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블랙리스트 떠돈다

▲ 정대웅 기자
‘젠틀맨’으로 불리던 P비서관…‘명성’ 하루아침 무너져 
“혹시 A비서관 아니냐” 나오기도…“금주령 내렸으면”

[일요서울ㅣ박형남 기자] 정치권에 ‘보좌진 수난사’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보좌진들의 ‘잘못된 행동’이 구설수에 오르고 있어서다. 여론의 뭇매를 맞는 것은 기본. 정치권에서는 해당 인사를 찾기에 분주하다. 일부에서는 과거 보좌관들이 구설에 올랐던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다. [일요서울]이 976호에서 전한 <새누리당 K의원 보좌진 ‘영업맨’으로 전략한 사연>이라는 기사에서처럼 금전적 문제까지 어깨에 짊어져야 하는 이들도 있다. 보좌진 수난사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보좌진의 수난사는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보좌진이 국회의원 의전을 잘못했다고 해당 의원으로부터 공개질타를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해왔다. 심지어 보좌관의 정강이를 까거나 재떨이를 던지는 ‘막가파식’ 국회의원도 적지 않았다. 또 일부 보좌진은 국회의원들의 후원금 때문에 자신의 사비를 털거나 주변 지인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며 충성하고 있다. 

보좌진 사건사고 잇달아

그러나 최근 국회의원 보좌진이 잇달아 여론의 도마에 올라 의원들이 진땀을 흘리고 있다. 민주통합당 K의원실 P비서관이 그렇다. P비서관은 이른바 ‘젠틀맨’의 대표적인 케이스다. 17대 때 S의원실에 비서로 근무했다 S의원이 낙마하면서 K의원실로 옮겼다. 국회 경력만 10여년 가까이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보좌진 사이에선 점잖고 성품이 좋은 사람으로 평판도 좋다.

하지만 이렇게 쌓은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게 됐다. P비서관은 지난 15일 1시40분경 30대 회사원을 폭행한 혐의로 입건됐다. P비서관은 서울 서초구 서초동 한 편의점 현금인출기 앞에서 술에 취한 상태로 오모씨의 머리채를 잡고 복부를 걷어찬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조사 결과 P비서관이 편의점 내 인출기에서 현금을 찾다가 뒤에서 기다리던 오씨와 시비가 붙어 함께 밖으로 나가 몸싸움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P비서관이 근무하던 의원실에서는 이 사건으로 인해 전화기에 불이 났을 뿐 아니라 사태 수습을 위해 합의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P비서관을 잘 알고 있는 한 보좌관은 지난 16일 [일요서울]과 만난 자리에서 “P비서관은 그럴 분이 아닌데…”라며 운을 뗀 후 “언론에서 나온 것 이외에 다른 무엇인가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을 것”이라고 P비서관을 옹호했다.

P비서관 사건이 불거진 가운데 같은 날 제주도에서 비슷한 사건이 발생해 보좌관들의 체면을 제대로 구겼다. 제주지역 현역 국회의원 보좌관이 행인과 말싸움을 벌이다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에 따르면 현역 국회의원 지역 보좌관 A씨는 지난 14일 밤 10시경 제주시 노형의 한 모텔 앞에서 만취한 상태에서 행인인 B씨와 말다툼을 벌이다 B씨를 폭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한날 비슷한 사건이 발생한 탓일까. 그 파장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해당 인사들이 누구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파악하기에 급급하다.

뿐만 아니라 사건사고에 연루된 보좌진의 경우 동료 보좌진들이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우가 많아 적잖은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그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례로 한 보좌관은 ‘여성 문제’로 보좌진으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됐다. 그의 노력 끝에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혀졌지만 결국 주변의 시선 때문에 ‘사직서’를 제출해야만 했다.   

또 ‘혹시나’하는 마음에 자신과 친분이 있는 인사가 연루된 것은 아닌가라고 노심초사하고 있는 이들도 많다. 일부에선 ‘블랙리스 명단이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한 보좌관은 [일요서울]과 만난 자리에서 “언론에 나온 기사를 봤을 때 의심되는 인사들 몇명이 늘 있었다”며 “그 역시 비슷한 성격을 소유하고 있어서 혹시나 했다”고 귀띔했다. 이어 “보좌진 중에 이를 조심해야 될 보좌관들이 있다”며 “이와 비슷한 사건이 나올 때마다 위험 인사들부터 오르내리곤 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 관계자는 ‘블랙리스트’에 대해선 함구했다.  

‘블랙리스트 후보’들이 보좌진 사이에서 은밀히 입으로 전해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태로 인해 과거 보좌진들의 개인비리 등에 대한 얘기까지 확전되고 있어 보좌진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실제 2011년 발생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운전기사 사건이 대표적이다. 탈세의혹을 둘러싼 협박 사건에 연루돼 수백 만 원을 받은 혐의를 받았던 박 당선인의 운전기사는 이 사건으로 인해 사직서를 냈다. 그러나 일부에선 운전기사가 다시 복귀할 것이라는 말이 파다하다. 박 당선인은 국회 내에서도 보좌진을 오래 데리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번 쓴 인사는 쉽게 바꾸지 않는 편이기 때문이다.

보좌진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경우도 있다.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일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와 박 시장의 홈페이지 ‘원순닷컴’에 디도스 공격을 가해 접속 장애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로 인해 새누리당 최구식 전 의원의 전 비서관 공씨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보좌진 사기 저하

한편, ‘술’로 인해 보좌진의 사건사고가 발생하자, 보좌진 사이에서는 “차라리 금주령을 내리는 것이 속이 편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보좌진은 산하기관과의 교류 등 전담 업무를 하다보면 술자리가 잦을 수밖에 없다. 일부는 피할 수 있지만 피할 수 없는 자리도 수두룩하다. 때문에 술자리를 줄이고 보좌진으로서의 업무에 집중하는 게 더 속이 편하다는 게 보좌진의 이구동성이다.

한 보좌관은 “솔직히 술자리를 마지못해 가는 경우가 많다”며 “금주령을 내리면 우리도 편하고 사건사고도 발생하지 않다는 점에서 일거양득 아니냐”고 반문했다.

10년 이상 국회에서 근무한 한 보좌관은 “일부 보좌진의 그릇된 판단과 행동으로 전체 보좌진 사기가 꺾이거나 보좌진에 대한 선입견이 더더욱 안 좋아지고 있다”라며 “보좌진 스스로 각별한 윤리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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