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고고학’의 보고 … 당시 생활상 엿볼 수 있어 청계천 복원 역사문화유적 보존도 생각해야 ‘청계천은 역사문화의 보고.’지난 7월 시작한 청계천 복원공사. 공사 진행과 함께 청계천의 문화유적에 대한 연구작업도 한창이다. 중앙문화재연구원(원장 장세영)은 지난 9월30일부터 60일간 청계천 옛 다리터 및 퇴적층에 대해 시굴조사를 진행했다. 연구원은 지난 11월 26일 “청계천에 있었던 옛 다리의 흔적들을 발견했고 청계천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많은 물품들이 나왔다”고 조사결과를 밝혔다. 청계천 유적이 발견된 현장을 스케치했다. 지난달 26일 중앙문화재연구원이 청계천 시굴조사 지도위원회를 개최하고 현장 설명회를 가졌다.

예나 지금이나 화투는 ‘국민적 오락’

이날 지도위원회는 그 동안 시굴작업에서 나온 유적에 대해 상세하게 브리핑한 후 유적 발견 장소로 가 현장 설명회를 가졌다. 이날 언론에 공개된 현장은 서울 청계6가 마전교와 오간수문이 있던 부근이다. 복원공사현장사무소가 임시로 만든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가장 먼저 기다리고 있던 것은 청계천 부근에서 생활하던 민초들의 흔적이었다. 조사단이 그 동안 현장조사에서 발견된 유물들을 한데 모아 공개한 것. 국내 ‘쓰레기 고고학’의 서막을 열었다는 말처럼 조선 후기시대의 생활자기부터 현대인의 필수품인 신용카드까지 당시의 생활상을 담은 사료들이 전시돼 있었다. 특히 많이 발견된 것은 화투와 소뼈였다는 게 조사단의 설명이다.

연구원 관계자는 “1950년대 이후 서울 서민들의 생활상을 한 눈에 살필 수 있었던 것이 큰 수확이었다”며 “화투가 많이 발견된 것은 예나 지금이나 화투가 ‘국민적 오락’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소뼈는 당시 청계천 복개 이전에 주변에 많았던 해장국이나 감자탕 집에서 버린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그밖에도 미원봉지, 주민등록증 등 갖가지 물품들이 발견됐다고 조사단은 전했다. 이를 지켜본 중앙문화재연구원 소속의 한 지도위원은 “청계천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각 시대의 생활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어 그 가치가 높다”며“작고 하찮은 물품이라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옛 문화를 보존해가며 복원해야

전시된 물품을 지켜본 뒤 시굴조사에서 발견된 오간수문의 옛 흔적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다섯 개의 아치형 구멍을 내 만든 오간수문은 청계천 물줄기가 도성을 빠져나가는 지점에 놓여 있던 다리였다. 1907년 일제가 청계천 물이 잘 흘러가도록 한다는 미명하에 오간수문을 모두 헐어버릴 때 함께 사라지고 콘크리트 다리로 교체됐다. 이후 그 흔적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 공개된 현장에는 오간수문의 목주, 기초석 등이 흙더미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조사에 참여했던 연구원 관계자는 “시굴조사결과 오간수문과 관련된 목재와 석재가 산재된 채 노출됐다”며 “이를 통해 오간수문의 방향과 지금까지의 변화상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목주와 석재가 확인된 지역을 대상으로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전체적인 수문의 형태와 이후의 변화상을 확인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이날 공개된 현장이외에도 무교동 사거리 인근에서 청계천 양안의 일부로 보이는 ‘석축’과 수표교ㆍ하랑교ㆍ효경교 등 옛 다리터 3곳에서 ‘기초석’ 등의 유구가 발견됐다. 한편 이날 현장에 참석했던 문화재청 관계자는 “공사가 다소 늦춰지더라도 청계천 복원은 옛 역사문화유적들을 보존하고 살리면서 진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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