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며칠전 한 제보(?)를 접하게 되었다. 기자의 한 지인의 지인이 함께 있던 조선족으로부터 크게 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기자 지인이 들려준 사연인즉 이렇다. 이번에 손해를 입은 사람은 몇 년간 상사원으로 중국에서 근무하다가 한국귀임 발령을 받게 되었다. 이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자영업자로서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그리고는 퇴직금을 모아 자신이 지금까지 일해오던 관련분야에서 새출발을 했다. 새출발은 걱정과 달리 순조로웠는데 그러던 어느날, 중국관련 제반업무를 맡겼던 동생과도 같던 조선족으로부터 뒤통수를 맞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게, 그렇게 조심하라고 했거늘, 쯧쯧쯧…” 기자의 지인은 설마설마 하다가 당한 것이라며 조선족에 대한 실체를 다시 한번 깨닫게하는 또 다른 예일뿐 이라고 혀를 찬다.

“한국에서 왔으면 온 거지, 뭐 대수인가!”중국을 찾는 한국인들을 대하는 조선족의 시큰둥한 모습이다. 물론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들의 태도가 이렇게까지 냉랭하지는 않았다. “아이고, 반갑구먼요! 한국에서 오셨다면서요?”뜨거운 눈물마저 글썽거리며 두 손을 덥석 잡아 반갑게 맞아주던 또 다른 우리들. 초면이기는 하지만 이쪽을 맞이하는 저쪽의 반가움이 온몸에서 뚝뚝 떨어져 나왔다. 소심한 채 지나치게 합리만을 추구하게 된 일본인들, 그들이라면 반사적으로 상대의 저의를 따지려 들 만큼, 우리를 맞이하는 조선족들의 태도에는 진실한 정겨움이 넘쳐났었다. 오직 같은 핏줄이라는 점만으로, 우리네 조상이 그러했듯한 손님맞이 전통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과연 무엇이 수교이후 채 10년이 안되는 시점에서 그들을 이렇게 바꿔 놓았단 말인가?현재,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인과 조선족 사이에는 미묘한 기류가 깊어져 가고 있다. 가지많은 나무에 바람잘 날 없다고 하듯, 중국을 찾는 한국인이 증가할수록 조선족에 대한 수요도 증가하며 그 이면에서는 마찰과 대립이 더해지고 있는 것이다. 우선 한국인의 입장에서 본 조선족에 대한 부정론.“같은 민족이라면 당연히 우리를 더욱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그 사람들은 도대체 중국인이야? 아니면 한국인이야?”조선족들을 만나며 그들과 함께 일을 하는 한국인들이 흔치 않게 접하는 상황이다. 같은 전통문화에 같은 음식, 하물며 언어까지 우리말(그렇다고 한국어가 아니다. 그들은 그들 말을 남북한의 언어와 또 다른 조선족언어라며 조선어라고 부르고 있다)을 쓰는, 같은 한민족이니 만큼 이와 같은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하지만 인간사 오해와 갈등은 바로 나에게서 비롯되지 않던가. 조선족에 대한 한국인들의 성토도 많은 경우 우리들의 한국 중심적 사고에서 빚어진다.

우리들은 그들이 결국은 중국국적을 가진 중국공민, 즉 중국인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재미동포, 일본에서는 재일동포를 조심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현지사정을 잘 모르는 한국인에게 친절과 도움을 베푸는 척하다가 사기치는 교포들이 더러 있기 때문이죠. 이는 조선족에도 해당됩니다. ‘동포’운운 하며 도와준다고 나서는 그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중국의 칭따오에 의류공장을 두고 미국과 일본에도 수출하고 있는 재중 기업인 한(50대·남)씨의 충고이다. 다부진 눈매에 부리부리 치켜세워진 눈썹은 세상의 온갖 풍파에도 거침없을 듯한 그이거늘 그 또한 오늘이 있기까지는 “골고루 당해보았다”고 한다. 자신의 순진멍청함이 화근이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분통터지는 것은 동포라는 미명하에 저지르는 그들의 사기란다. “우리민족이 어쩌고 저쩌고, 동포가 잘 돼야 우리도 기가 산다는 등 지껄이다가 도와주는 척 교묘히 배반하는, 그게 바로 동포의 할 짓입니까.” 지금도 중국 하늘 아래에서는 이들 ‘몹쓸 종족’ 들의 감언이설에 속아나는 한국인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며 조선족을 맹성토한다. 반면에 조선족을 소중히 하며 이해해야 한다는 의견 또한 팽팽하다.

