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정월 초하루, 즉 설날 인사말 가운데 하나가 “돈 많이 벌어 부자되세요”이다. 설날 인사에는 이외에도 “소원이 뜻대로 이뤄지시길 바랍니다”, “건강하시고 모든 일이 순조롭기를 바랍니다”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돈 버는 데는 남 다른 재능이 있다고 일컬어지는 중국인들, 새해인사도 당당히 돈 많이 벌라는 이 말이 가장 널리 애용된다.중국인들은 3000여년 전부터 음력을 사용, 음력 정월 초하루가 신니엔(新年)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20세기 초가 되면서 춘지에(春節, 춘절)라는 표현으로 바뀌며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그 결과 중국에서는 음력 설을 더 이상 신년이라 호칭하지 않고 춘지에라고 부른다.

춘지에란 원래 추운 겨울이 지나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도래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현재는 한국의 설날과 마찬가지로 명실공히 중국의 가장 큰 명절로 지켜지고 있다. 한국의 설날에는 민족의 대이동이라 하여 4,000만명 중 절반이 넘는 2,000만명 이상의 인구가 이동하는데 비해 중국의 춘지에 때는 ‘대륙의 대이동’이 빚어진다. 무려 수억명의 중국인민들이 귀성길에 오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춘지에 무렵이면 중국거리는 물론이거니와 기차역, 장거리 버스정류장, 공항 등은 다른 나라에선 볼 수 없는 오직 중국인만이 가능한 인산인해가 이뤄진다. 이들 인파속에서 실제로 압사당하는 풍경도 종종 발생한다고 한다.

상하이 기차역 앞 광장. 아직 춘지에를 일주일 정도 남겨둔 시점이지만 이곳은 정말이지 ‘발디딜 틈이 없다’는 표현이 딱 맞을 듯한 광경이 빚어지고 있다. “난 한국인 무역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연변에는 거저, 우리 가족과 친척들이 다 몰려 있어요. 빨리 가서 모두들, 만나고 싶어요.”그 속에서 만난 몇 몇 귀성객중의 하나인 예쁘장한 용모의 조선족 전모(여·20대)씨. 그녀는 어머니가 만들어 주실 맛난 음식 생각에 벌써부터 설날 후의 다이어트가 걱정이라고 말하며 얼굴을 붉힌다. “일년만에 돌아갑니다. 아들 놈과 마누라가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해 죽겠어요.”귀주성에서 건설노동자 일자리를 찾아 온 중국인 쉬(30대·남)씨. 이미 홍안이 되어버린 그를 보고 기자는 귀성의 설렘에 흥분된 나머지 몇 잔 걸친 것이라 생각해보았지만 그렇지 만은 아닌 것 같다.

열차 좌석을 구하지 못해 애타는 마음에서 몇잔의 술을 마신 것이다. 하기는 우리도 명절 때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10시간 넘는 귀성 길에 시달려야 하질 않던가. 이렇게 볼 때 귀성 길의 고단함이라 표현하는 것도 이해가 안되는 일만은 아니다. 그런데 같은 귀성 길이기는 하지만 중국인들의 고단함은 정말 고단함이라는 표현이 걸맞다. 우리의 귀성과는 차원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중국대륙이 얼마나 광할한가! 그만큼 귀성에 소요되는 시간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물론 비행기도 있지만 일반 대다수의 서민들에게 이는 그림의 떡일 뿐.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귀성열차나 장거리 버스에 몸을 맡겨야 하는데 그 여정이 장난이 아니다.

