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동작·관악·구로·양천구등 서남부지역을 중심으로 끔찍한 살인사건이 잇따라 발생, 이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잇따른 살인사건들과 관련한 흉흉한 괴담까지 나돌고 있어 사건 발생지역들의 부동산 가격마저 하락하는 등 살인공포가 극에 달한 상황이다. ‘신 살인의 추억’으로 불리는 이 사건의 전모를 취재했다. 최초 사건의 발생은 지난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지난 1월 30일 새벽 3시경 서울 구로동에 사는 42살 송 모 여인이 온몸을 흉기에 찔려 중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이를 목격한 피해자의 이웃주민은 “비명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송씨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고 범인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 사건이 발생했을 때까지만 해도 원한이나 치정에 의해 계획된 복수극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최초 사건이 발생한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지난 2월 26일,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 18살 여고생 A양이 흉기에 13군데나 찔리는 끔찍한 일을 당한 것이다. A양은 방학을 맞아 학원 수강을 위해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한 여고생. A양은 흉기에 신체 여러 곳을 찔려 중상을 입었지만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두 번째 사건은 첫 번째 사건이 발생한 구로3동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신림 4동에서 비슷한 수법으로 발생했다.

시기상조이기는 했지만 이때 이미 연쇄살인의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됐다. 이 두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남부경찰서 관계자는 “두 사건의 범인은 칼로 추정되는 흉기를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당시는 추운 겨울이라 옷이 두꺼워 두 피해자 모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세 번째 사건은 지난 4월 22일 새벽 3시경 고척동의 한 빌라에서 발생했다. 여대생인 20살 김모(여)씨가 흉기에 수 차례 찔려 숨진 채로 발견됐다. 더구나 살해당한 곳이 바로 김씨의집 현관 앞이어서 더욱 충격이었다. 이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구로 경찰서의 관계자는 “김씨의 가족들은 ‘김씨가 새벽 1시 반쯤 누군가와 심하게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고 말했다”며 “연쇄살인의 가능성에 대해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지만, 일단 주변인물을 상대로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피해자 김씨의 이웃주민은 “사건발생 당시 빌라 입구의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면서 40대 남자의 술 취한 목소리가 들렸다”고 전하면서 “그 남자가 김씨에게 ‘까불면 죽인다’는 등의 말을 하면서 협박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목격자의 이런 진술을 바탕으로 당시 김씨와 같이 있었던 40대 남성을 찾아내는데 주력하고 있다. 네 번째 사건은 지난 5월 9일 새벽 2시경 대방동 보라매공원에서 발생했다.이날 24살 여성 김모씨가 보라매공원에서 지하철역으로 이어지는 남문 노상에서 흉기에 무려 10여 차례나 찔려 처참하게 살해당한 것이다. 경찰은 범인이 범행 당일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이곳에서 범행 대상을 기다렸거나, 피해자를 따라오다 인적이 드문 이곳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건 당일 남자 친구인 하모씨는 여자친구 김씨를 지하철역까지 데려다 준 뒤 헤어졌다.

