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 대통령 휴양시설인 청남대가 충북도에 반납되기 직전 대통령 비서실 직원들과 출입기자들이 아직은 ‘통제구역’이었던 청남대를 둘러봤다. 대청호에 둘러싸인 수려한 경관과 자연미를 그대로 살린 채 잘 정돈된 부대시설들에 모두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한 고위 비서관은 “과연 이런 시설을 반납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세계 어디를 가 봐도 대통령의 휴양시설은 웅장하고 화려하다. 차라리 그대로 휴양시설로 이용하면서 외국 귀빈들이 왔을 때 영빈관으로 사용하는 게 나을 뻔 했다”고 아쉬워 했다.그로부터 불과 2년도 되지 않은 지금 청와대 참모들 사이에서 “청남대를 괜히 반납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들이 들리고 있다. 그 전부터 대통령의 휴가 때만 되면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전전긍긍하던 차에 최근 국방부가 계룡대에 짓고 있는 전시지휘용 시설이 대통령 별장이 아니냐는 의혹 제기가 있은 후 더욱 대통령 별장의 필요성을 느끼는 것이다.

최근 일부 언론에서는 ‘충남 육·해·공군 합동본부가 위치한 계룡대내에 대통령 별장이 건립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청와대측은 즉각 “모르는 일”이라고 부인했고, 대신 국방부가 해명에 나섰다. 국방부는 22일 “문제의 건물은 전시 지휘용 유숙시설로 대통령 별장과는 개념이 좀다른 것”이라고 밝혔다. 국방부는 “현재 계룡대에 몇몇 시설 보완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일부 언론이 대통령 별장이라고 언급한 건물은 이 가운데 국가 전시 지휘용 유숙시설로 기본적으로 전시대비용이나 필요할 경우 대통령은 물론, 평시 외국군 주요 인사 등이 사용할 수 있는 곳”이라고 밝혔다. 유숙시설은 계룡대 인근 영내에 건평 272평, 본관 대지 1,000평 규모로 70여억원이 투입돼 올 중반기 완공될 예정이다. 국방부측의 해명으로 파문은 가라앉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면서 청와대 사람들은 속마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대체로 “청남대를 괜히 없애 오해의 소지만 생겼다.”, “대통령이 과중한 국정업무에서 벗어나 편히 쉴 만한 곳이 없어 안타깝다”는 말들이다. 대선공약에 따라 청남대를 반납한 노무현 대통령은 그해 여름휴가를 대전 유성의 군 휴양소에서 보냈다고 한다. 당시 청와대는 경호상의 문제로 휴가지를 공개하지 않았었다. 그 이듬해 여름 휴가는 아예 ‘방콕’했다. 8월2일부터 7일까지의 여름 휴가를 창덕궁 산책, 인형극 관람 등을 빼고는 청와대 관저에서만 머물며 독서와 휴식으로 소일한 것이다. 올 설 연휴에는 제주 서귀포의 한 호텔에 머물렀다. 그때마다 알려지지 않은 애로사항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특히 경호상의 문제점이 심각했다는 것이다. 이번에 만드는 계룡대 유숙시설도 결국은 대통령을 위한 것으로 경호상의 편의가 크게 감안된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앞서 지난 2003년 9월에는 당시 윤진식 산업자원부 장관이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입지로 검토되는 바람에 주민들의 극심한 반발을 샀던 전북 부안군 위도에 대통령 휴양시설을 건립하겠다고 말했다가 여론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이승만 대통령시절 4곳충북 청원군 문의면의 대청호 호수변에 위치한 청남대(처음 이름은 ‘영춘재’)는 지난 2003년 4월18일 오전을 기점으로 충북도에 반납돼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인 1984년 민유지를 매입해 모두 67억원을 들여 지은지 19년만이었다.‘따뜻한 남쪽의 청와대’란 의미를 담고 있는 청남대는 2만9,000여평의 대지에 본관건물, 낚시터, 3홀 규모의 골프장, 25m 길이의 수영장, 테니스장, 헬기장 등의 시설이 들어서 있었다. 대통령전용시설이란 이유로 반경 6km(1998년부터 500m)까지 접근은 물론, 촬영조차 금지됐었다.YS, 청남대만 남기고 폐쇄당시 전두환 정권이 새로운 휴양시설 신축 이유로 든 것은 경남 거제의 저도 별장(청해대)이 남해안에 위치해 간첩선이 종종 출몰하는 등 경호상의 문제가 많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안기부(현 국정원) 예산으로 부지를 매입한 이곳은 전두환 대통령의 개인호화별장이란 의혹을 받아 1988년 5공비리 청문회 때 조사 대상에 오르기도 했다.그러나 5공 청문회를 거치고 나서 후임 대통령들도 이곳을 즐겨 이용했다. 언론에 보도되는 것은 여름휴가나 설 연휴 등 연간 1~2회 정도였지만 실제로는 연 4~5회씩, 많을 경우 7~8회씩 찾기도 한 것으로 알려진다. 19년 동안 대통령들이 이용한 횟수가 총 88회 400여회라는 통계도 있다.뿐만 아니라 새로운 대통령이 이용할 때마다 별장의 기능도 ‘업그레이드’ 됐다. 김영삼 대통령은 손자, 손녀들을 데리고 청남대를 찾곤 했는데, 아이들이 놀 곳이 마땅치 않자 정원 한쪽에 미끄럼틀과 그네 등을 설치, 간이 어린이놀이터를 만들었다. 또 조깅을 좋아했던 YS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1993년 조깅코스가 새로 만들어졌다.

