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정체성·대선패배 책임론 놓고 ‘험로’ 예고

▲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7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회초리 민생투어는 '쇼'가 아니다"라며 언성을 높이고 있다. <사진=정대웅 기자>

[일요서울ㅣ정찬대 기자] 민주통합당이 당 안팎의 위기론을 타개하기 위해 문희상 비대위원장 체제를 출범, 강력한 쇄신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구체적 혁신 방안을 놓고 여전히 주류-비주류간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당장 대선 패배의 원인을 둘러싸고 ‘친노 책임론’과 ‘민주당 책임론’이 맞서고 있으며, 전당대회 시기를 놓고도 양측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물밑에선 전당대회 경선룰과 관련해 벌써부터 치열한 기싸움이 벌어지고 있으며, 여기에 정체성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일각에선 “당이 산으로 가고 있다”는 한탄 섞인 말까지 들린다.

비대위 꾸려졌지만... ‘엇박자’ 보여

민주통합당이 비상대책위 체제를 꾸리자마자 당 정체성 재정립과 대선 패배의 책임론을 놓고 계파 간 노선투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특히 조만간 이뤄질 대선 평가 과정에서 주류와 비주류간 격돌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적잖은 험로가 예고되고 있다.

지난 14일 문희상 비대위원장 주재로 비대위 첫 회의가 열렸지만 구체적 쇄신 방안을 놓고 계파간 입장차가 존재했다. 저마다 ‘엄중한 상황’을 외치며 ‘쇄신’을 강조했지만 몇몇 사안에 대해서는 엇박자를 보이기도 했다.

회의에 앞서 이날 오전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한 민주통합당 의원단은 전날 문희상 위원장의 참배 총동원령에도 불구하고 127명 가운데 3분의 1정도만 참석했다.

이용득 비대위원은 “127명이 한마음이 돼야 하는데 현충원에 많이 모이지 않았다. 민주통합당을 대표할 만한 의원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당황한 문 위원장은 “연락을 못했거나 외국에 있어 불참했을 것이다. 개인 의사를 표시하는 건 좋은데 불쑥 얘기하면 이견으로 비친다”고 수습했다.

“회초리 민생투어는 이벤트성 쇼”

대선 패배에 대한 책임과 사죄의 뜻으로 ‘회초리 민생투어’를 진행한 민주통합당은 지난 15일 광주를 시작으로 부산과 대전, 충남 등지를 잇달아 방문했다. 그러나 당 안팎에선 냉소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회초리 민생투어가 이벤트성 쇼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당내 비주류인 정청래 의원은 지난 16일 한 라디오인터뷰에서 ‘회초리 민생투어’와 관련, “이런 것보다는 차라리 어디 공사현장에 가서 일하는 게 낫지 보기에도 민망하고 그다지 성과가 있는 것 같지도 않다”고 평가 절하했다.

그는 “현충원에서 석고대죄 삼배를 했는데 그 장면 하나하나가 좀 민망하다”고 일침한 뒤 “회초리 때릴 사람도 안 모였다는 것 아니냐. 그래서 이게 이벤트성 쇼”라고 쓴 소리를 내뱉었다.

이에 대해 문 위원장은 “어떤 사람은 쇼라고 하는데, 무릎 꿇고 절하는 것 자체가 힘든 분들의 절하는 모습을 보고 쇼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도대체 어느 당 출신이냐”며 질타했다.

그러면서 “친노니 비노니, 주류니 비주류니 기본적으로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 친노 아닌 사람,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안 팔고 국회의원 된 사람이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정체성 논란으로 번진 ‘좌우이념’

좌경화된 당 정체성을 다시금 중립으로 재설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이와 관련 당내 일각에선 과거 열린우리당 시절 ‘난닝구(실용) 대 빽바지(개혁)’ 논란을 재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손학규계인 김동철 비대위원은 지난 14일 한 라디오인터뷰에서 “극단주의가 없어져야 한다. 민주당이 그런 점에서 국민을 불안케 하고 불신감을 심어준 측면이 많다”고 지적, 당 정체성의 재수정을 요구했다.

쇄신파 모임인 안민석 의원은 “이번 대선을 끝으로 보수 대 진보로 나뉘는 정치 구조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며 “시대적 상황에 맞게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야 한다”고 탈이념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들의 공통된 의견은 친노 주류 측이 당권을 잡으면서 당이 좌경화됐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참여연대 출신의 김기식 의원은 “마치 좀 더 진보한 것이 대선 패배의 원인이라고 하는 것은 전혀 부적절한 평가”라며 “그것은 원인진단도 잘못됐을 뿐만 아니라 당의 정체성 노선도 훼손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런 가운데 당내 일각에선 ‘하방(下放)’ 운동도 제기된다. 대선 전 이해찬-박지원 사퇴요구가 거세지자 박 전 원내대표는 안철수 전 후보와의 단일화를 앞두고 하방을 선언, 지역구인 호남에 머물며 문 후보의 지원유세를 펼치기도 했다.

정청래 의원은 이와 관련 “지금 우리는 좌클릭, 우클릭 이런 얘기를 할 때가 아니라 실제로는 하클릭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하방으로 내려가고 국민 속으로 더 내려가는 정책을 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한 초선의원도 본지와의 통화에서 “소수약자나 지역민심을 챙기는 등 더 아래로 내려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읍소했다.

대선 평가 앞두고 ‘친노 책임론’ 재부상

대선 패배의 원인을 두고 가장 크게 대립하는 부분은 ‘친노 책임론’이다. 비주류 진영은 이해찬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문재인 후보 추대론’을 강하게 문제 삼으며 이로 인한 계파갈등을 지적한다. 반면, 주류 측에서는 “대선 패배의 책임은 민주당 전체 있다”고 반박한다. 오히려 비주류 측이 뒷짐만 졌다며 역 책임론까지 거론하고 있다.

문 전 후보의 이른 정치행보에 대해서도 비주류 일각에선 정계은퇴까지 언급하며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김영환 의원은 지난 11일 한 방송에 출연해 문 전 후보의 이른 정치적 행보에 대해 “일단은 ‘선거에 진 책임이 나한테 있다’라는 태도가 필요하다. 정계은퇴에 버금가는 태도를 보여줘야 한다”고 일침 했다.

한편, ‘친노의 2선 후퇴’ 요구가 당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선 친노계가 다수인 비례대표 의원들의 자진 사퇴설도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어차피 다음 순번이 비례의원직을 승계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푸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와 관련 한 비례의원은 지난 18일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대선 패배에 대한 평가를 받으려면 오히려 지역구 의원들이 더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냐”며 일각에서 제기되는 비례의원 자진 사퇴설에 강한 불만을 터뜨렸다.

민주통합당 비대위는 지난 18일 대선평가위원장과 정치혁신위원장을 각각 인선했다. 대선평가위원장에는 ‘안철수 캠프’의 국정자문단으로 활동했던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정치혁신위원장에는 ‘문재인 캠프’의 새정치위원회 간사를 맡았던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가 임명됐다.

정치권 안팎에선 대선 평가와 정치혁신 논의 과정에서 ‘문재인 책임론’과 ‘친노의 2선 후퇴론’이 또 다시 재기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대선평가 보고서’ 내용을 두고 당내 갈등이 재연될 공산이 크다는 관측이다. 그런 점에서 주류-비주류간 공방은 제2라운드를 앞두고 있다.

<정찬대 기자> minch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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