이것이 영원한 이별이 될 것이라고는 두 사람 모두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김씨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가던 하씨는 “집에 가는 길에 전화통화를 하는데 숨을 헐떡거리며 ‘칼에 찔렸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김씨의 말에 놀란 하씨는 그 길로 가던 길을 되돌아가 피를 흘리던 김씨를 발견하고는 근처 병원으로 옮겼지만 김씨는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숨진 김씨는 병원 도착 직후 `‘점퍼 차림의 40대 남자가 흉기로 찌르고 달아났는데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뒀다. 경찰은 김씨의 말을 근거로 우발적 범행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 중이다. 이 사건이 일어난 뒤 보라매공원 주위의 동네주민들은 공포에 휩싸여 밤 시간 외출을 극히 꺼리고 있다.이 지역 관할 경찰서인 노량진경찰서는 이 사건의 특별 전담반을 구성해 수사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할 단서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별 전담반의 한 관계자는 최근 연달아 일어난 사건과의 연관성에 대해 “살인사건이 특정지역에서 연달아 발생하다보니 연관성을 찾아 동일범의 소행으로 묶어서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아무것도 단정지을 수 없다”면서 “모든 것은 범인을 잡아 봐야 아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다섯 번째 사건은 네 번째 사건이 있은 지 불과 4일만인 지난 5월 13일 새벽 2시경 대림동에서 발생했다. 이 사건은 이전에 발생한 4건의 살인 사건과 여러모로 유사한 점이 많아 이 사건을 포함한 5건의 살인 사건 모두 동일범에 의한 연쇄살인일수 있다는 가능성에 더욱 무게를 실어 주고 있다.서울 대림동 중국음식점 G반점 화장실 앞에서 가게 주인 중국동포 39살 김모(여)씨가 흉기에 찔려 신음하고 있는 것을 인근 식당 여주인이 발견,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경찰에 따르면 96년부터 불법 체류해 온 김씨는 이날 남편과 친구 등 4명과 영업을 끝낸 뒤 술을 마시고 귀가하던 중 가게 화장실에 들렀다가 변을 당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50여m 떨어진 곳에서 버려진 흉기를 발견, 지문 감식에 나서는 한편 빼앗긴 금품이 없는 점 등으로 미뤄 원한 관계 등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이 사건은 앞서 발생한 4건의 사건과 달리 유일하게 증거물이 발견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것을 제외하면 남부·노량진·구로·양천·관악경찰서등 인근 5개 관할서는 공조수사에도 불구하고 아직 단서조차 잡지 못한 상황이다. 사건이 모두 여성을 상대로 새벽 시간 인적이 드문 곳에서 발생했고, 범인을 본 목격자가 없어 용의자의 인상착의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또 범인에 대해 확보한 진술도 ‘40대인것 같다’는 진술이전부이기 때문에 몽타주도 그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경찰 수사는 계속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

5건중 3건, 목요일 새벽 발생

두 사건서 목격자 증언 일치 “범인은 40대 남자로 추정”5건의 연쇄살인은 경찰의 부인에도 불구, 동일범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사건의 공통점이 많기 때문이다.피해자들 모두 금품이 털린 것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때문에 범행 동기를 찾기가 힘든 상황이다. 즉, 5건의 살인 사건 모두 무차별적으로 범행이 이루어진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이어서 경찰도 매우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현재까지 발생한 다섯 건의 사건 중에서 목격자가 있었던 것은 총 세 건으로, 이중에서 대방동 보라매공원 사건과 고척동 사건의 경우 목격자들로부터 범인이 40대 남자인 것 같다는 공통된 진술을 확보했다. 발생시점에서도 공통점이 있다. 5건 가운데 3건이 목요일 새벽에 일어났다. 고척동과 보라매공원 여대생 피습사건, 그리고 가장 최근에 일어난 대림동 중국 동포 피습 사건은 모두 새벽 2시에서 3시 사이에 일어났다. 피습이라는 살인형태를 띤 것과 사건발생 시간 등 공통점이 발견됐음에도 이를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주민들 “순찰 좀 돌아주세요”
“늦은 시간 골목길 무서워 못다녀”

구로동의 이모씨비공개수사다 뭐다해서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뒤에서 듣고 있는 얘기가 많습니다. 이런 끔찍한 사건이 계속 진행이 되고 있는데 왜 순찰을 안 하는지 모르겠네요. 저희 어머님은 밤늦게 들어오시기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제가 새벽6시까지 잠 한숨 안자고 있어봤지만 순찰 도는 순찰차의 소리는 들리지도 않더군요. 골목마다 순찰을 돌아줬으면 좋겠어요.고척동의 이모씨 얼마 전에 저희 집 근처에서 살인사건이 났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여대생이라고 여자만 상대로 그런 엄청난 일을 벌인다고 하던데 정말 요즘에는 골목길이 무섭습니다. 그런 사건이 난 뒤라 그런지 골목길에 사람들도 아무도 안다니고 저녁시간이 되면 정말 걱정스럽습니다.

