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가 급한 일이 있어서 내가 대신…30대 트랜스젠더 남성이 여자 행세를 하며 인터넷을 통해 만난 남성에게 접근해 돈을 뜯어냈다가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 동안 10대, 20대 꽃뱀들이 사이버상에서 남성들을 유혹, 돈을 갈취해온 사례는 많았지만, 트랜스젠더가 꽃뱀행각을 벌이다 발각돼 처벌받기는 이번이 처음. 황당한 트랜스젠더 꽃뱀사건의 내막을 들여다보았다.

목소리 때문에 속았다

서울지법 동부지원 형사7단독 홍성칠 판사는 오랫동안 호르몬제를 복용해 여자목소리가 나는 점을 이용, 사이버 상에서 만난 남성에게 14차례에 걸쳐 3,810만원을 뜯어낸 트랜스젠더 이성훈(가명·32)씨에 대해 사기죄를 적용해 징역 4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호르몬제 복용 목소리가 여자처럼 변해

판결문에 따르면 이씨는 1994년부터 여성 호르몬제를 복용해왔다. 이에 이씨는 몸뿐만 아니라 목소리도 여성으로 착각할 정도로 변해갔다. 이후 트랜스젠더로 생활해온 이씨는 2002년 2월 인터넷 D 게임 사이트에 가짜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해 28세의 여성 회원으로 가입했다.이씨는 이곳에서 채팅을 통해 30대 초반의 직장인 남성 A씨를 알게 됐다. 물론 A씨는 아이디가 여자 이름으로 돼 있어 이씨가 남자일 것이라고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첫 만남 이후 채팅을 통해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서로 안부를 묻는 전화까지 주고받는 사이로 발전했다. 이씨는 여자 목소리를 지니고 있었기에 들킬 염려는 하지 않았다. 설사 들키더라도 관계를 끊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씨가 파렴치한 사기범으로 전락해 법의 처벌을 받게 된 것은 돈 때문에 비롯됐다. A씨와 주기적으로 채팅과 전화로 연락을 주고받던 이씨는 지난 4월 4일 경 급히 쓸데가 있다며 A씨에게 돈을 좀 빌려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A씨는 20만원을 이씨의 계좌로 송금했다.

한 번 만나자는 요구에 어쩔 수 없이 나갔다가 고소 당해

그러나 이씨의 돈 요구는 시작에 불과했다. A씨에게 한 차례 돈을 송금받은 이씨는 이날 이후 자주 돈을 빌려달라고 요구했고 그 때마다 A씨는 별다른 의심없이 이씨의 계좌로 돈을 넣어주었다. 이씨는 심지어 4월23일부터 4일간 각각 300만원, 500만원, 500만원, 200만원 등 1,500만원의 거금을 빌리기까지 했다. 이렇게 6개월간 이씨가 A씨에게 빌린 돈은 무려 3,810만원에 달할 정도로 점점 불어났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A씨는 채팅과 전화통화만 하지 말고 직접 만나자고 몇 차례 제안했다.

철저히 자신을 여자로 속였던 이씨에게 닥친 큰 위기였다. 하지만 이씨는 교묘했다. 자신의 정체가 들통날까봐 동생신분으로 위장한 것. 이씨는 A씨와 데이트 장소에 나가 누나가 급한 일이 있어서 내가 대신 나왔다고 속여 수 차례 신분이 드러날 위기를 간신히 넘겼다. 그러나 이씨는 A씨의 한번 만나보자는 거듭된 요구를 마냥 거절할 수 없었다. 결국 이씨는 지난 10월경 A씨를 직접 만났다. 진실이 밝혀질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이씨의 외모를 본 A씨는 한 눈에 그가 남자임을 눈치챘고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에 A씨는 즉각 이씨를 고소했고, A씨는 사기죄로 구속돼 실형을 언도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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