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슬한 가을바람, 햇살이 온후하기 그지없는 이 가을. 누렁이 꼬리치며 내달리는 들녘에는 하늘하늘 누런 벼가 수줍은 듯 고개숙여 휘영청 둥근 달이 시샘한다. 들풀 향기 어지럽고 온갖 과실 내음 가득하니 마음은 어느덧 자연에 취해 몸마저 흐느적거리게 하는 한가위. 한편 한반도와 이웃한 중국에는 우리네와 같은 한가위가 있을까? 만약 있다면 과연 어떠한 모습의 그것일까?결론적으로 말해 중국에도 한가위가 있다.

중국에는 고유한 3대 명절이 있으니 정월 초하루의 원단, 5월 단오절, 그리고 8월의 중추절이 그것인데 이 중추절이 우리의 중추, 추석, 즉 한가위와 같은 바로 그것이다. 또한 중국의 한가위는 그 날짜도 우리와 일치한다. 양국이 모두 동일한 음력(중국에서는 농리(農歷)라고 한다)을 사용함에서 기인하는 현상이다. “이슬은 오늘 밤처럼 하얘만 가고 고향 달님이 저 달보다 밝겠지….(두보)”,“봄 햇살은 강남의 강가를 밝히는데 밝은 달은 언제나 나의 귀향길을 벗해줄꼬….(왕안석)” 중국에 중추절이 없었다면 고금동서의 대문호들이 가슴여미는 명시를 읊조릴 수 있었을까. 이와 같이 중국에는 그 오랜 옛적부터 중추절이 사람들의 마음의 고향으로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다양한 충추절 풍습들

옛날 중국의 패권자들에게는 가을에 달을 향해 제를 올리는 풍속이 있었다. 그리고 일반 백성들도 점차 그들의 제왕을 따라 중추절에는 달을 숭배하며 제를 올리는 풍습을 지니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전통이 해를 더해가며 제사보다는 풍만한 달맞이로 바뀌기 시작, 어느덧 제사 그 자체보다는 풍성한 음식 즐기기와 달맞이를 더욱 중시하게 되었다고 한다. 광대한 중국에는 각 지역마다 다양한 풍속, 전통이 있으며 그곳 사람들의 기질도 서로 다르다는 점은 이미 지난 주에 소개한 그대로이다. 마찬가지로 중추절 맞이 역시 각 지역마다 독특하고 다양한 모습을 띠고 있다. 예를 들면 복건성에서는 중추절이 되면 부녀자들이 다리를 건너며 장수를 기원하며, 광동성의 한 지역에서는 중추절에 먹는 우리의 송편과 같은 월병(月餠)을 먹을 때 연장자가 먼저 월병의 중간부분을 베어먹고 나머지 부분을 다른 가족들이 먹는 습관이 있다. 이는 가족간의 비밀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또한 사천성에서는 월병 외에도 오리를 잡아 깨떡, 꿀떡 등과 함께 섞어 즐기며 무병장수를 기원하고 산서성 사람들은 중추절에 느닷없이 사위를 초청, 풍성히 대접하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산동성에서는 중추절이 되면 남자들만이 배를 띄우거나 절벽에 오르며 여자들은 온갖 성찬을 준비하는데 이날은 반드시 수박을 챙긴다고 한다. 중추절에는 꼭 수박을 먹음으로써 이듬해의 풍성한 수확을 기원하는 습관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중국에는 다양하고 독특한 중추맞이 풍습들이 공존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것이 전혀 다른 것만은 아니다. 다시 말해 중국의 중추절 맞이에는 중국대륙에서 공통으로 보이는 모습도 있으니 바로 월병을 먹으며 달을 감상하는 것이 그것이다. 월병은 중국 남송시대부터 전해지는 과자로 음력 8월 15일, 즉 중추절의 둥근 달 모양을 형상화해서 만든 것이다. 중국인들은 월병을 밤·수박·배·감 등 둥근 과실 등과 함께 달에 제사지낼 때 함께 바친 뒤 나중에는 가족 친척 및 이웃들과 나누어 먹으며 행복과 건강을 기원해주는 상징으로 사용해오고 있다.

그런데 1949년 모택동에 의한 신중국, 즉 지금의 사회주의 중국건국이후 전통적인 추석맞이 모습이 크게 달라진다. 우선 중국의 중추절은 우리와 달리 공휴일이 아니다. 이는 신중국의 건국기념일과 유관하다. 즉 건국기념일(10월 1일)이 바로 중추절 며칠 뒤인데 이 기념일에는 중국정부가 5일~1주일 가량을 국가공휴일로 지정하고 있어 중추절도 쉬고 이때도 쉬면 안된다는 취지로 인해 공휴일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로 인해 중국에서는 사실상 중추절에 가족 친지들이 모이는 현상이 더이상 일어나질 못하게 된 것이다. 또한 1978년부터 불어닥친 중국의 개혁개방 열풍은 중국의 이와 같은 전통나기에도 여지없이 불어닥치고 있다. 개혁개방으로 인한 서구화와 경제발전으로 인해 두둑해진 주머니 사정은 중국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중추절의 고즈넉한 정경을 급격하게 바꾸고 있는 것이다. 한 예로 앞서 밝힌 월병의 경우, 아무 것도 입에 댈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살림살이라해도 중추절만큼은 주위사람들이 나눠주던 정겹던 월병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 월병이 이제는 어인 일인지 다른 의미에서 서민들과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저 둥근 달을 형상화해서 아무렇게나 풍성하게 빚어졌던 월병이 현재는 소비자의 다양한 소비욕에 부응, 베이징식, 상하이식, 광동식, 절강성식, 홍콩식 등에서 아이스크림식 월병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다양해지며 가격도 웬만한 노동자의 한달치 월급을 상회하는 2,000위안(한화 약 30만원)에 이르는 등, 그림의 떡으로 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각 지역마다 독특한 분위기를 간직했던 중추절 맞이가 이제는 각 지역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천편일률적인 모습을 띠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상하이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중국 최대의 번화한 곳으로 인구 수로도 중국 최대인 상하이. 이곳은 중추절 밤이 되면 밖으로 나온 인파로 더욱 북적이게 되는 것은 예전과 다름 없는데 그 동반자가 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중추절만큼은 가족 친지들과 함께 모여 달맞이를 하거나 거리 구경에 나섰지만 지금은 남녀의 커플이나 친한 친구들끼리 한적한 테이트나 또래들만의 즐거운 한 때를 위해 나서고 있는 것이다. 연인이나 커플들, 혹은 이러한 정상적인 관계가 아닌 관계의 남녀들도 상하이에서 프랑스식 오동나무가 하늘을 하늘하늘 가리며 달빛을 더욱 절절하게 만드는 낭만으로 잘 알려진 몇몇 한적한 거리로 자기들만의 은근한 곳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로 인해 그 한적하고 은근해야 할 거리는 오히려 더욱 붐비게 된다.

뿐만 아니라 “상하이=동방명주 탑”이라 연상될 만큼 국내외에 잘 알려진 황포강 어귀에는 물결에 비친 달빛을 구경하고자 몰린 남녀노소 인파로 인해 각종 절도사고와 폭력 등의 인신사고가 끊이질 않게 되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상태에서 풍요롭게 맞이해야 할, 또 맞이해 왔던 중추절이 어느덧 인상 찡그리며 욕설 터져나오게 하는 명절로 뒤바뀌고 있다. 결국 이와 같은 한가위를 두고 지금 중국의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사이에는 예전에는 찾아볼 수 없는 ‘중추절 갈등’도 빚어지고 있다. 이 역시 중국의 현대판 중추절의 한 모습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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