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무부의 발표에 의하면 중국의 수출입 총액이 처음으로 1조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상무부는 “2004년 중국의 수출입이 전년 대비 37% 증가, 중국이 세계무역 증가에 기여한 비율은 11.3%로 단연 세계 1위를 차지했다”며 “중국덕에 전세계가 양질의 제품을 저렴하게 즐기고 있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다. 2004년 중국 항구의 화물처리량도 40억톤을 넘어 세계 1위라는 부동의 위치를 지켰다고 관영 CCTV가 보도했다. 중국언론들은 소득증가 덕에 2003년 중국의 ADSL 가입자가 100만명을 초과, 미국을 제치고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큰 ADSL시장으로 등극했다고 보도했다. 아울러 중국정부는 초당 연산속도가 11조인 초 슈퍼 컴퓨터 개발에 성공, 상하이 전선센터에서 가동을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이로 인해 중국은 미국을 능가하는 슈퍼 컴퓨터 실용화에 성공하였다고 들떠있다. 이처럼 경제발전에 자신감이 차 있는 중국에서는 현재 ‘세계최대!’, ‘세계최고!’, ‘세계최초!’라는 수식어가 당대의 유행어로 애용되고 있다. 오죽하면 라면 또한 1984년 중국에 처음 선보인 이래 20여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중국은 이미 전세계 라면의 절반이상을 소비하는 세계최대의 라면 소비국이라며 거들먹거리고 있겠는가.실소를 금치못하게 하는 것은 이 뿐만이 아니다. 2003년에 프랑스를 제치고 이미 세계 4위의 자동차 생산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2010년까지 세계 3대 자동차 생산대국으로 진입, 그 여세를 몰아 단기간에 세계최대의 자동차 생산대국으로 발돋움할 것이라며 자신만만하다. 78년의 개혁개방후 25년 동안 이뤄 낸 성과를 보면 이는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정신문화가 어디 외적 경제발전, 물질문화의 성과와 반드시 일치할 수 있겠습니까. 중국사회의 면면을 곰곰이 뜯어 보면 바로 알게 되지요.”중국사회의 물질문명 지상주의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반문하는 한국인 김씨(40대 후반·남). 현재 한국의 한 대기업 상하이 주재 총경리인 그는 북경,청도 상해를 비롯한 중국의 몇개 지역에서 수년간 근무해온 자타공인 중국통이다. 그러한 그가 중국을 다각적으로 파악하고 싶으면 무엇보다도 먼저 중국거리를 걸어보라고 권한다. 그곳에서 경제발전으로 급조된 중국이 아닌, 반만년을 면면히 이어져 온 중국의 참모습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인들의 질서의식, 환경의식 등을 보세요. 이들에게는 도통 공공(公共)이라는 관념이 없는 것 같지 않습니까.” 기자가 직접 경험한 바에 의해도 중국거리는 참 재미있다. 여기저기 나부끼는 온갖 쓰레기, 오물은 차치하더라도 길가던 연인들이나 산책나온 가족들도 아이스크림 종이나 과자포장지, 우유병 등을 아무렇지도 않게 버린다. 자전거를 타고 옆을 지나가던 사람이 갑자기 이쪽을 향해 걸쭉한 가래 침을 뱉어대는가 하면, 분주한 발걸음을 재촉하는 행인들이 있음에도 불구, 걸레 빤 물을 쫘악 쏟아붓는 꼬질꼬질 아낙네들, 달리던 차를 멈춰 세운 채 노상방뇨하는 사람들, 길가 한복판에서 고래고래 삿대질을 주고받는 이들, 아무데서나 주저앉아 도박판을 벌여대는 사람들의 행동 등 모두 거리낄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들에 대해 누구 하나 그다지 개의치 않는 것을 보면, 가히 중국사회에 뿌리깊은’전통’의 무거움을 새삼 실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보도(차도가 아닌)를 씽씽 오가는 자전거들을 보며 외국인들은 벌컥 화를 낸다. 하지만 그 이방인이 왜 화내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 역력한 중국인민들. 그 외국인은 자신이 괜한 짓을 했음을 나중에야 알게 된다. 이러한 의식상태의 중국인들이다 보니 중국 거리에서의’사고’는 우연이 아닌 필연이다. 어디를 가나 거리를 가득 메운 무수한 자전거들은 사고발생의 주범이다. 중국에는 무수한 자전거들 만큼이나 자전거와 연관된 사고 또한 끊이질 않는다. 