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30일 서울 모 병원 앞에서 “멀쩡한 남편의 장기를 오진으로 떼어 냈다”며 항의하는 일인시위가 벌어졌다. 이날 일인시위를 한 사람은 이 병원에 입원한 환자 오모(62)씨의 아내 유모(56)씨. 유씨는 이날 응급실에서 강력하게 항의하는 도중 주머니 속에 넣어둔 주스병이 깨지기도 했다. 병원측은 주스병이 깨지자 유씨가 자해를 할 우려가 있다 보고 이를 강력하게 제지했고, 이 과정에서 경찰까지 출동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날 병원측은 보상을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유씨를 진정시키는 과정에서 본인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안정제를 주사, 다음날 문제를 더욱 키우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유씨는 병원측이 오진에 항의하는 자신을 자해하려 한다며 정신병자로 몬 뒤 강제로 끌고가 못 움직이게 속박하고 강제로 신경안정제를 투여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유씨가 병원을 상대로 강력히 항의하는 속사정은 무엇일까. 유씨가 주장하는 내용대로라면 ‘문명사회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 생긴 셈이다. 사건은 지난 4월 25일 유씨의 남편 오씨가 배가 아프다며 통증을 호소, 이 병원을 찾으면서 비롯되었다.유씨가 말하는 사건의 정황을 정리하면 이렇다. 남편이 복통을 호소하자 유씨는 남편과 함께 황급히 모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이틀 후 의사는 오씨에게 맹장염 판정을 내렸고, ‘환자가 위급한 상황이기 때문에 자세한 검사를 할 시간이 없으니 빨리 수술 받아야 한다’며 수술에 필요한 수속을 서둘러 밟으라고 재촉했다. 이에 유씨의 남편은 수술대 위에 올랐다. 그런데 수술을 마친 의사는 더욱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환자를 개복해 보니 대장암이 퍼지고 있어 그 부위를 절개했다고 전한 것. 유씨 부인 입장에선 천지가 개벽할 일이었다. 사랑하는 남편이 대장암이란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소식을 전한 의사는 “맹장염은 둘째치고 암세포가 생긴 대장 50㎝를 먼저 잘라내야 했다”고 말했다. 이 의사는 또 “잘라낸 부위의 이상 조직이 암세포가 맞는지 확인해 보기 위해 조직검사를 의뢰해 놓은 상황이니 곧 그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는 게 유씨의 주장이다. 맹장 수술하러 들어갔다가 종양 제거수술을 하고 나온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5월 중순경, 수술을 한 유씨의 남편이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다시 배가 아프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그래서 다시 이 병원을 찾아 의사의 권유대로 CT촬영을 했다. 그 결과를 본 의사는 대장에서 생긴 암세포가 간장 쪽으로 혈행성 전이가 이루어진 듯 하다며 확실하게 하기 위해 다시 한번 더 촬영을 해 보자고 했다.

이에 2차 CT촬영을 했고, 그 결과를 분석한 이 병원 외과전문의는 암세포가 전이된 것이 확실해 보인다며 수술을 하자고 했다. 이어 그 의사는 “전이된 부위만 도려내면 끝나는 간단한 수술이니 너무 걱정말라”며 환자 가족들을 안심시켰다는 것. 그러나 암 세포가 전이됐다는 말을 들은 환자는 그냥 이렇게 죽는 게 낫겠다며 수술을 거부했다. 의사와 가족들은 간단한 수술이라며 겨우 환자를 설득해 수술할 수 있었다. 유씨는 수술실로 들어간 남편이 무사히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애태우고 있었다. 여기서 유씨는 다시 한번 기가 막힌 소리를 들어야 했다. 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막상 개복을 해보니 아무 이상이 없더라”고 말한 것. 이것 이외에 병원측으로부터 무슨 문제가 있는지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없었다는 게 유씨의 주장이다.

유씨는 “병원측이 환자의 상태나 병명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을 해 줘야지 왜 이를 불성실하게 이행하는지 납득할 수 없다”며 “이는 뭔가 자신들이 숨기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겠냐”고 불만을 표시했다. 이 점에 대해 병원측은 환자를 비롯한 환자 가족들에게 병세나 치료 과정에 대해 성실하게 설명 못한 점은 인정하면서도 유씨의 다른 주장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입장이다. 우선 병원측은 환자의 동의없이 임의로 암 제거 수술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당시 오씨의 수술에 참여했던 한 의사는 “분명히 우리는 모든 부분에서 환자측의 동의를 구한 후 집도를 했다”며 “응급실에서 검사를 해 보니 맹장에 암이 생겨 암과 함께 맹장염이 유발한 상태로 보여 수술 전 모든 동의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 증거로 당시 유씨와 오씨가 지장으로 날인한 수술동의서를 내밀었다.이 의사는 이와 함께 “우리는 수술이 잘못될 경우 살인죄를 면키 어렵기 때문에 보호자에게 이 모든 것을 충분히 설명하고 수술 동의서를 받은 뒤 수술을 집도한다. 이게 없으면 기본적으로 수술이 안된다”며 “이것이 작성되지 않아 수술을 못하는 바람에 환자가 죽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이번 사건은 양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병원 관계자 “의심되면 개복후 확인 가능”

- 이번 사건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전망인가.▲우리는 오히려 환자측이 법원까지 가기를 바란다. 그만큼 우리는 부끄러울 것이 없다.

- 환자측이 말하는 오진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이것은 오진이라고 할 수도 없다. 환자측은 이를 두고 오진이라 주장하는데 이는 진단적 개복술이라 해서 일단 의심되는 부분이 발견되면 의사의 소견에 따라 개복 후 확인하게 되어 있다. 우리는 두 차례의 CT촬영을 통해 확인되지 않은 바를 개복을 통해 확인한 것이다. 의심되는 것이 있어도 이런 시비가 두려워 안한다면 그것은 살인행위지 않겠는가.

- 환자 부인에게 마취제를 투여한 뒤 강금했다는데.▲말도 안되는 소리다. 우리가 당시 보호자에게 놓은 주사는 로라제 팜(아티반)이라 불리는 것으로 이는 마취제가 아니다. 이는 단순히 신경을 안정시키는 약일 뿐이다. 또 우리가 약을 주사하고 감금시켜 놓았다고 주장하는데 보호자 대기실에서 수간호사가 계속 옆을 지키고 있었다.

- 환자측에서 병원에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 속을 누가 알겠는가. 솔직히 환자와 문제가 생기면 일이 커질 것을 우려해 환자측과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 내려고 하는 게 우선이지만 이번 경우는 우리가 한발자국도 양보할 수 없다. 현재 환자는 상태가 호전되어 거의 70%가 회복된 상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마치 다 죽어 가는 사람행세를 하고 퇴원도 하지 않고 있다.

환자측 “오진인정 녹음 있다”

- 병원측에서는 환자측이 억지를 부린다고 하는데.▲억지가 아니다. 병원측은 처음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전혀 설명해 주지 않았다. 내가 계속 집요하게 물어보자 의사 중 한명이 하는 수 없다는 듯 오진이었음을 인정했고 우리는 그 내용을 녹음해 갖고 있다. 원한다면 이를 들려 줄 수도 있다.

- 소란을 피울 때 마취주사를 놓고 강제로 감금했다 주장하고 있는데.▲그렇다. 나를 끌고 가 눕힌 다음 내가 주사 맞기를 거부하자 여러 사람이 나를 못 움직이게 하고 강제로 주사를 놨는데, 그 주사를 맞은 후 정신을 잃었다.

- 이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계획인가.▲병원측이 잘못을 인정할 때까지 계속 싸울 것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