“조선족은 중국활동을 전개하는 우리에게 있어 천혜의 자원이 아닐 수 없어요. 우리의 경쟁국인 일본인과 한번 비교해 보자구요. 일본에게는 조선족과 같은 동포가 없어 중국진출에 우리보다 훨씬 많은 어려움을 겪지 않습니까? 중국내 한국기업들의 순조로운 활동은 결국 조선족의 기여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어요.” 상하이에 있는 한 한국인교회에서 만난 사람의 말이다. 탈북자 지원차 연변에도 몇 번 간 적이 있다는 그에 의하면, 조선족을 이렇게 물들이고 타락시킨 장본인은 바로 우리의 천민자본주의라고 일갈한다. “우리는 올챙이 시절을 망각하고 있어요. 조선족을 대하는 자세를 달리해야 합니다. 그들의 가슴에 이렇게 상처만 줘서는 안돼요”. 한편 조선족은 그들나름대로 같은 핏줄인 한국인에 대해 할말이 적지 않다. 상하이에서 ‘K씨네’라는 조선족 식당을 운영하는 K씨. 한국인에 대한 조선족의 심경을 들려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문제없습네다(양자 사이에는 큰 일이 없습니다)”며 한사코 거절한다.

그러다가 잠시후 한 할아버지와 함께 기자곁에 다가앉았다. “…망국의 한을 달래가며 젖먹이 들쳐업고 세살바기 질질 끌며 두만강을 건넜어. 그저, 보리 밥이라도 제때 먹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구. 그런데 그 간도 땅, 휑하니 아무것도 없더구먼…” 조선족 오상복 할아버지의 말에는 처연함이 그득하다. 우리 모두 ‘인생’이라는 한 단어를 사용하지만, 그렇다고 우리네 삶이, 수전증에 흔들흔들 애처로이 들어올리는 술잔속의 격랑같은 그의 억센 삶과 동일한 ‘인생’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때는 남이건 북이건, 간도에 있건 어디에 있건 우리 한민족은 강했지. 초근으로 연명했을 망정 서로를 위하고 단결하여 왜놈에게 맞서고 되놈과 싸웠다구…. 그런데 지금, 한국인들을 원망하고 미워하고, 또 우리를 탓하고 무시하고…. 이게, 모두 정상이 아니야. 돈이 뭐가 그리 대수인가. 개, 소마냥 동포끼리 서로 헐뜯고 시기하고 등쳐먹는 이 세상, 내가 너무 오래 살았어, 너무 오래 살았다니까….” 오랜만에 맞이하게 된 시뻘건 육계장이며 맛깔스런 잡채는, 떨궈진 고개를 가눌 길 없던 기자와 식당주인 K씨 사이를 기웃기웃 맴돌기만 하였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나도 바빴다. 먹고살기에 급급, 남에게 눈길 한번 제대로 줄 여유조차 가지질 못했다. 아니, 남을 돌아보기는 커녕, 오히려 나를 위해 또 다른 나를 이용하며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하지만 이제 우리 모두 신중히 성찰해야 한다. 우리와 조선족, 과연 이대로 좋은가? 우리와 그들은 이렇게 계속 견원지간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아니, 언제부터 우리가 또 다른 우리와 견원지간으로까지 묘사되기에 이르렀는가. 우리는 일그러져가는 우리를 언제까지 방관만 해야한다는 말인가? “모두 다시 한번 일어서야 해. 백두산 천지에서 멱감고 말야, 모두들, 정신 바짝 차려야 해. 우리 핏줄, 우리 동포, 이러다가 모두 죽어…”. 오 할아버지의 절규를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아줄 지….

