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7일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및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과 3자 모임을 가졌다. 이 회동에서는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대한 대처방안과 여야의 국정협의 문제가 토의됐다.
그동안 집권여당인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사사건건 대결과 격돌로 맞섰다. 그러나 3자 회동에서는 양측이 전례를 찾아볼 수 없으리만큼 ‘상생(相生)’과 협력의 무드(분위기)로 갔다.
박 당선인은 북한이 핵을 갖고 “앙탈을 부리며 강경책을 쓰면 국제사회가 보상하는 악순환을 끊을 때가 됐다”고 했다. 그는 북한의 도발 등 “어려운 상황에서 (여야) 정치권이 합심하는 든든한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민주당을 대표하는 문 비대위 위원장은 박 당선인과 “처음부터 끝까지 더도 덜도 없이 생각이 똑같다”며 “여야가 일치된 견해를 갖고 있다”고 화답했다. 그는 또 “북한에 오판하지 말라. 우리는 (여야 없이) 하나다”고 강조 했다.
김대중 정권 이후 종북으로 비판돼 온 민주당의 대표가 새누리당 측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하나다”며 안보상 보수 자세를 드러내기는 처음이다. 그동안 민주당측 다수는 북한의 핵이 ‘방어용’이라고 주장했으며 북이 핵무기·미사일 실험을 해도 계속 퍼주라고 했다.
그러나 문 위원장은 지난날의 민주당 종북 집착을 벗어나 보수적인 발언을 토해냈다. 물론 문 위원장의 종북 탈피는 차기 집권을 위해선 종북을 세탁해야 한다는 당내 여론에 밀린 탓도 있다. 그런 분위기는 민주당이 6일 개최한 비대위 회의를 연평도에서 군복차림으로 열었던 데서도 역력히 드러났다. 보수화 색깔 입기를 주저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서도 민주당의 종북 탈피 움직임은 문 위원장의 실용적 합리주의 사고의식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박·황·문 3자 회동에서 남북 문제 외에도 박 당선인과 대결 보다는 상생의 협력을 모색하겠다고 했다. 그는 3자가 합의한 발표문을 통해 여야는 ‘국정동반자’라며 “국민의 삶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사안이나 시급히 처리해야 할 민생 현안에 대해서는 조건 없이 상호 간 협력한다”고 선언했다.
문 위원장은 원래 경기도 의정부의 부잣집 아들이었다. 그는 서울대 법대를 나왔고 한국청년회의소(JC) 회장, 국가정보원 기조실장, 청와대 비서실장, 5선 의원 등을 거쳤다.
그는 야당이나 집권 여당 때나 극한적으로 치닫지 않았다. 막가는 세력에 경종을 울리곤 했었다. 그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 정치특보 시절 열린우리당의 튀는 세력을 겨냥해 “지금 보니까 건방을 있는대로 떠는 사람이 있다”고 경고하면서 자신은 “실용주의와 개혁이라는 양측의 균형추”가 되겠다고 했다. 그밖에도 그는 그 무렵 야당(한나라당)과의 관계에서는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곤 했다. 문 위원장이 온건 실용 합리주의자임을 엿보게 한다.
특히 문 위원장이 2005년 4월 15일 열린우리당 당의장 시절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서울 염창동 한나라당 당사로 찾아가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눈 사실을 상기코자 한다.
그 때 박 대표는 여야가 “어떻게 하면 좋은 정책을 만들 수 있는지 함께 노력하자”고 밝힌 뒤 “그런 의미에서 저와 약속하자”면서 새끼손가락을 문 위원장에게 내밀었다. 그에 문 의장은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걸고 너털웃음을 지으며 약속했다.
이제 박 대표는 대통령이 됐다. 8년 전 문 위원장은 박 당선인에게 “좋은 정책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새끼손가락을 걸고 화답했다. 두 지도자들은 그때 그 정신을 잊지말고 “좋은 정책”을 많이 만들어 주기 바란다. 한국 민주주의의 한 단계 도약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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