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만에 은행 출장소장이 된 청원경찰

- 파격 인사 대표격 기업은행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 실천
- 청원경찰ㆍ보일러공ㆍ전화교환원 등 별정직도 지점장 될 수 있어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한때 영화 속 주인공이 꿈을 이루기 위해 무모할 정도의 도전을 펼치는 이야기가 붐을 이뤘다. 사람들은 이에 열광하다가도 막상 일상으로 돌아오면 ‘꿈은 꿈일 뿐’이라고 단념하곤 했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도 소망을 현실로 만들어내면서 ‘꿈은 이루어진다’를 몸소 실천한 금융권 일꾼들이 있다. 기업은행의 경우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는 인사원칙에 따라 승진한 인물들이 주목받고 있으며, 외환은행도 여행원 출신 지점장이 탄생하면서 금융권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설을 맞이해 이들의 따뜻한 휴먼다큐 스토리를 조명해봤다.

은행원이 되고 싶었던 청원경찰

김용술 기업은행 등촌역지점 과장은 이제 어엿한 부천 원미출장소장이다. 그는 지난달 10일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는 기업은행 인사원칙을 증명하듯 세 번째 원샷 인사에서 최초의 청원경찰 출신 출장소장이 됐다.

1986년 청원경찰로 입행한 김 소장은 21년 만인 2007년 5급 정규직 행원으로 전환됐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난해 7월에는 4급 과장으로 승진했고 다시 6개월 만에 3급 출장소장으로 진급했다. 통상적인 소장 승진 기간을 8년 이상 단축한 것이다.

김 소장이 유치한 고객수는 지난해 1년 동안만 7500여명에 달한다. 그는 2011년 10월부터 1년2개월 동안 총 10차례의 ‘신규고객왕’을 차지했다. 과연 그의 저력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김 소장은 전투경찰로 복무한 후 선배들의 권유로 24세의 나이에 청원경찰이 됐다. 이후 45세가 될 때까지 계속 기업은행에 근무하면서 행원에 대한 꿈을 키워왔다. 하지만 청원경찰이 행원이 되는 길은 전무했다.

인고의 시간 끝에 거짓말처럼 기적이 찾아왔다. 2007년 당시 금융권 정규직 전환 움직임이 일면서 행내 비정규직 종사자들에게 행원이 되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평소 성실한 근무태도로 정평이 났던 김 소장은 행원으로 첫발을 디딘 지 5년6개월 만에 출장소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보일러공ㆍ전화교환원 출신 편견 깬 행원들

보일러공에서 행원이 된 정길수 개금동지점 과장도 있다. 정 과장은 전문대 전기과를 나와 1991년 별정직 보일러 기사로 입행했다. 2007년 16년 만에 행원이 된 그는 주경야독으로 5개의 금융자격증을 취득하고 책임자 시험에 합격했다. 남다른 자기개발 노력을 아끼지 않은 끝에 그는 지난달 10일 대리에서 과장으로 승진했다.

창구텔러로 입행해 ‘외환의 달인’으로 통하는 권인영 삼성동지점 계장도 빼놓을 수 없다. 권 계장은 정규직 전환 1기로 까다롭기로 소문난 외환업무에 두각을 나타낸 끝에 외환부문 현장 교수로 선발됐다. 기업예금 100억 원, 외화 450만 달러 유치 등 외환 실적도 우수하다.

앞서 지난해 7월 두 번째 원샷 인사에서도 크게 화제가 됐던 인물이 있다. 운전기사와 보일러공으로 기업은행에 발을 들여 행원이 된 이철희 신당동지점장이다.

이 지점장은 1983년 운전기사로 입행해 1990년 기술직인 보일러공으로 전향했다. 2002년 정식 행원이 된 지 10년 만인 지난해 1월 그는 첫 번째 원샷 인사에서 부지점장으로 파격 승진했다. 이마저도 모자라 6개월 만인 같은 해 7월 지점장으로 승진해 통상적인 지점장 승진 기간을 4년 이상 단축했다.

원래 출장소였던 신당동지점은 이 지점장이 수신고를 끌어올린 덕에 지점으로 격상하기도 했다. 그가 지점장으로 승진하기 직전 6개월간 유치한 예금은 400억 원에 달한다.

전화교환원으로 입행해 행원이 된 권순애 독산역지점 과장도 눈길을 끈다. 권 과장은 지난해 1월 첫 번째 원샷 인사에서 24년 만에 과장으로 승진했다. 고객들이 꼽은 고객만족(CS) 우수직원으로 15번이나 선정된 권 과장은 4남매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여상 졸업 여행원에서 지점장으로 도전

외환은행에서는 지난달 31일 상업고등학교 출신으로 지점장에 오른 이한희 대구 사월역지점장이 돋보인다.


이 지점장은 1979년 지역 내 여행원으로 입행해 2000년까지 외환은행 구미지점에서 일하다가 이례적으로 승진시험에 합격해 과장이 됐다.

이후 뛰어난 영업능력으로 지역 내 최저실적 점포를 1등으로 끌어올렸고 차장 승진 3년6개월 만에 지점장으로 승진했다. 외환은행 내 최소직급경력을 깨면서 이룬 쾌거다.

금융권 관계자는 “남다른 인사철학을 지닌 조준희 기업은행장과 윤용로 외환은행장의 파격적인 발탁 승진이 보수적인 은행권에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면서 “향후 타행에서도 출신에 대한 편견을 깨는 바람직한 인사발령이 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