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자력으로 내 집 마련은 꿈?


- 소득 대비 집값 폭등에 캥거루족 습관까지 이어져
- 자녀들 “혼자 못할 것”…부모들 “책임감 느껴”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부모 세대가 숟가락 하나만 들고 나와 독립하던 풍조와 달리 자녀 세대는 부모가 집을 사주지 않으면 자력으로 내 집 마련이 불가능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한 결혼정보업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신혼부부의 내 집 마련 후 결혼 비율이 10년간 12% 넘게 증가했으나 같은 기간 은행대출 비중은 1.7% 늘어나는 데 그쳤다. 대부분 자력이 아닌 부모의 도움으로 마련한 신혼집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결혼한 신혼부부 10쌍 중 4쌍은 결혼과 동시에 집을 산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정보업체 선우에 따르면 2011년 결혼한 신혼부부 323쌍 중 132쌍은 내 집 마련 후 신접살림을 차렸다. 이는 40.9%에 달하는 수치로 10년 전인 2001년 28.4 %보다 12.5%p 늘어난 결과다.

더불어 신혼집 평수도 2011년에는 평균 95㎡(28.7평)으로 2001년 73㎡(22.1평)에 비해 22.2㎡(6.6평) 넓어졌다. 이에 반해 주택자금에서 은행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게 차이가 없었다. 2011년 결혼한 신혼부부들이 마련한 집값 중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비율은 9.8%로 2001년 8.1%보다 1.7%p 늘어났을 뿐이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비싼 집값…여전히 PIR 높아

전문가들은 신혼부부들이 부모의 도움을 받아 집을 마련하는 현상은 소득 대비 집값 폭등에 기인한다고 진단한다.

실제로 서울의 연소득대비 주택가격비율(Price Income Rate, PIR)은 지난해 기준 10을 기록했다. PIR이란 주택가격을 가구당 연소득으로 나눈 값으로 대출 없이 소득만으로 주택을 구입할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다. 예를 들어 PIR이 10인 경우 10년치 소득을 한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주택을 구입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 PIR이 여전히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12년 서울의 PIR은 10을 기록했다. 현재 도시근로자가구 연간소득이 분위별로 다르지만 평균 5000만 원인 것을 고려하면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다.

이는 한창 집값이 날개를 달았던 2006년 서울의 PIR인 12.64이나 비슷한 시기 강남 지역의 PIR인 18.9보다는 하락한 수치지만 여전히 높다. 유엔 인간정주위원회에서 규정한 적정 PIR은 3~5 수준이다.

연구원은 현행 대출금리와 적정주거비지출비율(월 소득대비 20%가량)을 감안한 우리나라의 적정주택가격은 2억7500만 원 내외라는 입장을 내놨다. 하지만 서울의 아파트 평균 매매시세는 3.3㎡ 당 1643만원, 공급 109㎡(33평형)기준 5억4200만 원으로 두 배에 달한다.

김태섭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주택가격과 소득에 따른 지불능력을 고려할 때 서울의 주택가격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결국 자녀 세대가 부모 도움 없이 서울에 집을 사서 결혼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계산이다.

때문에 신혼부부들은 부모 세대 때보다 몇 배는 높아진 집값 때문에 주택구입은 물론 매매가의 70~80%에 이르는 전세금 마련조차도 힘겹다는 불만을 터뜨린다. 또한 예비부부들은 신혼집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으면 결혼 자체를 늦추거나 포기하겠다는 선언도 서슴지 않는다.
 

30~40대 캥거루족 규모 50만 명에 육박

이처럼 젊은 세대들이 자력으로 내 집 마련을 포기하게 된 데는 높은 집값 외에도 부모에게 의존하는 ‘캥거루족’의 습성이 한몫했다는 시각도 있다. 캥거루족이란 캥거루가 주머니 안에 새끼를 담고 다니는 데서 유래한 신조어다. 주로 성인이 된 후에도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며 함께 사는 이들을 뜻한다.

특히 우리나라 30~40대 캥거루족 규모는 50만명에 육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과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 내에서 가구주인 부모와 동거하는 30~40대 자녀는 2000년 25만3000명에서 2010년 48만4000명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사실 원래 의미대로라면 결혼과 동시에 분가를 위한 내 집 마련에 도움을 받는 것은 진정한 캥거루족의 범위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따로 살기 위한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순간까지도 여전히 부모에게 기대는 습관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원생은 “재수, 어학연수, 인턴십 등으로 대학 입학과 졸업이 늦어진데다가 갈수록 취업이 힘들어 졸업을 연기하거나 졸업 후 소속 없이 취업준비로 공백기를 거치는 것이 이 시대 젊은이들의 현주소”라며 “현재 부업으로 대학원 등록금 벌기도 빠듯한 상황에서 결혼은 부모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아예 할 수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취업에 성공한 구직자 역시 “그나마 취업을 해도 대부분 사회 초년생 티를 벗지 못한 채 결혼 시기가 닥쳐 고민하게 된다”면서 “회사 근처에서 혼자 살 만한 집을 구하는 것도 부모 도움 없이는 힘든 세태에서 결혼 후 둘이 살 만한 내집을 자력으로 마련한다는 것은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고 토로했다.


부모들 아직도 자녀가 우선…노후는?

한편 성인이 된 자녀의 경제적 독립을 장려하지 않는 부모들의 인식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자신은 힘들게 자랐지만 자식은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과잉보호를 한다는 것이다.

한 대기업 임원은 “얼마 전 결혼한 아들의 신혼집을 일부 대출을 끼고 마련해 줬다”면서 “사실상 부모 세대가 단기간에 올려놓은 집값을 자녀 세대에게만 떠안길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한 중소기업 사장 역시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자식이 소위 말하는 연애ㆍ결혼ㆍ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삶의 보람이 없다”면서 “지금까지 정성들여 키운 만큼 앞으로도 물질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은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게 도와주고 싶다”고 털어놨다.

이로 인해 부모 세대들의 은퇴 이후 경제적 문제도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지선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자녀 세대들의 독립 시기가 점차 늦어지는 반면 부모 세대들의 은퇴연령은 크게 높아지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자녀 세대는 청년자립지원, 부모 세대는 정년연장과 같은 정책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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