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기 어려운 비정규직 고용보장 문제


- 무기계약직과 정규직 사이의 간극 못 좁히나
- 고용만 보장한 분리직군, ‘중규직’ 재현 논란도

- 대대적인 새 정부 ‘눈치보기’로 정권 입맛 맞추나
- 진정한 의미의 고용보장 위한 다각도의 검토 필요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산업·기업·신한은행 등 주요 은행들이 계약직을 무기계약직이나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잇달아 발표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전부터 문제로 떠오른 ‘중규직’ 논란과 대대적인 새 정부 ‘눈치보기’라는 우려가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특히 전환 시에도 기존 정규직과 비교해 직무와 급여 체계가 별도로 구성되기 때문에 오히려 차별을 고착화시킨다는 지적이 주를 이룬다. 또한 새 정부 출범에 맞추기 위해 제대로 된 검토 없이 성급하게 전환함으로써 자칫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신한은행은 계약직 직원 838명 전원을 정규직 중 리테일서비스 직군으로 전환했다고 지난 11일 밝혔다.

신한은행에 따르면 현재 근무 중인 계약직 전담텔러 직원 695명 전원은 정규직으로 전환됐으며, 지난해 12월 채용돼 연수중인 143명도 모두 정규직으로 신규 발령된다. 이중에는 고졸직원도 85명가량 포함돼 있다.

이번 전환으로 계약직 직원들은 기존 정규직 직원과 동일한 정년(만 58세)을 보장받고 기타 처우 및 복리후생 등을 동일하게 적용받게 된다. 또한 직급에 따라 직무도 확대될 예정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향후 채용하는 모든 텔러를 계약직으로 채용하지 않고 정규직으로 채용해 일자리 창출 및 고용안정에 앞장 설 계획”이라며 “정규직으로 전환된 직원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은행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신한생명도 지난 16일 사무계약직 220여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신한생명 관계자는 “여성대통령 시대를 맞아 사무직 여직원들에게도 공정하고 투명한 승진 기회를 부여하고 전문금융인으로 성공할 수 있도록 이번 인사를 단행했다”고 말했다.

무늬만 정규직?…안도와 탄식 교차

하지만 실제 계약직 직원들 사이에서는 안도와 탄식이 엇갈리고 있다. 무늬만 정규직일 뿐 사실상 일종의 무기계약직이라는 이유에서다.

신한은행에 근무 중인 한 계약직 직원은 “무기계약직과 정규직 사이에는 일종의 신분차와 같은 위화감이 존재한다”면서 “무기계약직 전환도 뜻깊은 일이지만 분명 기존 정규직과는 다른 직군을 동일하게 홍보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정직한 쪽은 무기계약직임을 명시한 기업은행이었다. 기업은행은 기간제 계약직 1132명 전원을 정년이 보장되는 무기계약직으로 일괄 전환했다고 지난 2일 밝혔다.

전환 대상 기간제 계약직은 창구텔러와 전화상담원, 사무지원, 본부서무, 비서, 일반전문직군 등이며, 특성화고 출신은 2011년 채용한 직원부터 지난해 12월 입행한 직원까지 모두 176명이 포함됐다.

기업은행에 따르면 그동안 창구텔러 등 기간제 계약직원은 통상 2년을 근무해야 무기계약직 전환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번 전환은 모든 기간제 계약직을 대상으로 이뤄져 현재 재직 중인 직원들은 입행 이후 근무기간에 상관없이 모두 혜택을 받게 됐다.

전환된 직원들에게는 정년(만 59세) 보장과 함께 정규직과 같은 수준의 복지가 제공되며, 일정 요건을 갖추면 정규직 전환도 가능하다. 또한 기업은행은 향후 모든 계약직을 무기계약직으로 채용할 계획이다.

두 은행의 경우 명시한 단어만 정규직과 무기계약직으로 다를 뿐 내용을 들여다보면 일반적인 무기계약직의 처우에 준함을 알 수 있다. 기업은행에 근무 중인 한 계약직 직원은 “(당행의 발표가 난 후) 타행은 정규직으로 전환이라는 발표가 나서 잠시 놀랐지만 실상을 알고는 가라앉혔다”면서 “타행 직원들 역시 무기계약직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알고 이내 가라앉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정규직도 전부 다른 천차만별 형태

산업은행의 경우에는 조금 더 복잡하다.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한 것이다. 산업은행과 산은 노조는 임금단체협상을 통해 현재 재직 중인 무기계약직 370여명을 이르면 올해 초까지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 합의했다고 지난해 12월 31일 밝혔다.