경호상 문제로 애로 겪어국민의 정부 들어서는 걸음걸이가 불편한 김대중 대통령과 고령인 이희호 여사의 건강을 감안해 본관 1층 현관에서 2층 침실까지 바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새로 설치했다고 한다. 간이 휴식처인 ‘초가정’을 대청호가 한 눈에 내려다 보여 가장 전망이 좋은 언덕에 만든 것도 비활동적인 DJ를 위한 것이었다. 청남대는 반환되기 직전까지 대대급인 338부대가 경호와 관리를 담당했다. 이 부대에는 입대해서 제대할 때까지 오리를 사육하는 ‘오리 사육병’, 골프코스를 항상 최적의 상태로 유지해야 하는 ‘골프장 관리병’, 심지어 낚시터에서 고기가 잘 잡히도록 떡밥을 뿌리는 등 관리하는 ‘낚시병’ 같은 ‘특수병과’가 있다는 우스갯 소리가 나돌기도 했다.338부대원들은 청남대가 반납되면서 일부만 청와대 경호부대로 옮기고 나머지는 일선 부대로 뿔뿔이 흩어졌다.

3월22일로 개방 500일을 맞은 청남대는 국민관광지로 거듭 나고 있다. 500일 동안 모두 158만여명이 다녀가 하루 평균 3,188명이 찾는 대표적 관광지가 된 것이다. 최근에는 MBC 정치드라마 ‘제5공화국’의 촬영장이 되면서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바다의 청와대’라는 의미로 이름 붙여진 청해대는 1954년 경남 거제시(당시 진해시) 장목면 유호리 저도에 이승만 대통령의 휴양지로 건립돼 해군이 관리해 왔으며, 1972년 대통령 공식 별장으로 지정됐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은 자신의 고향(장목면)에 위치한 이곳을 대통령 별장에서 해제시켰다. 현재는 국방부가 군 휴양시설로 관리하고 있다.거제 청해대 21년간 존속그러나 지금도 청해대는 대통령의 휴양지로 가끔 이용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청남대를 반납한 지 약 한 달 후 2박3일의 휴가를 가졌는데, 이때 청해대에 머물며 형 건평씨 부부를 초청해 식사를 함께 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해대는 본관 건물을 중심으로 섬 주변에는 8개 동의 수행원 및 경호원 숙소와 막사, 청기와로 지붕을 씌운 팔각정 건물, 9홀 규모의 골프장, 골프장 주변을 따라 낸 산책로, 전망대 등이 있다고 한다. 또 자가발전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한반도 지도와 태극 문양을 본뜬 연못도 있다.섬 전체가 해송·동백나무·팽나무 등 울창한 수림으로 덮여 있다. 특히 202m 길이의 인공해수욕장이 조성돼 있어 천혜의 관광지로 꼽힌다. 이 때문에 거제시는 대통령 별장에서 해제된 이후 저도와 청해대 등의 시설물과 관리권을 자치단체에 넘겨 달라는 요구를 줄기차게 하면서 국방부와 대립하고 있다. 한편, 박정희 대통령은 1974년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문세광의 저격으로 육영수 여사를 잃은 뒤 이듬해 8월6일 청해대에 머물면서 육 여사를 그리는 시 ‘일수’(一 首·한줄의 시라는 뜻)를 지었다. ‘아내와 함께 거닐던 곳에 혼자 와 보니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간절해진다’는 내용이다.