실제로 하루 이틀에 한번은 크고 작은 사고를 목격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빈번하다. 기자 또한 이미 적지 않은 사고를 목격하였고 이번 취재중에도 목격하였다(사진 참조). 그런데 기가막힌 것은 사고가 발생하면 중국인들이 벌떼처럼 모여들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부상자를 돕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남의 집 불 구경하듯 바라보며 수근거릴 뿐이다. 중대한 교통사고로 인해 부상자가 피를 흘리며 의식을 잃어도, 연관된 사고 당사자들은 고성방가에 삿대질하며 잘잘못을 따질 뿐, 병원후송 따위는 안중에 없다. 이로 인해 작년 말에는 교통사고를 당한 한 한국인 유학생이 안타갑게도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외국의 선진적 정신문명을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중국과 여러모로 동질성을 지닌 한국은 우리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존재입니다.” 공산당 간부육성 학교에서 국제정치, 특히 한반도 정치경제를 강의하는 짱찡밍(張景明·40대 남)교수의 말이다. 그런데 짱교수처럼 한국을 중국의 정신모델로 생각하는 중국인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문필가인 장홍찌에(張宏杰)씨 또한 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얼마전 중국에서 한국인과 중국인의 국민성을 비교한 <中國人比韓國人少什摩>(의역하자면 “중국인이 한국인보다 못한 점들”)이라는 서적을 출판했다. 저자는 책 속에서 중국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한국인의 장점과 상대적인 중국인의 단점, 예를 들면 “…중국인은 자녀교육시 절대 손해보지 말 것을 강조한다. 하지만 한국인은 어려서부터 타인들에 대한 배려를 가르친다…”, “…축구는 차치하고 축구팬에 대해 비교해보자. 경기후에 한국 팬들은 주변의 쓰레기들을 깨끗이 정리하는 선진적 모습을 보이는데 비해 중국 팬들은 자신들이 앉았던 자리조차 정리하지 않아 쓰레기의 난무가 일상적이지 않은가...”등을 비교하며 중국인의 분발을 촉구하고 있다.

“개혁개방후 현재까지 발전해 오면서 현대사회는 우리에게 새로운 자질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중국인들의 심리상태나 일부생활 습관 등은 아직도 매우 낙후되어 있다. 이로 인해 일부 선진국 국민들은 중국인의 민족자질을 비하하고 있으며 중국인 또한 일종의 자기비하, 열등의식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한국인은 민족 자존심과 자신감이 매우 강하므로 이를 중국사회에 소개하고 싶었다.” 저자가 밝히는 저술 이유이다. 취재를 하며 기자는 문득 기자의 일본유학시절을 떠올리게 되었다. 당시 일본에서 발생한 한 경미한 사고와 관련하여 일본인 은사는 다음과 같은 자조섞힌 한숨을 토로한 바 있다. “오늘의 유럽이 있기까지, 즉 경제와 정신문명이 지금과 같이 균형있게 자리잡기까지는 약 2000여년의 세월이 필요하였다.

그런데 일본을 보라. 1854년 개국이래 불과 100년 만에 유럽경제를 능가하게 되었다지만 과연 정신적인 측면은 어떠한가. 일본에서 빈발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고나 일본인들의 몰상식 등을 보면 우리(일본)는 아직 멀었다. 일본에는 정신적 성숙을 위한 시간이 아직도 많이 필요하다.”이 말을 들으며 기자는 한국에도 이를 적용시켜 보았다. 유럽은 2000년, 일본은 100년, 하지만 한국은 유럽경제의 절반 이상을 이루는데 고작 40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니 어쩌면 우리에게는 일본보다 더한 문제가 잠재되어 있을 수 있다. 다리가 무너지고 백화점이 붕괴되는 현상은 어쩌면 충분히 예견되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 기자는 중국에 서 있다. 수천년간 농경문화를 지켜 온 엄청난 땅덩어리의 인구대국. 그 중국이 불과 20여년 만에 경제대국으로 탈바꿈하고 있고, 정신문화와 충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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