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경찰서는 지난 12일 혼인을 빙자해 미혼여성들과 성관계를 갖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한 뒤 인터넷에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혐의로 이성필(30·가명)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대기업 회장 친손자 사칭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서울의 명문 C사립대학원을 수료한 엘리트. 그러나 이씨는 대학원졸업 이후 특별한 직업없이 1평 남짓한 서대문의 한 고시원에 틀어박혀 생활하며 그 좋은 머리를 취업보다는 오로지 ‘작업(?)’에만 사용했다. 특히 그의 제비행각에는 화려한 언변과 수려한 외모가 한몫 했다. 인터넷 채팅 사이트를 통해 말로 여성들을 사로잡고 직접 만나면 호감을 사는 외모로 여성을 현혹시킨 것.피해 여성들은 모두 직장인으로 그 중 대표적인 여성이 미국의 명문 A 대학 석사출신인 송모(30)씨다. 그녀는 이씨와 결혼일보직전까지 갔다 뒤늦게 후회한 경우다.이씨는 지난 99년 5월경 한 PC 방에서 인터넷 채팅을 하던 중 송씨를 만났다. 이씨는 송씨가 미국의 명문 A대학 출신이라고 하자, 작업 대상으로 선정하고 물밑작업에 들어갔다.

이씨는 스스로를 ‘미국의 P대학 석사출신’이라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 경력도 있고 지금은 전공을 바꾸어 공부중인 모 대기업의 친손자다” 라고 송씨를 속였다. 이씨는 송씨가 호감을 느끼자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만남으로 이어갔다. 이씨는 “당신은 나의 이상형이다. 결혼을 전제로 사귀고 싶다”라는 말로 송씨를 현혹시켜 첫 만남부터 곧바로 모텔로 직행했다. 이후 송씨와의 만남은 잦아졌고 이씨는 “기념으로 성관계 장면을 찍어두자”, “서로 변심하지 않게 성관계 장면을 찍어두자”는 말로 유혹해 그녀의 나체사진을 찍어 두었다. 그러나 이씨의 거짓말은 오래가지 못했다. 옷은 물론 신발과 안경까지 명품으로 치장하고 다니던 이씨가 자신의 지갑에 손을 대는 등 그외에도 미심쩍은 행동을 자주 목격한 것. 송씨는 이씨의 말과 행동에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이에 송씨는 이씨가 실제 미국의 P 대학 석사과정을 나왔는지 알아보았고 거짓임을 알게 됐다.

여성의 메신저 도용

속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송씨는 충격과 뒤늦은 후회를 하며 외국으로 떠나 버렸다. 그러나 이씨는 그녀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송씨의 집안이 부자라는 사실을 안 이씨는 그녀와 결혼을 생각했던 것. 이에 이메일을 통해 매일 연락했다. 때로는 “나는 네가 없으면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며 결혼하자고 애원했고 때로는 “만나주지 않으면 찍어두었던 나체사진을 가족들에게 보내고 인터넷에 공개해 피해를 주겠다”며 협박했다. 괴로워하며 고민하던 송씨는 결국 다시 국내로 돌아와 이씨와 결혼하기로 마음먹고 부모님끼리 상견례까지 했다. 하지만 이씨는 이 자리에서도 거짓말을 일삼았다.

송씨의 부모에게 자신을 ‘OO일보 국회 출입기자’라고 소개한 것. 이 말을 들은 송씨는 즉각 OO일보에 전화를 걸어 확인했다. 또다시 속인 것이었다. 실망한 송씨는 할말을 잃었고 도저히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라고 단정했다. 얼마 뒤 송씨의 이런 생각을 굳히게 만든 결정적인 사건이 터졌다. 이씨가 ‘사이버제비’였다는 증거를 잡게 된 것. 우연히 컴퓨터를 하고 있던 송씨는 어떤 여성이 자신의 메신저에 계속 글을 남기고 있음을 알았다. 전혀 알지 못하는 여성이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가만히 지켜보던 송씨에게 불현듯 이 여성이 이씨에게 글을 남기는 것 같다는 느낌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와 대화를 나눠보니 예감했던 그대로였다. 송씨의 아이디는 자신이 나온 미국의 모 대학을 상징하는 뜻을 지니고 있었다. 이를 잘 알고 있었던 이씨가 다른 여성들을 유혹할때 자신이 그 대학을 나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용했던 것. 이같은 사실을 알게 된 송씨는 ‘이씨가 돈을 노리고 접근한 전문 제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또 다른 피해여성이 있는지 메신저 등을 통해 탐문했고 자기 이외에 3명의 여성이 더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송씨는 황당하다 못해 자신이 이씨의 노리개였다는 사실에 치를 떨었다. 결국 이씨와 만남을 가져온 여성들은 송씨의 주도로 한자리에 모였고 전문 제비에게 농락당했다는 사실에 격분해 이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조사결과 이씨는 송씨를 사귀는 도중에 3명의 여성을 따로 만나왔고 모두 결혼을 전제로 한 성관계를 가져온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송씨처럼 “결혼하겠다”며 가족간의 상견례까지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씨는 경찰에 “다른 여성은 몰라도 송씨와는 진짜 결혼을 할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이씨를 혼인빙자간음, 협박, 강간, 절도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이씨는 철창신세를 면하기 어렵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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