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환율 전쟁 이미 시작됐나

- 일본, 자국 경기부양 위한 양적완화 선언 후 다보스포럼서 집중포화 맞아
- 대대적인 환율전쟁 촉발 가능성 대두…주요국 통화량 눈치싸움 돌입할 것

- 현대차 등 국내 자동차기업 위험도 증가…매출 하락은 물론 순위변동까지
- 주요국 통화 대비 원화 환율 절상속도 가장 빠른 한국, 대책 마련에 고심 중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환율전쟁의 시작은 한 나라가 자국의 경기부양을 위해 중앙은행에서 돈을 넘치도록 찍어내는 것에서 비롯된다. 화폐를 풀면 물가는 급등하고 갈 곳 잃은 돈들은 방황하며 투자처를 찾아 자금시장을 교란시키기도 한다.

특히 환율이 떨어지면 자국의 통화가치가 하락해 무역수지는 개선되지만 경쟁국의 수출 상승곡선을 한번에 꺾을 수도 있다. 최근 일본이 선언한 양적완화가 우리나라 수출 기업들에게 절대적으로 위험한 이유다.

게다가 이번 환율전쟁은 미국과 유로존에 이어 일본까지 양적완화에 나서는 형태를 띠고 있다. 한 국가가 살기 위해 통화량을 늘리면 다른 국가들도 경쟁적으로 통화량을 늘리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일본 엔저 정책, 국제적 비난에 몰려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은 지난 22일 물가목표 2%를 달성하기 위해 시장에 돈을 무제한으로 풀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무제한 금융완화 정책’을 발표했다. 일본은행은 기존의 두 배에 이르는 물가상승률 목표치 실현을 위해 제로 금리 정책 등 지속적으로 강력한 금융완화를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이 때문에 지난 23일(현지시간)부터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제43차 세계경제포럼(WEF)에서는 일본의 양적완화로 인한 엔저 현상이 초점으로 떠올랐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개막일에 “이웃나라를 가난하게 만드는 정책을 각국이 채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일본을 겨냥해 발언했다.

특히 일본을 향한 독일의 경고가 눈에 띄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둘째날 “일본 정부의 엔저 정책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일본은행의 무제한 양적완화가 일본 정부의 정치적 영향력 행사 또는 환율조작의 일환이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앞서 옌스 바이트만 독일 중앙은행(분데스방크) 총재도 “일본의 경우 정부가 중앙은행의 자율성을 해치며 공격적 통화정책을 압박하고 있어 환율전쟁의 위험 신호가 보인다”고 경고했으며,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도 “일본이 자국 경제의 부양을 위해 엔화를 평가절하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한 머빈 킹 영국 중앙은행(BOE) 총재는 지난 22일 “일본은행의 결정이 국제 환율 경쟁을 더욱 부추길 것”이라며 “환율 경쟁의 후폭풍을 해결하려면 지금보다 더 큰 고통이 따를 것”이라고 일갈했다.

하지만 일본은 여전히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24일 “경기부양을 위해 공격적인 통화 정책을 계속해야 한다”는 입장을 확고히 했으며 25일에도 “총알을 피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경한 뜻을 밝혔다. 

엔저 현상으로 인한 수출기업 피해 심각

일본의 양적완화로 인해 엔저 현상이 심화될수록 직격탄을 맞는 것은 수출시장에서 경쟁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국내기업들이다.

실제로 현대ㆍ기아차의 경우 원ㆍ달러 환율이 10원 하락하면 매출은 2000억 원가량 떨어진다. 특히 현대차는 원ㆍ엔(100엔) 환율 1% 하락 시 수출 대수가 1% 감소한다는 울산발전연구원의 연구결과도 나왔다.

10원에 1만대가 걸려 있는 셈이다. 원ㆍ엔 환율 10% 하락 시 수출액이 12% 줄어든다는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의 연구결과도 맥을 같이 한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현대차는 24시간 환율 비상 감시팀을 가동 중이다. 올해 초 원ㆍ달러 환율이 연간 기준치인 1050원에 근접한 1060원대까지 내려갔기 때문이다. 원ㆍ엔 환율도 100엔당 1200원 선이 무너지면서 이중고를 겪고 있다.

게다가 일본의 엔저 정책으로 혼다와 같은 일본 자동차기업들은 수출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 최근 전 세계 자동차기업들 중 현대ㆍ기아차의 시가 총액이 4위로 밀려나고 그 자리를 혼다가 대신 차지한 것도 우연은 아니다.

완성차와 직결되는 부품산업도 휘청이기는 마찬가지다. 대부분 협력사의 입장에 서 있는 부품회사들은 중소기업이기 때문에 대기업보다도 힘든 환율전쟁을 치러야 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영역을 넓혀가던 IT 부문 역시 두려움에 떨고 있다. 일본 전자기업들이 엔저를 무기로 수출량을 늘리면 다시 순위가 뒤집어질 수 있다는 걱정에서다. 

