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4 재보선부터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후보를 공천하지 않겠다던 새누리당의 약속이 ‘지역사정에 따른 특별한 이견이 없다면’이란 이상한 단서가 붙었다. 이 조건부 무공천 입장은 최종 공천 여부를 지역 당협위원장의 뜻에 맡기겠다는 것으로 인식된다. 정치개혁 의지가 초장부터 유야무야 되는 셈이다.


정치개혁의 실행이 이처럼 어려운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밝혔고 당 공천심사위원회가 결정한 사항이 이 모양이면 다른 정치개혁 부문이야 말할게 못된다. 물론 새누리당 지도부의 현실적 고민이 있었다. 민주통합당이 대선 공약을 무시하고 기초재보선 공천의지를 드러내는 판에 새누리당만 무공천 원칙을 고수하면 야당 독주의 선거전이 된다는 판단을 안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사정은 작년 여야 대통령 후보가 내세웠던 정치개혁 논리에 비추면 사소한 것에 불과하다. 중앙정치에 얽매이는 지방정치의 부정적 효과를 차단키 위해서는 그 출발점인 ‘기초 후보’ 공천을 잘라내야 한다는 것이 그동안 이룬 국민적 합의였다. 때문에 지방에서의 정치 손실을 감수하면서 이 일을 해내야 할 원칙이 특히 여당에 있는 것이다.


모르긴 해도 대부분 새누리당 국회의원들 마음이 민주통합당의 이번공약 뒤집기가 감히 청하지 못하면 속으로 바라고 바라는 ‘불감청(不敢請)’이면 ‘고소원(固所願)’이었지 싶다. 또 야당 논리에 기대어 새누리당이 지적한 ‘기초 후보’ 공천의 근거인 공직선거법 47조는 공천이 가능하다는 것일 뿐, 반드시 공천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법 개정은 무리하게 서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법 문제를 떠들어 자신들의 의지박약을 호도할 생각은 않는 게 좋다.


대선후보 시절 박근혜 대통령은 “정당개혁의 핵심은 공천개혁에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집권 후 새누리당 일부 최고위원들이 이에 제동을 걸고 나왔다. 그 이유가 참신한 정치 신인들이 지방 토호세력에 밀려 당선될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공천을 통해 걸러내야 한다는 궁색한 것이다. 또 후보가 난립하면서 지역 편 가르기가 심화될 수 있다는 그야말로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논리다.


지역구 국회의원이 공천권을 거머쥐고 지자체장과 지방의원을 제집 종 부리듯 한다는 지적은 고전이 된지 오래다. 더 한심한건 시· 군 단체장과 해당의회 의원들의 소속정당이 다를 때 사사건건 다투다 보니 지역 사업들이 줄줄이 좌초되는 폐해다. 지방자치가 성공하려면 정치색을 빼야하는 이유가 이같이 분명하다. 새누리당이 4·24 재보선에서는 무공천을 확정해서 대통령 지지율을 더 까먹지 않겠다는 전략을 세웠으나 ‘지역사정’ 운운해 놓은 단서를 떼버리지 않는한 여당이 들어서 대통령의 힘을 더 빼놓는 쪽이 될 수밖에 없다.


관련 현행법을 핑계하는 대목에선 국회가 지켜야 할 국회법 등은 안 지키면서 개정을 공약해놓은 공직선거법 만큼은 일몰 때까지 지키겠다는 여야 의원들의 자의적 이기심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이미 대선에서 결론이 난 명제를 안고 새삼 정치권이 장단점을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유권자 우롱이라는 판단을 왜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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