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길재 통일부 장관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노무현 정부의 이재정 통일부장관을 떠올리게 한다. 아니면 학자 출신으로서 너무 순진한 탓인지, 헷갈리게 한다.

류 통일은 3월 11일 취임사를 통해 북한의 3차 핵실험과 “협박 언사는 국민들에게 불안과 걱정을 주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추진함으로써 한반도에서 신뢰를 쌓고, 남북관계를 정상화하여 행복한 통일시대”로 가자고 했다. 그는 이어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북한의) 영유아 및 취약계층에 대한 대북 인도적 지원이 이뤄지도록 검토해 나가겠다.”고 하였다.

그는 자신의 말처럼 북한이 우리 국민들에게 “불안과 걱정”을 주고 있는 터인데도 태평스럽게 “영유아 및 취약계층에 대한 대북 인도적 지원”을 검토하겠다 했다. 북한이 제2의 천안함 도발을 자행해도 “상황과 관계없이” 지원하겠다는 말인가 묻고 싶다. 통일부 장관이 아니라 종북 민간지원 단체의 대변인 처럼 들리게 했다. 통일부는 통일정책의 종합·조정 역할을 하며 국가안보와 남북관계를 관리하는 곳이다. 대북 지원 부서는 결코 아니다.

북한은 연일 “한국을 최종 파괴할 것” “정밀 핵타격 수단으로 서울과 워싱턴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며 금방이라도 핵폭탄을 투하할 기세다. 바로 이 엄중한 시기에 류 통일은 한가롭게 대북 지원 말을 되풀이 했다. 화성에서 온 사람 같다.

그는 3월 27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도 9가지 중점과제들 중에서 대북 인도적 문제의 실질적 해결을 1순위로 꼽았다. 업무보고 후 기자회견에서는 북한의 “취약계층과 영유아 지원은 상황에 무관하게 하겠다는 점을 일관되게 설명해 왔다.”고 강조했다. 남북관계 변화를 위한 노력을 “상황에 구속돼서 수동적으로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류 통일의 “상황”에 구애 받지 않는 대북 지원 강조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신뢰 프로세스)’구축 내용을 되풀이 한 것이다. 그는 3·11 취임사에서도 신뢰 프로세스를 들고 나왔다고 했다. 신뢰 프로세스는 세 가지로 1)남북한간의 합이사항 및 북한의 국제사회와의 합의사항 존중, 2)정치적 상황에 구애받지 않는 지속적인 인도적 호혜적 교류사업, 3)남북간 경제협력 다양화 및 북한 인프라 구축, 등으로 짜여져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3월 14일 북한의 도발위협으로 자신의 신뢰 프로세스를 진전시킬 수 없다고 분명히 했다. 그는 “박수는 양손이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면서 “현재 상황은 이런 생각을 진전시키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 장관은 2주일 만에 박 대통령의 3.14 발언에 정면으로 반하는 말을 했다. 취약계층과 영유아에 대한 지원은 “상황에 무관하게” 밀고 가겠다고 공언했던 것이다. 자신을 임명한 대한민국 대통령 보다는 북한을 더 챙긴다는 감을 금할 수 없게 한다.

실상 류 통일은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시절 북한 챙기기 발언을 삼가지 않았다. 그는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여인 피살 후 정부의 금강산 관광 중지 조치와 관련, 조속히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국방백서’의 북한 주적 표현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밝혔었다. 류 통일의 “상황“과 관계없는 대북 영유아·취약계층 지원과 신뢰 프로세스 추진 주장은 그가 이재정 역할로 가는 게 아닌가 불안케 한다. 그는 남한이 북한의 무자비한 기습 무력도발에 수없이 당했고 거짓선전에 기망당해 온 역사를 간과한 듯 싶다. 북한에도 “주면 바뀌긴다” “대화하면 열린다”는 허상에 빠진 것 같다. 류 통일은 “박수는 양손이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대목을 되씹어 주기 바란다. 북한은 우리가 내민 손을 물어뜯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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