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되는 북한의 전쟁위협에도 불구하고 사재기도 없고 평소처럼 차분한 서울 분위기가 외신기자들 눈에 신기하게 비춰지는 모양이다. CNN 등의 분쟁전문기자들이 서울로 급파되고 수백명의 외신 기자들이 취재경쟁에 열 올리는 것과는 서울 분위기가 너무 대조적이라는 외신보도가 4월 첫 주말 뉴스로 일제히 나갔다.
전쟁 임박설이 파다해도 한국인이 무덤덤한 것은 북한의 위협이 수십 년간 한국인의 일상사였다는 사실을 외신기자들이 덜 생각한 것 같다. 그동안 우리 안보의식이 이완 될 대로 돼버린 상태다. 그럴 것이 10여년 전의 김대중 정권은 “북한은 핵 개발 능력도, 그럴 의도도 없다”고 장담했다. 좌파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노무현 정권은 핵개발에 성공한 북한을 주적(主敵)에서 삭제했다. 우리 그런 나라였다.
10여 년간 퍼준 대가로 돌려받은 게 핵 도발과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에다 사이버테러, 개성공단 폐쇄 협박이다. 아마 15일 김일성 생일인 소위 그들 태양절을 지나고 더욱 긴장을 고조시킬 전략일 것이다. 북한이 매일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내용을 한건씩 터트리는 ‘헤드라인 전략’을 쓴다는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지적이 틀리지 않을 공산이다.
이런 상황이면 아무리 안보의식이 이완돼도 여느 때의 북한 도발 때처럼 민심이 동요해 사재기현상 같은 게 일어나고 여론이 들끓어 갈팡질팡 해야 격에 맞다. 그런데 누가 특별하게 교육을 시킨 것도 아니면서 민중이 동요하는 빛이 없다. 오히려 북한이 초조할 판이다. 한국 정부의 일관된 원칙에 흔들림이 없어 보여 제풀에 물러서기조차 어렵게 된 형국이다.
때문에 북한이 개성공단 문제를 놓고 공단 폐쇄와 직원 억류라는 최악의 카드를 꺼낼지 모른다는 우려가 높다. 그래서 우리 기업의 피해가 확대되면 대북정책에 대한 남한 사회의 갈등이 고조되고, 그 부담을 고스란히 한국 정부가 지게 되는 상황을 충분히 계산하고 있으리란 점에서 개성공단입주 기업인 단체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즉각 가동하라고 정부에 촉구하고 나선 대목이 본의 아니게 북측의 노림수에 말려들고 있다는 판단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의연하고 정교한 대응이 돋보인 것은, 정부가 당장 특사를 보내야 하겠다는 등 수선을 떨어 긴박한 모습을 연출하면 과도한 안보불안이 몰고 올 엄청난 부작용이 불 보듯 해서였다. 결국 북한의 긴장고조 행위는 국제적 고립만 부를 뿐, 실익이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도록 만드는 것이 길게 북한을 길들이는 방법이다.
아마 지금이면 북한이 국지적인 도발이라도 저질면 그 몇 배의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을 것이다. 다만 엄포를 통해 우리 내부의 안보 불안감을 고조시키려는 심리전에 더 박차를 가할 움직임이다. 우리가 이에 맞서 북을 자극도 않고 호들갑도 안 떨 것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차분한 리더십이 지금 천군만마의 위력보다 낫다.
전쟁위협 속의 대통령 리더십은 최악의 전쟁 사태를 가정한 만반의 대비책을 조용한가운데 세우고 국민 동요가 없도록 하는 것이 최고다. 북측은 ‘최고 존엄에 대한 모독’이라는 억지 앞에서는 개성공단의 연간 8000만 달러 이상의 외화벌이도, 5만 명이상 근로자 가족의 생계문제도 내팽개칠 수 있는 통치문화다. 박 대통령이 대내외에 천명한 남북한 대화 제의는 북한의 허를 찌른 전략으로 보이나, 특사가 가서는 할 얘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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