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서울가정법원에서는 한 부부를 둘러싼 공판이 있었다. 40대로 보이는 남편이 아내를 상대로 이혼 및 재산분할 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재판결과 그는 아내 명의로 해두었던 전 재산중 50%를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공판을 마치고 나온 남편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이들 부부 사이에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P씨는 음악에 유달리 재능을 보이는 두 자녀의 장래를 위해 자녀들을 외국으로 유학보내기로 결심했다. 아직 어린 자녀들을 위해 아내도 함께 외국에 내보내야 할 상황이었지만, 그는 자녀들의 장래를 위해 일명 ‘기러기 아빠’ 생활을 감수하기로 한 것이다.이렇게 해서 P씨의 기러기 아빠 생활은 1994년부터 시작된다.P씨가 기러기 아빠되기를 기꺼이 받아들인 이유는 아내가 아이들이 현지에 자리잡는 기간동안만 함께 거주하다가 다시 귀국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시 동안만 체류할 예정이었던 아내는 아이들의 외국생활이 생각처럼 수월하지 못하자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현지에 계속 머무르게 된다.아내와 자녀들이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P씨는 가족들이 함께 머물 수 있는 현지 아파트를 아내 명의로 구입해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정작 아이들과 아내가 외국으로 떠난 이후 P씨의 하루하루는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었다.당장 식사와 빨래 등의 가사 문제는 물론이고 가족과 떨어져 홀로 지내야 한다는 정신적인 외로움도 40대의 가장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그 무렵 P씨는 다니던 금융권에서 퇴직하게 된다. 그는 퇴직 후 곧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으나 경험미숙으로 이내 부도를 맞게 된다. 그는 사업을 접고 다른 회사에 임원으로 재취직하게 되지만 설상가상으로 그 회사 역시 부도를 맞아 회사를 나오게 되는 등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운 지경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P씨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묵묵히 아내와 아이들에게 매달 꼬박꼬박 생활비를 부쳐주는 등 경제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그러나 정작 P씨의 생활은 날로 기울어져가고 있었다. 그는 수입이 변변치 않자 택시운전과 대리운전 등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했다. 갑작스런 퇴직과 부도로 인한 경제난과 혼자라는 외로움 등으로 몸과 마음은 고달팠지만 외국에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그는 더욱 이를 악물었다.P씨는 하루하루 힘들게 마련한 돈을 저축했고 모은 돈을 아낌없이 가족들의 생활비와 학비로 쏟아부으며 가장으로서 성실한 생활을 해왔다. 그 결과 약 4년이 안되는 기간동안 P씨가 송금해준 돈은 2억 4,000만원에 달했다.그러나 P씨의 계속되는 사업실패 소식과 어려움을 접한 그의 아내는 오히려 남편의 재산 탕진을 우려했다. P씨는 걱정하는 아내를 위해 자기 소유의 아파트를 아내 명의로 이전해줌과 동시에 그동안 짬짬이 모아둔 1억원을 아내에게 추가로 송금하기도 했다.이런 고생도 허사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지난해 말이다.

P씨는 그의 딸에게서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된다. 그의 딸이 망설이다 털어놓은 얘기는 가히 충격 그 자체였다. P씨의 아내가 현지에서 다른 남자와 동거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남자가 아들의 지도교수라는 것. 충격적인 사실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P씨는 아내가 최근 자신의 명의로 옮겨놓은 아파트를 처분하기 위해 P씨 몰래 귀국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딸의 말에 따르면 아내는 1999년 경부터 아들의 지도교수인 A씨와 교사와 학부모의 관계로 친분을 쌓아왔다. P씨와 오랫동안 떨어져지내야 하는 상황에서 마음 붙일 곳이 필요했던 그의 아내는 아들 문제로 A씨의 집을 들락거리던 중 정이 들게 된 것이었다. 결국 P씨는 아내를 상대로 이혼 및 재산분할 청구소송을 제기하게 된다.

그러나 아내는 오히려 이혼 및 위자료 5,000만원을 청구하는 반소를 제기했다. “이미 재산분할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재산분할을 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또 아내는 P씨의 경제적 무능과 허황된 행동, 생활비 미지급 등을 이유로 들어 혼인 파탄의 책임은 남편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불행중 다행으로 재판결과는 P씨의 승소였다. 서울가정법원 가사3부(재판장 이강원 부장판사)는 2일 “P씨의 경제적 무능과 허황된 행동, 재산탕진, 생활비 미지급 등으로 혼인관계가 파탄됐다는 증거가 없다”며 “부인의 위자료 청구는 이유가 될 수 없다”고 판결했다.재판부는 이어 “A씨 부부는 이혼하고 부인은 남편에게 재산분할로 4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부인이 외국에 장기 체류하게 됐고, 이후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지자 서로 적극적인 연락을 취하거나 방문을 하지 않으면서 혼인관계의 파탄이 자연스럽게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을 이유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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