예를 들면 상하이와 경계를 맞대고 있는 장쑤성의 바로 옆 안휘성까지 가려면 일반 기차나 버스로 하루를 꼬박 가야 한다. 하물며 그 넓은 대륙의 다른 지역은 오죽하랴. 실제로 조선족 전씨의 경우, 연변까지는 상하이에서 빠른 기차로 꼬박 2박3일을 달려가야 하며, 귀주성에서 온 쉬씨는 4일간을, 중부내륙의 티벳 자치구 등에서 온 사람들은 거의 일주일 이상을 기차나 버스속에서 보내야 한다. 매년 되풀이되는 ‘대장정’이 아닐 수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중국의 춘지에 연휴기간은 공식적으로 5일 정도에 불과하나 사실상 2주 이상을 쉬는 이들도 적지 않다. 오가느라 거리에 쏟아붓는 시간만도 10일이 걸리는 판이니 그도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렇게 어렵사리 도착한 고향마을에서 새해 첫 날을 맞이하는 모습 또한 요란하다. 중국인들도 섣달 그믐을 지나 춘지에가 막 시작되는 0시 무렵이 되면, 어떤 특정한 소리를 들으며 새 날을 맞이한다. 그 특정한 소리란 다름아닌 폭죽소리. 중국인들은 ‘대단히’ 요란하게 폭죽을 터트린다. 그 대단함이 어느 정도냐면 곤히 자던 아이가 마치 경기를 일으키 듯 새파랗게 놀라 어쩔 줄을 몰라하거나 영문 모르는 외국인들은 마치 전쟁이라도 시작된 듯한 공포감에 뒷머리카락이 쭈뼛거릴 정도이다. 귀신을 내쫓는다는 의미로 행하고 있는 그들의 폭죽행사는 고층 아파트의 실내까지 화약냄새가 자욱하게 베일 만큼, 시커먼 밤을 온통 새하얗게 물들인다.

이러다 보니 화약관련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없다. 해서 정월 초하루 매스컴에서는 지난 밤의 폭죽으로 올해는 몇 명이 죽고 다쳤네, 어쩌네 하며, 폭죽 관련 사상자 보도가 단골이 되다시피 됐다. 하지만 이들 중국인들, 뻑쩍지근하게 폭죽행사를 마친 뒤 이번에는 가족 친지들과 둘러앉아 우리의 떡국과 비슷한 자오즈(餃子, 우리의 만두)와 흰 색 웬즈(圓子, 우리의 동그란 팥떡과 비슷) 등을 빚어먹으며 첫 해를 맞이하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인들은 붉은 색을 유난히 좋아한다. 중국인들에게 있어 붉은 색과 노랑 색은 부귀와 영화, 고귀, 품격 등을 나타낸다. 따라서 중국인들은 춘지에와 같은 명절을 온통 붉게 장식한다. 실제로 각종 백화점이나 대형소매점, 고급 레스토랑 등이 밀집한 쇼핑가는 물론 개인 집 대문이나 현관 앞도 온통 울긋불긋 붉은 색 일색으로 도배하다시피 한다. 한편 중국에도 세뱃돈이 있다.

세뱃돈을 중국어로는 홍빠오(紅包)라고 하는데 여기에도 붉은 색은 어김없이 등장한다. 붉은 색 봉투인 홍빠오에 돈을 넣어 주기 때문이다. 세뱃돈 금액으로는 대학생 정도가 되면 대략 100위안(약 1만3,000원)에서 500위안(약 7만원 정도)을 받는다니 결코 적지 않은 수익이다. 중국에서 지내다보면 중국인들의 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은 이때 만큼은 아무리 멀고 험하더라도 귀성을 당연시하며 또 실제로 그렇게 행동에 옮긴다. 여비를 아끼려 허름한 장거리 시외버스에, 그것도 입석으로 며칠간을 서서 고향 땅에 도착하면 다리가 퉁퉁 부어 며칠 동안 걷기조차 힘들게 된다지만 그래도 고향 길을 향한 장정은 줄어들지 않는다. 이들로부터 기자는 우리가 점점 잃어가고 있는 소중한 그 무언가를 발견하곤 숙연해지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날. 우리 말의 ‘설’은 조심하라는 의미인 ‘사린다’ 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이로 미뤄볼 때 이 말에는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만큼 매사에 신중을 기하며 조심하라는 선현의 가르침이 담겨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쪼록 독자제위도 모처럼만에 다시 만나는 가족 친지들과 함께 설날의 의미를 되새기며 새해에는 더욱 멋있게 정진하는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란다. <중국 상해=우수근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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