조선족 최대 고민은 ‘민족 정체성’

조선족, 중국에서 태어나 우리 말과 중국어를 구사하고 우리와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전통을 누리며 우리 명절에는 아직도 한복을 곱게 차려 입는 이들. 그렇지만 이들의 중국내 삶을 더듬어 보면 운명 이상의 사연이 서려있음을 알게 된다.조선족들은 한반도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자란 우리들이 지니지 않아도 될 고뇌로 괴로워하고 있다. 민족의 아이덴티티(identity), 즉 민족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조선족 신성애씨를 통해 그 고뇌의 일단을 한번 들여다보았다. 수많은 조선족들이 한국이나 중국의 북경, 상해,광주 등의 대도시로 몰리고 있다.

100여년전 조상들이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만주땅으로 몰려든 것과 같은 이유로 우리는 연변을 떠나 낯선 곳으로 이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이야 같은 핏줄이 사는 곳이니 그렇다치자. 그러나 중국 타지로의 이주 정착에는 적지 않은 문제가 동반된다. 그 문제는 우리 자녀들이 자라면서 더욱 불거지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교육문제이다.

예를 들어, 자식들이 자라 한족(중국의 주류민족) 유치원 보내고, 초·중·고등학교도 모두 한족 학교에 진학시키면 우리 아이들은 정녕 어떤 아이가 될 것인가? 그러한 교육을 받고 자란 우리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사회에 진출했을 때, 한족의 교육체계와 사고방식에 의해 사실상 한족이 되어있을 텐데 이 때 그들을 우리 한민족 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렇게 되면 민족의 개념은 상실되고 뿌리는 송두리째 흔들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언어를 상실하고 문화를 잃고, 이로 인해 그 민족의 얼까지 잃은 아이에게 한민족임을 수백번 들려준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제 우리 민족이 뭉쳐야 한다. 이제 잠자는 우리민족이 깨어 자신의 신분을 명확히 할 때가 되었다. 민족이 뭉쳐 우리 후손들이 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온전한 교육을 받도록 힘을 모아야한다. 한민족 모두가 힘을 합쳐 우리의 희망이고 자랑인 우리 후손들을 올바른 우리 한민족의 후예로 바르게 키워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중국 고소득층 그들은 누구인가

신흥 고소득계층 ‘차보스’ 초호화 생활코트라 베이징 무역관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2004년 중국의 사치재 시장규모는 약 20억 달러로 전세계 사치품 소매총액의 약 3%의 비중을 차지한다. 고소득층이 증가하면서 중국은 10년 내 세계 2대 사치재 시장으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의 고소득층 소비자는 누구일까. 중국의 신흥 고소득 소비 계층은 보보스(BOBOS: Bohemia Bourgeois)에 빗대어 ‘차보스(CHABOS: China BOBOS)’라 불리며 서구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특징을 지닌다. 특히 이들 중에서도 중국의 초고소득 계층은 도시 인구의 대략 1% 가량을 차지한다. 중국 13억 인구 중 도시 인구를 약 5억 명이라 한다면, 5백만 명 가량의 하이클래스 소비자가 존재한다고 추산할 수 있다. 상하이를 기준으로 한다면 이러한 초고소득층 소비자는 약 10만 명에 달하며, 이들이 명품 구입에 쓰는 돈은 연간 20억 달러에 이른다.

20억 달러라면 상하이에서 일반 노무직 근로자 3백만 명을 1년 동안 고용할 수 있는 돈이다. 이러한 차보스들은 제품 구입시 프리미엄 브랜드를 선호하는 등 비가격적 속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베이징 중심가의 매머드 쇼핑몰인 ‘東方新天地’에는 주말에 40만 명의 인파가 몰려든다. 이곳에는 구찌, 버버리, 루이뷔통과 같은 명품 브랜드 숍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재미있는 것은 중국에서는 사람의 차림새를 보고 그 사람이 얼마나 부자인가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한국인의 눈으로 보기에 세련되지 못한 차림새의 사람이 명품 매장에서 한번에 수백만원 어치의 쇼핑을 하고는 벤츠를 타고 유유히 사라지는 모습은 이들 차보스들의 일반적인 생활 패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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