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영화와 같은 삶을 살았던 조폭이 붙잡혀 화제다. 학교에서는 전형적인 모범생인 총학생회장으로, 바깥에서는 칼을 휘두르며 조폭의 일원으로 앞장선 임모씨, 일각에서는 그의 삶을 두고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삶이라 말한다. 섬뜩한 조폭과 모범생,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살아온 임씨의 행각을 추적해 보았다.타고난 카리스마로 한국 조직사회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영동파 두목 계두식. 그는 명동파를 접수한 공로를 인정받아 조직의 핵심인물로 부상한다. 어느날 이런 그를 호출하는 큰 형님. 큰 형님은 조직도 이제는 고급두뇌가 필요하다는 뜻과 함께 두식에게 학교에 진학할 것을 명령한다.

이에 두식은 자신의 ‘특수한’ 신분을 숨기고 학교에 진학한다.그러나 학교 비리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두식은 결국 ‘조폭본색’을 드러내고 만다.영화 ‘두사부일체’의 줄거리다. 지난 8월 31일 검·경 합동수사부는 전북소재 한 대학의 현총학생회장이 거대 조직폭력배의 일원이라고 밝혀 충격을 주었다. 이리에서 결성된 거대 폭력조직 배차장파의 임모(32)씨가 바로 그 주인공. 임씨는 조폭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철저히 숨기고 모범생으로 통할 정도로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때문에 그가 조폭 일원으로 별을 여섯 개나 단 인물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합수부에 따르면 임씨는 지난 98년 조직폭력사건에 연루돼 징역 2년 6월의 옥살이를 하는 동안 나름대로 새 삶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복역 중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한 것. 어려서부터 목재건축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던 임씨는 지난해 모 지방대학 목재공업과에 입학했다. 식을 줄 모르는 임씨의 뜨거운 학구열은 성적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첫 학기 성적이 4.5점 만점에 3.98을 기록, 35명 중 5위에 올라 주위를 놀라게 한 것. 또 같은 해 9월에는 68%의 높은 지지율로 총학생회장에 당선되기도 했다. 임씨가 다녔던 학교 관계자는 “임씨는 학생회장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있어서도 탁월했다”고 말했다.

학교측과 대립하며 농성했던 전임 총학생회장과는 달리 학교와 학생들간에 마찰이 생기면 항상 대화와 타협으로 합리적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모범생’이었다. 하지만 임씨도 ‘조폭의 근성’을 버리지 못했다. 지난해 12월 그는 그간 감춰왔던 야성을 드러내고 말았다. 조직의 ‘입사동기’로 평소 친하게 지내던 천모(31)씨가 다른 폭력조직원과의 결투에서 분패하자 끔찍한 ‘복수혈전’을 주도한 것이다.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된 임씨의 소식이 전해지자 그를 아는 학생들과 학교 관계자들은 믿을 수 없다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실제로 임씨는 그간 꾸준히 배차장파 조직원들과 교류를 해오며 조직의 일에 관여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임씨는 ‘펜’과 ‘칼’을 양손에 쥐고 있었던 셈이다.

임씨가 ‘복수혈전’에 가담하게 된 이유는 ‘당하면 두 배로 갚아 준다’는 조직의 행동강령에 근거한 친구의 복수 때문이었다. 천씨는 또 다른 조직인 정읍파에 몸담고 있는 친구 유모씨와 경마장을 찾았다. 두 사람은 경마장에서 배팅을 하는 과정에서 사소한 의견대립이 생겼고, 이로 인해 언성이 점점 높아졌다. 감정이 격해진 이들은 ‘주먹’ 답게 일대일로 겨뤄 결판을 내기로 하고 장소와 시간을 정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은 다가왔고 결투장소에서 만난 천씨와 유씨는 자웅을 겨뤘다. 두 사람이 한참 엎치락 뒤치락 할 즈음, 유씨는 천씨가 몸에 무언가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칼이었다.

천씨는 항상 칼을 지니고 다녔는데 이날도 이것을 소지하고 나온 것. 칼을 본 유씨는 “깨끗하게 주먹으로 겨루기로 해 놓고 칼을 들고 나왔다”며 자기가 당할 것 같은 마음에 그 칼을 빼앗아 천씨를 먼저 한차례 찔렀다.이 일로 천씨는 병원에 입원하게 됐고 이 소문은 조직내에 빠르게 퍼졌다. 이 소문이 퍼지자 임씨를 중심으로 한 배차장파 조직원들은 조직 강령에 따라 ‘2배’로 복수할 계획을 세웠다. 며칠 후 이들은 후배 12명을 사주해 새벽운동에 나선 정읍파 부두목 홍모(36)씨를 흉기로 수 차례 찌른 것도 모자라 야구 베트와 같은 흉기로 마구 때려 두개골 골절 등 전치3주의 상처를 입혔다. 서울지검의 이철호 검사는 “이런 경우 조폭들은 상대파의 간부를 대상으로 복수를 한다”고 설명했다.

결혼을 앞두고 있던 지난 3월 임씨는 결국 지명수배자가 됐다. 쫓기는 신세가 된 임씨는 도피 기간 중에 동료‘어깨’들의 호위 속에 결혼식을 치른 것으로 드러났다. 임씨는 신혼여행까지 다녀온 후인 지난 4월 검찰에 자진 출두, 구속되면서 한편의 영화와 같은 도피행각에 종지부를 찍었다.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임씨는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 받았다. 학교측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임씨에게 퇴학처분이 아닌 휴학처분을 했다. 학교측은 “학칙상 퇴학을 당해야 마땅하지만 향학열을 불태우며 학업에 몰두한 모범생이었기 때문에 이례적으로 휴학처리를 했다”고 밝혔다.

배차장파는? 80년대 결성…이리 본거지 두고 서울 진출

임씨의 사건에서 드러났듯 배차장 파는 원래 칼부림 사건을 많이 일으키는 조직으로 알려졌는데 검찰의 정보에 따르면 현재 배차장파의 조직원수는 150여명이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리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배차장파는 정류장과 같은 역할을 하는 배차장 부근의 한 다방에서 김모씨를 두목으로 80년대 초에 결성돼 이리 지역을 장악한 뒤 서울로 진출했다. 서울로 진출한 이들은 지난 1987년 서방파 자금책 전모씨를 살해하는 사건을 일으켰다.

전씨가 경영하는 주류판매점에 5명이 침입해 칼부림을 낸 것이다. 이를 계기로 배차장파는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고, 무서운 세력으로 급부상했다. 이번 사건을 담당한 합수부의 한 관계자는 “칼부림 사건이 나도 조직의 힘으로 형을 적게 받도록 노력할 뿐 아니라 출소 후 신분이 급상승한다”며 “그러면 그 조직은 인기가 치솟고 조직원들이 상부의 명령도 잘 따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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