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ㆍ기업은행 지분 매각 백지화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KDB산업은행과 IBK기업은행의 정부 지분 매각이 없었던 일로 돌아가면서 국책은행들이 민영화 철회에 직면한 상황이다. 게다가 산은의 경우 기업공개까지 무산될 위기에 처했으며 정책금융공사와의 통폐합까지 거론돼 향후 은행의 방향성이 불투명한 형국이다. 또한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미 국책은행 민영화가 예견된 실패라는 입장을 드러내며 새 정부의 정책금융기관 개편에 주목하고 있다.
 

   
   
 

MB정부가 추진하던 공공기관 선진화 엎어져
손에 7조 쥐고도 구멍난 12조 방치하는 까닭

새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추가 ‘전면중단’ 쪽으로 기울어졌다. 박근혜 정부는 이미 인수위 시절부터 MB 정부와 선을 긋기 위해 공공기관 선진화가 아닌 합리화로 방향을 틀겠다는 의지를 보여 왔다.

원래 정부는 올해 예산안에서 국책은행의 정부소유 지분을 매각해 산은 2조6000억 원, 기은 5조1000억 원 등 총 7조7000억 원을 세외수입으로 충당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대규모 추가경정예산에 따른 세수 부족에도 불구하고 현 상황에서 지분매각이 쉽지 않다며 철회를 결정한 것이다.

이석준 기획재정부 2차관은 지난달 29일 “일단 올해 지분 매각은 안 한다”면서 “금융공기업 전반에 대해 어떻게 할지 청사진이 그려지면 그에 따라 법을 개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도 바로 전날인 28일 “산은ㆍ기은이 제대로 팔릴 수 있을지, 팔려도 원래 계산한 가격을 받을 수 있을지 따져봐야 한다”면서 “현재 경제여건으로 볼 때 산은 지분 매각이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데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민영화 올스톱에 IPO 불가론도

현재 정부는 올해 세입에서 총 12조 원의 세수 결손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작금의 세수 결손은 심각한 상황으로 국세에서만도 6조 원이 부족하다. 지난해 경제성장 둔화로 인한 파급 효과는 4조5000억 원으로 예상된다. 예산 심의 당시 올해 경제상황이 악화될 경우 계산했어야 할 세입감소 역시 예산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올해 하반기에는 소위 말하는 한국판 ‘재정절벽’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세수 결손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7조 원이 넘는 산은ㆍ기은 지분을 손에 쥐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외적인 이유는 지분 매각 자체가 쉽지 않으며 매각해도 제값을 받기 어렵다는 것이다.

산은의 경우 기업공개(IPO)를 통한 지분 매각 방식을 택했는데 IPO를 위해서는 산은의 대외부채를 정부가 보증한다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만 한다. 그렇지만 이 국가보증동의안은 산은 민영화를 반대하는 민주통합당과 다소 소극적인 새누리당의 태도로 인해 지난해 6월부터 국회에 계류돼 있는 상태다. 계속해서 주식시장이 난항하는 탓에 지분을 매각해도 제대로 값을 매겨 받을 수 있는 확률 역시 희박해졌다.

기은의 경우에도 현재 보유한 보통주 68.6%중 50%만 남기고 18%가량만 시장에 내놓는다는 입장이다. 새 정부의 화두가 중소기업 지원인 만큼 기은을 통해 중소기업들을 독려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산은, 정책금융공사 통폐합까지 거론

정부의 확고한 의지에 산은과 기은은 예상은 했지만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이미 중도퇴임 의사를 밝힌 강만수 산은금융 회장도 주주총회에서 IPO만큼은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강 회장은 “산은이 정부 증자도 못 받고 IPO도 못하면 성장세를 이어가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 “정부가 대주주로 남되 IPO는 진행해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함으로써 기업을 지원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조 수석은 이와 관련해 “IPO도 거론하지 말라”는 뜻을 산은금융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산은 민영화와 IPO가 모두 중단될 경우 민영화를 이유로 산은에서 갈라져 나온 정책금융공사와의 통폐합도 가능할 전망이다. 새 정부는 정책금융공사나 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의 대대적인 개편을 준비하고 있으며 개편안은 오는 6월까지 확정될 계획이다. 기은의 경우 산은처럼 구조적 개편에 대한 우려는 없지만 민영화에 대비하던 사업들이 중단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예견된 민영화 실패… 신용도는 ‘긍정적’

이미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산은ㆍ기은 민영화가 어렵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서영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지난 2월 보고서를 통해 “은행의 대형화와 민영화의 문제점이 금융위기 이후 부각된 데다 중소기업 육성 등 국책은행의 정책 기능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져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정부 소유 대형은행의 민영화가 유보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또한 서 연구원은 “새 정부는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보유한도 축소를 위한 은행법 개정을 국정과제에 포함했다”면서 “산업자본의 은행 보유한도를 줄인다는 것은 PEF 등 잠재적 투자자의 은행 지분 매수를 불허하는 것인데 사실상 정부 지분의 일괄 매각을 불가능케 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한편 무디스는 지난 4일 보고서에서 산은ㆍ기은의 지분 매각 중단과 관련해 “신용도에 긍정적”이라고 평가해 눈길을 끌었다. 현재 무디스가 부여한 국책은행들의 신용등급은 산은과 기은 모두 ‘Aa3’이며 등급전망은 각각 ‘부정적’, ‘안정적’이다.

무디스는 “새 정부의 발표는 산은과 기은 등 국책은행의 중소기업 지원 정책에 대한 중요성을 보여 주는 것”이라며 “이전 정부에서 추진했던 정책은 산은과 기은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감소함을 시사했다”고 분석했다.

특히 무디스는 산은을 향해 “그동안 민영화에 대비해 다이렉트뱅킹 등으로 소매예금 기반을 확충하면서 시중은행들의 자금조달과 마진에 압박을 가중시켜 왔으나 민영화 계획이 중단되면 이러한 기반도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nykim@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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