날 이후까지 재개할 방침이다. 신한ㆍ현대ㆍKBㆍ롯데카드 등 업계 상위 카드사들은 백화점ㆍ할인마트 등 대형가맹점에서 상시적으로 적용됐던 2~3개월 무이자할부 서비스를 다음 달 17일까지 한시적으로 재개하기로 했다. 

신한 이어 롯데ㆍ현대ㆍKB 줄줄이 재개

이러한 계획을 가장 먼저 알린 곳은 신한카드로 이후 롯데ㆍ현대ㆍKB카드가 줄지어 발표했다.

신한카드는 전 고객을 대상으로 다음 달 17일까지 특별 2~3개월 무이자할부 행사를 실시한다고 지난 9일 밝혔다. 신한카드 측은 “무이자할부 중단으로 발생하는 고객 불편을 최소화하고 서민생활안정을 위해 자체 비용으로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라며 “개별 대형가맹점과의 무이자할부 서비스는 법 취지에 맞게 협상을 통해 지속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KB국민카드는 고객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것과 동시에 지난해 국가고객만족도지수(NCSI) 신용카드부문 1위 달성을 기념해 유통 등 10대 업종에 대해 전 고객을 대상으로 다음 달 17일까지 2~3개월 무이자할부 혜택을 제공한다.

현대카드도 할인점 등 이용자들의 생활 체감도가 높은 업종에서 전 고객을 대상으로 다음 달 17일까지 2~3개월 무이자할부 행사를 진행한다. 롯데카드 역시 전 고객을 대상으로 다음 달 17일까지 모든 업종과 가맹점에서 2~3개월 무이자할부 행사에 들어간다.

삼성카드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삼성카드는 이달 말까지 상시 무이자할부 서비스를 유예했다. 이 역시 다음 달부터 중단되지만 특별히 2월 한 달간은 생활편의 10대 업종에 한해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시초는 여전법 개정…중단 후폭풍 거셌다

이처럼 카드사들이 무이자할부 서비스를 두고 갈팡질팡하게 된 시초는 여신전문금융업법(여전법)의 변화다. 새로 개정된 여전법은 ‘대형가맹점은 판촉행사 비용의 50%를 초과하는 비용부담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백화점 등 대형가맹점들이 비용 부담을 거부하자 카드사들은 아예 서비스 자체를 기습적으로 중단했다. 여신법 시행일은 지난해 12월 22일이며 카드사들의 서비스 중단일은 지난 1일이다.

문제는 카드사들이 그 흔한 공지 하나 없이 서비스를 없애 이용자들의 혼란을 일으킨 것이다. 본래 무이자할부는 명시된 카드가 아니면 적용이 불가한 서비스였다. 그러나 카드사들은 최근까지 상시 무이자할부 서비스 행사라는 명목 아래 사실상 전 고객들에게 무이자할부 서비스를 적용해줬다. 이용자들은 보유 카드에 상관없이 5만ㆍ10만 원 등 일정 금액 이상 구매 시 대형가맹점 등에서 2~3개월 또는 1회차를 제외한 6개월 무이자할부 서비스를 이용하는 습관을 상시적으로 키웠다.

재미있는 점은 이 서비스는 카드사가 이용자에게 미리 공지해야 할 항목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시 무이자할부는 행사성으로 카드사의 자체적인 판단에 의해 진행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변경 시에도 타 서비스와 달리 6개월 전 공지해야 하는 책임이 없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고객들은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새해 첫날부터 무이자할부 결제를 거부당하는 경험을 맛봤다. 카드사들과 대형가맹점들 모두 비용을 떠안을 수 없다며 소비자들에게 이를 전가한 셈이다. 

무이자할부로 인한 비용 떠안는 건 누구

실제로 카드사들이 상시 무이자할부 서비스에 쏟는 비용은 상당히 많다. 금융위원회와 카드업계에 따르면 카드사들이 2011년에 무이자할부를 지원하기 위해 쓴 비용은 약 1조2000억 원으로 전체 마케팅 비용인 5조1000억 원의 24%에 이른다. 이용자들은 신용판매 이용금액 312조 원 중 22%에 달하는 68조 원을 할부로 결제했다. 그중 무이자할부 서비스를 적용받은 것은 80%에 육박하는 높은 수치다.

애초 카드사들이 무이자할부를 시작하게 된 배경은 고객수를 늘리기 위해서였다. 카드사들은 매출과 이미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해 자사카드를 고객의 주력카드로 만들려는 경쟁을 심화시켰다. 때마침 유통을 주축으로 한 대형가맹점들이 카드사들에게 상시 무이자할부 서비스를 제안했고 카드사들은 이러한 제휴마케팅을 업계에 정착시켰다. 전 고객들이 대부분의 대형가맹점에서 일정 금액 이상을 결제하면 무이자할부를 적용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금융당국은 카드사들이 대형가맹점 결제 시에만 지원하는 무이자할부 비용이 결국 일반가맹점이나 전통시장에서 부담하는 수수료율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고 지적했다. 카드사들은 개정된 여전법 시행에 맞춰 대형가맹점에 무이자할부 비용을 반반으로 나누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대형가맹점들은 카드사들의 경쟁으로 시작된 비용인 만큼 추가적인 부담이 어렵다며 이를 거부했다. 결국 카드사들은 지난 1일 연매출 1000억 원 이상인 백화점ㆍ대형마트ㆍ항공사ㆍ통신사에 지원하던 무이자할부를 전격 중단해버렸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계속해서 마케팅 비용 규제가 강화되고 대형가맹점에서 이를 함께 부담하지 않으면 부가서비스 등 소비자 혜택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예고 없는 서비스 중단에 뿔난 고객들

카드사와 대형가맹점의 싸움에 애꿎은 피해를 본 쪽은 이용자들이었다. 성난 고객들로 인해 여론은 들끓었고 시민단체와 금융당국까지 나서는 바람에 카드사들의 입장은 난처해졌다.