원ㆍ달러도 문제지만 원ㆍ엔 환율 대비해야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는 지난 25일 ‘2013 국내외 경제 불안 요인 분석 보고서’에서 지난해 한국 경제의 대내외 불안 요인이 올해도 지속되는 것은 물론, 일본으로 인한 불안 요인이 추가됐다고 분석했다. 특히 일본의 정책적 불확실성과 원고ㆍ엔저 확대를 각각의 불안 요인으로 새롭게 포함시켰다.

실제로 엔ㆍ달러 환율은 지난해 11월 하순 이후 지속적인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는데, 원화 강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엔화의 급격한 약세는 원ㆍ엔 환율 급락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일본과 경쟁하는 국내 수출기업들에 대한 타격도 커질 전망이다.

한일 수출경합도는 2011년 기준 자동차 0.91, 철강 0.72, 선박 0.71이며 1에 가까울수록 수출 경쟁이 치열함을 의미한다.

우리투자증권도 지난 15일 ‘엔저 스트레스 테스트 보고서’에서 올해 원화 강세와 엔화 약세 현상이 지속될 것이며 자동차ㆍ부품과 IT하드웨어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익선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원ㆍ달러 환율 저점은 1000원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과거 1000원을 하회했던 시기와 달리 선물환 순매도 물량이 외환시장으로 쏟아져 나오기 어려운 것과 정부의 외환규제 강화 영향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유 연구원은 “당분간 엔화 약세 추세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엔ㆍ달러 환율은 97엔까지 오르고, 원ㆍ엔 환율은 100엔당 1031원까지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이 경우 부정적 영향이 클 것으로 나타난 업종은 자동차ㆍ부품과 IT하드웨어 부문”이라며 “다만 IT 기업들은 과거 대비 품질 경쟁력이 향상됐고, 자동차 관련 기업들은 해외 생산비중이 높아져 전보다 악영향은 감소할 것”이라 분석했다. 

대대적인 환율전쟁, 그 향방은

한편 전문가들은 계속해서 환율전쟁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조지 소로스 소로스펀드매니지먼트 회장은 지난 24일 다보스포럼 참석 후 “실제로 가능성이 있는 가장 큰 위험은 환율전쟁”이라며 글로벌 환율전쟁 가능성을 강조했다.

소로스 회장은 “일본이 적극적인 양적완화 기조로 돌아서 엔화 가치를 떨어뜨리고 유로 강세를 부추겨 독일까지도 경기침체나 성장세 둔화 국면에 빠뜨릴 수 있다”면서 “앞으로 환율 변동폭이 커질 것으로 보이므로 주요국들은 마찰을 피하기 위한 합의를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환율전쟁의 가능성이 낮다는 의견도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마크 챈들러 브라운브러더스해리먼(BBH) 환율전략 글로벌 헤드는 본격적인 글로벌 환율전쟁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챈들러 헤드는 지난 24일 투자노트를 통해 “환율전쟁을 둘러싼 긴장감이 앞으로 커질 수 있으나 현재로서는 실제로 발생할 확률이 매우 낮다”면서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면서 금리인상 시기를 늦추고 있고, 신흥국들은 자국 통화가치 상승을 막으려 조치를 취하고 있으나 이는 외환수급 상태에 따라 자유롭게 바뀌는 변동 환율제 아래에서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일본은행이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2%로 상향하고 무제한 양적완화 조치를 발표한 것 역시 경기부양을 위한 조정과정의 일부일 뿐”이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엔화는 구매력평가기준을 고려했을 때 14.6%가량 고평가된 상태이며 일본 외환당국 역시 엔화가치가 과도하게 하락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환율전쟁에 임하는 정부의 자세

또한 우리나라 원화 환율의 절상속도가 주요국 통화 대비 가장 빠르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2일 “최근 환율 하락으로 자동차 등 가격경쟁력이 중요한 산업이 상대적으로 수출에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고, 23일에는 “환율 대책은 준비가 다 돼 있으나 시점은 말하기 곤란하다”고 언급했다.

이와 관련, 정부는 지난 22일 ‘최근 환율하락에 따른 산업계 영향 및 대응방안’을 발표하며 일단 급격한 환율 하락으로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을 지원하기로 했다.

정부는 올해 250억 원으로 책정된 긴급경영안정자금에 환율 변동에 따른 피해기업을 추가함으로써 환율 변동 피해기업들이 정책자금을 신청할 수 있게 했다. 이로써 매출액 대비 수출실적 비중이 30% 이상인 기업 중 지난해 매출액이 30% 이상 하락한 기업은 정책자금 신청이 가능하다.

더불어 환율 변동 피해기업에는 우선적인 상환유예를 실시하고 수입실적 인정기간을 현행 2개월에서 3개월로 확대해 수출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한도를 확대하는 등 수출금융 지원폭을 늘릴 계획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환율이 1%p 하락할 경우 대기업은 영업이익률이 0.094%p 감소하는 반면 중소기업은 0.139%p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환리스크 대응 능력이 부족한 수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지원방안을 마련했다.

nykim@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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