전환 시 산업은행 사규상 고용 형태를 정규직으로 일원화하며 퇴사 후 재입사 등의 과정 등을 없애 경력을 그대로 인정받는다. 다만 처우는 기존의 6급 행원과 비슷한 정도로 규정하고 추후 대졸공채와 같은 5급으로 승진하기 위한 조건은 아직 협의 중이다. 지금까지 무기계약직원이 승진하기 위해서는 정규직 전환고시를 치러야 했지만 향후 전환고시를 폐지하고 사내대학인 KDB금융대를 졸업하는 등 자격요건을 산정해 승진시킬 가능성이 높다.

앞서 부산은행의 사례와 비슷한 만큼 비교도 이뤄지고 있다. 그나마 진일보된 모델로 평가받았던 부산은행은 2007년 비정규직 600여명을 정규직으로 일괄 전환하면서 기존 정규직인 1~6급 외에 추가로 7급을 신설하는 방식을 택했다. 새로운 직군이 아닌 급수를 만들어 동일한 직무와 급여 체계를 구축한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전환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탓에 취할 수 있었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타 은행 관계자는 “대형 시중은행들의 경우 전체 규모가 큰 만큼 비정규직 인원수도 많기 때문에 쉽게 시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중규직’의 비애…신분은 정규직, 급여는 비정규직

연이은 고용형태 전환 발표에 금융권 일각에서는 우려가 새나오고 있다. 특히 ‘중규직’의 확대 논란이다. 이들은 “이번 전환은 앞서 은행들이 비정규직을 줄이기 위해 도입했던 ‘중규직’의 확대 가능성이 엿보인다”면서 “자칫하면 계약직과 일반 대졸공채 정규직 사이에 존재하는 간격을 더 늘리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앞서 우리은행이 시도했던 분리직군제도 이러한 비판에 직면한 바 있다. 우리은행은 2007년 개인금융서비스ㆍ고객만족(CS)ㆍ사무직군 등 분리직군제를 도입하면서 비정규직 3076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 앞장섰다.

그러나 이들 직군에서 기존 정규직인 개인금융ㆍ기업금융ㆍ투자금융ㆍ경영지원직군 등으로 이동하려면 근무기간 등 자격조건을 충족해야만 했다. 연봉 체계 또한 기존의 정규직과는 판을 달리 했다. 해당 직군의 연봉은 기존 정규직 신입행원으로 입사한 동기들의 60%에 불과하다.

이로 인해 금융권에서는 정규직ㆍ비정규직 어느 쪽도 아니라는 뜻의 ‘중규직’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신분은 무늬만이라도 그럴싸한 정규직이지만 급여는 비정규직일 때와 별반 차이 없이 오히려 묶여 있는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같은 해 국민은행도 3년 이상 근무한 계약직 8000여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다. 국민은행의 경우에도 고용이 보장되고 급여가 기존 정규직의 53%가량에서 70%로 오른 정도를 제외하면 일반 계약직일 때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고용보장 문제 더욱 엉키게 할 수도

결국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은 은행마다 정규직ㆍ무기계약직ㆍ분리직군ㆍ하위직급 등 이름을 달리할 뿐 사실상 ‘중규직’에 지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중규직’이 이미 비정규직의 또 다른 형태로 자리하면서 고용보장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더욱 늦추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측에서는 “전환 시에도 기존 정규직과 비교해 직무나 인사체계가 별도 구성된다는 점에서 차별을 고착화할 수 있다”며 현실적인 한계가 있음을 짚었다.

금융노조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국내 금융권 35개 사업장 직원 10만8463명 중 무기계약직을 포함한 비정규직은 20%인 2만2237명에 달한다.

또한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9월말 기준 국내 은행 전체 직원 13만5000명중 무기계약직을 포함한 비정규직은 26%인 3만5200명이다. 이중 국민ㆍ신한ㆍ우리ㆍ하나 등 4대 시중은행의 경우 6만886명 중 15%가량인 9362명에 이르렀다.

새 정권 입맛 맞추기라는 의문까지

한편 이러한 고용형태 전환이 새 정권을 위한 입맛 맞추기로 전락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사실 이번 전환은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와 금융노조 간 임금단체협상에 따른 합의사항에 영향을 받은 탓도 있다. 금융권 노사는 지난해 10월 임단협을 통해 1년 이상 일한 기간제 근로자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데 합의했다. 기존에는 2년 이상 일한 계약직 직원만 전환자격을 부여받았다.

하지만 현재까지 발표한 은행들은 기간을 개의치 않고 일괄 전환해 사실상 새 정부의 눈치보기라는 지적이 이어진다. 박근혜 당선인이 비정규직 고용안정 및 차별철폐 공약을 내건 이후 이미 경제 분야에서 해당 사항들을 주문하기 시작했다는 후문도 나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전환이 진정한 정규직과는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새 정부에게 보여주려는 입맛 맞추기에 지나지 않는 건 아닌지 회의가 든다”면서 “고용보장 문제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다각도로 검토해 제대로 된 해법을 찾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