금융소비자연맹은 지난 8일 성명을 통해 “카드사가 대형가맹점의 무이자할부를 전면 중단한 것은 그동안의 소비자 기여는 고려하지 않고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시키는 것”이라며 “카드사들은 소비자의 권익을 무시하는 처사를 즉각 철회해야 할 것이며 수수방관하는 금융당국 역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소연에 따르면 현재 소비자 상거래 대금의 60% 이상이 카드로 이루어지는 것은 정부의 세원 투명화, 소득공제 확대 등 카드이용장려 정책에 따라 소비자들의 적극적인 호응으로 형성된 거래관행이다. 특히 카드 할부이용금액의 80%가량이 무이자할부로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카드사가 대형가맹점의 무이자할부를 전면 중단한 것은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또한 여전법의 개정으로 35년 만에 카드가맹점 수수료가 개편되면서 업종별로 적용해오던 수수료율이 연매출 단위로 변경된 것에 주목해야 한다. 연매출 2억 원 미만인 영세가맹점은 일률적으로 1.5%의 우대수수료율이 적용되고 연매출 2억 원이 넘는 가맹점은 최대 2.7%까지 수수료율이 오르는 것이다. 따라서 대형가맹점의 경우 이번 무이자할부 논란이 종료돼도 인상되는 가맹점 수수료만큼 상품가격을 올리는 형태로 소비자들에게 부담을 전가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개정은 해놓고 ‘나몰라라’ 뒷짐 진 정부

게다가 보건복지부도 의무가입 대상인 4대보험 카드수수료를 국세처럼 납입자가 부담하도록 법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이에 카드사들은 수수료 개편으로 인한 예상손실 8000억 원을 보전하기 위해 부가서비스 할인 혜택을 축소하거나 기준금액을 상향 조정하고 있다.

지난 외환위기 후 영수증복권제, 소득공제, 가맹점 가입 의무화, 카드사용내역 법적증빙인정, 차별대우금지 등 신용카드사용 활성화 정책으로 소비자들의 카드사용이 일상화되면서 민간소비지출의 절반이 넘는 수치가 카드로 결제됐다. 정부의 장려로 인해 소비자들이 카드를 제2의 화폐처럼 사용했고 완전한 지급결제 수단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지금처럼 금융당국이 수수방관한 채 이러한 현실을 무시하면 대형가맹점들이 계열사 제휴카드의 무이자할부는 그대로 두고 금융계 카드사와는 반목하는 현상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덧붙여 카드사들은 매년 수조 원 이상의 이득을 챙겨왔음에도 이용자들을 배려하지 않은 채 부가서비스를 축소하거나 할부이자 부담을 떠넘겼다.

강형구 금소연 금융국장은 “주요 결제수단인 화폐의 발행과 폐기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고 있다”면서 “이미 또다른 주요 결제수단이 된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소비자에게 가맹점 수수료 증가나 할부이자 등으로 발생하는 비용을 부담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강 금융국장은 “카드사와 대형가맹점들은 정부 주도 하에 타협하고 양보함으로써 수수료 인상과 감면에 의한 손실을 내부적으로 흡수해 소비자 피해를 최소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장은 명절 전 휴전상태… 향후 대책은

눈앞의 명절특수에 카드사들이 한시적으로 무이자할부 서비스를 재개했지만 문제가 해결되기까지는 첩첩산중이다. 개정된 여전법에 따라 법적으로는 카드사가 무이자할부 이자를 모두 부담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대형가맹점들과 반액 부담을 합의하거나 이용자들에게 이자부담을 물리는 방법이 남는다. 그러나 대형가맹점들의 거부는 아직도 완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카드사 고객 유치에 따른 마케팅 비용을 왜 가맹점이 50대 50으로 분담해야 하는지가 문제다”라며 “논리적인 설명은 배제한 채 ‘여전법에서 그렇게 정했기 때문’이라는 일방적인 주장은 납득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또 다른 유통업계 관계자도 “카드사의 대형가맹점 상시 무이자할부 서비스는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각 카드사가 돌아가며 3개월 간격으로 선보이는 정도였다”면서 “이후 경쟁이 심화되면서 카드사들이 모든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서 상시 무이자할부를 진행하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맞서 카드업계는 여전법이 시행된 만큼 대형가맹점들이 비용의 일부분을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카드사 관계자는 “경제민주화 기류가 형성되면서 경제적 약자에 대한 배려 차원에서 카드사들이 단독으로 부담했던 비용을 정상화하려는 수순”이라며 “여전법이 개정된 취지에 따라 대형가맹점들도 비용 부담을 받아들여야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금융당국 역시 법에 따른 원칙을 고수하고 있으나 태도는 다소 미온적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무이자할부 문제는 카드사와 대형가맹점이 풀어야 할 문제”라면서도 “다만 여전법 취지를 살리고 합리적인 비용분담 체계를 세우려 한 카드사들의 행동에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또한 금감원 관계자는 “그동안 수익자 부담 원칙에 어긋나게 과도한 혜택을 받아온 부분이 제자리를 잡아가는 측면이 있다”면서 “갑작스러운 무이자할부 중단은 부작용을 부를 수 있으니 점진적으로 줄여가는 쪽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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