또 지난 1967년 당시 중학교 2학년이던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청해대가 있는 저도 백사장에서 가족과 함께 수영을 즐기던 중 당시로선 파격적인 비키니 차림으로 기념촬영을 한 사진이 2003년 공개돼 화제가 됐던 적이 있다.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대통령의 모든 일정이 ‘1급 비밀’이었고 휴가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대통령 가족이 저도를 찾을 때마다 저도 백사장이 폐쇄됐지만 사람들은 무슨 영문인지도 몰랐다. ‘소녀 박근혜’의 사진도 그 넓은 백사장에 혼자 덩그러니 서 있는 모습이었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꽤나 휴가를 즐겼던 것 같다. 그는 재임 당시 청해도 외에도 강원도 고성군 화진포와 제주도에 별장을 가지고 있었다.화진포의 이승만 별장은 1954년 건립돼 운영되다가 권좌에서 물러난 직후인 1961년 철거됐다. 1999년 7월 육군에서 본래의 모습대로 복원했는데, 육군은 유가족들로부터 유품 53점을 기증받아 전시관으로 운영하고 있다.

집무실, 침실, 응접실 등이 그대로 재현됐으며, 당시 사용하던 놋그릇세트, 낚시도구, 두루마기 등 유품도 전시돼 있다.미대통령 별장 ‘실용성’ 강조주변에 김일성이 한국전쟁 이전인 1948년부터 사용한 별장과 휴전 후 이기붕 부통령의 부인 박마리아씨가 사용했던 개인별장도 있는 등 경관이 빼어난 곳이다.이승만 대통령의 화진포 별장과 달리 제주도 별장은 방치돼 있다시피 하다. 민오름 입구에서 한참 걸어들어 간 자리에 있는 별장에는 고풍스런 벽난로와 탁자, 의자들이 보존돼 있지만 관광상품화는 되지 않았다.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시절까지 설이나 여름 휴가철이 되면 언론에 ‘청남대 구상’이니, ‘청해대 구상’이니 하는 용어들이 곧잘 등장하곤 했다. 대통령이 전용 휴양시설인 청남대나 청해대에서 머리를 식히면서 복잡한 정국을 풀기 위한 묘책 마련에 골몰했다는 내용이다.

또 휴가철이면 청와대에선 대통령이 어떤 책을 싸들고 휴가지로 갔으며, 그 책은 무슨무슨 의미가 있다는 설명을 하곤 한다. 대게는 정국 현안과 관련된 책들이다.대통령들이 실제로 휴가지에서조차 나랏일 때문에 머리를 싸맸는지 가져 간 책들을 다 읽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다만 대통령이 휴가 때마다 쉴 곳을 찾아 헤매는 모습은 보기에도 안타깝다. 차라리 청남대 반납 후의 속 사정을 국민들에게 상세히 설명하고 별장을 별장답게 잘 지어 정상외교 등에도 떳떳이 활용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미국의 경우 대통령의 휴가 때마다 기자들이 항상 동행한다. 언제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통령이 전용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평상복 차림으로 인터뷰를 하는 모습은 외신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비밀스럽게도, 호화롭게도 보이지 않는다. ‘실용’의 냄새만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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