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벚꽃과 유행의 유사점에 대해 아십니까? 이에 대해서는 아마 ‘한순간 반짝하다가 지고마는 것이 아닌가!’ 라며 대답할 분들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삼라만상에는 반드시 예외가 있는 법이 아닙니까. 그 한 예로는 현재 아직도 꾸준히 지속되고 있는 중국에서의 한류도 포함될 것 같습니다.”기자는 우연한 기회에 한무리의 중국 아줌마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니, 만난 것이 아니라 그녀들이 모여서 두런두런 담소중인 것을 보고 지나다가 우연히 귓가에 날아든 솔깃함에 다가가 그 대화에 끼여들게 된 것이다. 바쁜 걸음 재촉하던 기자를 멈춰 세운 것은 다름 아닌 그녀들의 한국 TV드라마에 대한 ‘품평회’이다.

“그게 그렇게 대단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니까…”“어라아라, 이 여편네가 뭘 본거야 도데체, 아 그 장면 하나하나를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또 졸았구만 졸았어…”중국인 특유의 삿대질에 혀까지 끌끌 차며 얼굴 찡그리는 심각한 아줌마의 뒤를 잇는 중국식 인민복 차림의 또 다른 아줌마.“아무리 그래도 일본에서 그렇게까지 인기를 끌 만큼은 아닌것 같더라 뭘…”바람에 날릴 대로 날리는 머리카락과 툭 터져나올 듯한 아랫 배를 바가지 감싸듯 둘러치고 있는 분홍색 잠옷 차림이 절묘한 이 아줌마들이 설전을 벌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한국 드라마 ‘겨울연가’에 대한 품평이다. 최근 수년간 이어지고 있는 한국 드라마를 죄다 꿰뚫었다는 그녀들은 일본에서 최고인기를 구가한다는 ‘욘사마’의 겨울연가 DVD를 보고 저마다 한마디씩하며 한국 드라마 전문가가 되고 있는 중이었다.

“참내, 제주도의 그 장면 보라니까. 한편의 그림이 아닌가. 그러니 그 일본의 수상 샤오촨(小泉, 고이즈미 의 중국식 발음)이도 거기까지 찾아간 것이 아닌가베…”“하긴 그래. 멋있기는 멋있더라… 아이야!(중국식 탄성), 내가 지금 젊었다면 여기서 이런 식으로 삶을 끝내지는 않을텐데…”“애구애구, 아니 그러면 뭘 어쩌겠다는 거야, 그 배를 가지고 퍽이나…”“뭐야, 이 여편네가… 나도 꽤 잘 나갔었다는 것을 모르는구만!”입으로 터져나오는 말은 다르지만 주위를 아랑곳 않고 까르르거리는 모습을 보노라면 인민복을 입은 중국 아줌마나 몸빼 차림의 한국 아줌마나 다를 것이 하나 없다. 아줌마는 어딜 가도 무적 아줌마이다.

그녀들의 말을 유쾌하게 듣고 있노라면 한국 드라마에 대한 그들의 일반적인 감상이 대충 그려져 온다. 중국은 23개 각 성(省)이 고유의 방송국과 채널을 가지고 있으므로 한국보다는 훨씬 많은 채널을 즐길 수 있다. 이들이 만든 각종 프로그램들은 손쉽게 설치가능한 위성안테나를 통해 가정으로 속속 전해져 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중국 드라마의 대부분은 포청천과 같은 반부패 관련 드라마나 황제들의 주변사를 그린 고전극, 혹은 70년대 한국의 안방을 장악한 바 있는 눈물없이는 맞이하기 힘든 드라마가 대부분이다. 이에 비해 한국 드라마는 그 일반적인 배경이 현대의 가정사나 애정사, 사회일반에 관한, 즉 일반인들과 그리 동떨어지지 않았기에 중국인들에게도 더욱 현실감있게 와닿는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드라마 속에 깨소금처럼 삽입되는 배경신이나 장면들 또한 이리저리 난잡하게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배어나 마치 한 폭의 “멍후화(夢畵,꿈속의 그림)”와 같이 아름답게 여겨진다는 게 중국 아줌마들의 평가다. 이에 더해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의 정갈함과 세련됨은 중국 드라마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니 바로 이와 같은 이유로 중국의 선남선녀들이 한국 ‘밍씽(明星, 영화배우)’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쯤되면 이 아줌마들도 일본이나 홍콩의 아줌마들처럼 한국행 비행기를 탈 만한 경제적 여력만 있다면 언제든지 한국행을 감행할 아줌마 한류 군단이 아닐까. 희끄무레한 인민복에 분홍빛 잠옷 차림 당당히 들어선 스튜디오에서 한국 배우이름 부르며 열광하는 그들 모습이란… 기자는 공연기획 등의 분야에서 일해 본 적이 있다는 한국인 정모(30세·여)씨에게 한국 드라마의 인기비결에 대한 중국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구해보았다.

이에 그녀는 중국인 연출가나 작가들로부터 들은 한국 드라마 성공 비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해주었다. 일단 한국드라마는 중국의 잃어버린 전통양식을 잘 그려내고 있어 중국인들의 가슴속에 쉽게 와 닿을 수 있다고 한다. 즉 공자 등에 의해 시작되어 수천년간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사회주의 신중국이 되며 한순간에 반봉건으로 전락하게 된 유교의 덕, 효, 인 등의 가르침, 지금은 사라지다시피 한 그러한 옛 전통을 한국의 드라마에서 찾아보며 심적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침 현재 중국정부는 유학에 대한 평가를 다시하며 효행이나 어른에 대한 공경 등의 부활을 주장하고 있어 시기적으로도 잘 맞는다고 한다. 또한 한국 드라마는 너무 거칠고 조잡하거나 혹은 너무 세세하게 터치하지 않음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거부감이나 실소를 자아내게 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즉 초보자가 봐도 이내 대충대충 제작한 느낌이 들고마는 중국드라마나 너무 고리타분하고 세세하게 터치하려하는 일본 드라마와 달리 한국 드라마는 어딘가 모르게 적절한 여백을 지니고 있어 시청자들이 쉽게 질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드라마는 형제자매간의 사랑이나 친구들 사이의 우정, 그리고 연인간의 애정 등을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다뤄나가고 있는데 중국이나 일본 드라마는 이상하게 어느 한 쪽으로 쏠리게 되며 그 결과 혼돈을 초래하거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곤 한다고 한다. 바로 이와 같은 이유 등으로 인해 한국의 TV 드라마는 아직도 중국 인민들의 안방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이와 같은 한국 드라마, 즉 한류의 꾸준함에 대해 중국에서 한 한국어 저널을 발행하고 있는 이 강하(남· 30대 후반)씨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중국의 한류를 적절히 잘 활용하는 한국 기업들은 아직도 거의 없다. 그런데 이는 중국이라는 특수한 시장을 감안할 때 개별 민간기업이 감당하기에는 벅찬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민간과 협력하는 가운데 국가이미지 제고와 국가경제 기여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보다 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 뜻하지 않게 굴러 들어온 떡을 앉아서 마다해선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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