대림동의 임모씨 구로구 여성살인사건. 무서워서 못 다니겠어요.오늘이 목요일이잖아요. 그 미친 범인이 이 근방에 살면서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면 무서워 죽겠어요. 제 동생은 극장에서 스태프로 일하기 때문에 12시나 돼야 귀가하는 때가 많은데 정말 불안해요. 대림동의 유모씨 요즘 부녀자 살인사건으로 불안합니다. 6월 5일 어제 제가 들은 소문으로는 또 한 개의 살인사건이 근처에서 일어났다고 합니다. 소문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주민들의 심적 불안은 대단하다는 것을 반영합니다. 제발 빨리 범인을 잡아 주세요.봉천동의 윤모씨 어디 무서워서 살겠습니까.저희동네 보니까 경찰분들 밤에 한분도 안보이시던데, 뭔가 대책을 좀 마련해 줬으면 합니다. 1월인가 2월부터 시작됐다고 하는데, 점점 소문은 크게 퍼져만 가고 8명이 죽었느니 흰옷을 입지 말라느니 목요일 비오는날 밤을 조심하라느니 아주 흉한 소문이 무성해요. 너무 무섭습니다.

연쇄살인 괴담
“일정버스 노선따라 살인진행”“목요일 하얀옷 입은 사람 대상”‘신 살인의 추억’과 관련된 소문도 끊이지 않고 있다.

버스노선을 따라 살인사건이 진행되고 있다거나, 목요일 하얀 옷을 입지 말라는 괴소문이 서울 서남부지역 학생 사이에 퍼지고 있는 것. D고 1학년 김모(17) 양은 “살인사건이 7 - 버스노선을 따라 일어난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아 우리도 버스노선을 따라 이동하기를 꺼린다”며 “교복 색깔마저 흰색이라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서울 구로구에 거주하는 P군은 “한달 전부터인가 이상한 소문이 학교에 돌기 시작한 것 같다. 이번에는 살인마가 구로구일대에서 여고생들을 죽이려고 밤에 돌아다닌다는 그런 거였는데, 다들 이렇게 떠도는 소문 때문에 밤길을 무서워한다”라고 말했다. 다른 지역 학생들에게 물어도 상황은 마찬가지. 신림동 H고에 다니는 한 학생도 “덕택에 다들 야간 자율학습 시간 내내 집에 갈 생각을 하면 공포에 떤다”며 “요즘은 밤에 애들이 하나같이 무서워서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면 집으로 뛰어가기 바쁘다”고 말했다.

살인마 공포에 학교도 비상령

사건 일대 학교들 하교시간 앞당겨연쇄사건이 발생한 일대 지역 주민들에 따르면 구로·동작·영등포구 일대의 서울 서남부지역을 중심으로 인근 20~30개 중·고교의 학생들의 공포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경찰은 인근 학교에 공문을 보내 하교길 안전지도를 당부했고, 일선 학교도 하교시간을 앞당기는 등 학생지도에 나서고 있다. 심지어 몇몇 여고는 자율적으로 남아 실시하던 야간 자율학습 시간을 밤8시까지로 제한하거나 아예 중단했다. 이 지역 학교당국은 또 각 가정에 통신문을 전달을 발송, ‘혼자 다니지 말고 여럿이 함께 움직일 것’,’밤늦은 경우 가급적 학부모가 자녀를 데리러 올 것’등의 안전수칙을 고지하기도 했다.특히 일부 지역에서는 집 값과 건물 임대료가 동반하락하는 상황마저 연출되고 있어 해당 지역 주민들은 하루빨리 범인이 검거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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