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극동문제연구소 ‘북한문제 보고서’ 눈길

[일요서울 ㅣ 오병호 프리랜서] 북한의 미사일발사 위협이 연일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북한이 추가 핵실험 가능성을 내비쳐 국제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북한은 남한에 강도 높게 도발 위협을 가하면서 미사일 발사 시험이 임박했음을 밝혀 한반도에는 전운마저 감돌고 있다. 미국 중국 등 세계 주요 강국들은 북한의 최근 여러 분석과 해석을 내놓고 있지만 북한이 고도의 기만전술을 펴고 있어 잇따른 그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하고 있다. 한반도 정세가 한치 앞을 예상하기 힘들 정도로 짙은 안개에 휩싸인 상황에 러시아 극동문제연구소에서 분석해 작성한 ‘북한문제보고서’가 눈길을 끈다. 이 보고서가 작성된 시기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러시아가 동북아시아지역 문제와 미국 중국 등을 견제하기 위해 북한 내부 동향과 핵문제에 대해 세밀하게 분석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남한에 경제지원을 요구하고 있으나 미국에 의해 경제지원이 여의치 않자 이 문제를 러시아를 통해 풀어가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일요서울]이 북한과 러시아 간의 정치외교 소식에 정통한 한 소식통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실제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사망 직전 마지막으로 러시아를 방문해 경제지원 문제와 군사협력 문제 등을 긴밀하게 논의하고 상호 모종의 협약을 맺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 <뉴시스>

북한의 위협과 관련해 국세사회가 한반도를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 때문에 경제적으로 적지 않은 타격을 입고 있으며 정치적으로도 박근혜 정부가 시험대의 올랐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북한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에 따라 초기 박근혜 정부에 대한 평가가 결정될 것이라는 정치권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 문제와 관련해 ‘선대화, 후비핵화’ 대북 정책의 골격이 드러나면서 결국 선지원 후대화의 기류로 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진보그룹 등 일각에서는 이 같은 대화노력을 환영하는 기류다. 그러나 보수진영에서는 “일방적 유화책”이라며 반발하는 모습이다.
보수 진영 일부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통일정책이 뜻밖의 갈등 양상을 초래하고 있다. 이는 MB정부와 유사한 모양세”라며 “이번 정부도 보수에 등 돌리는 ‘무늬만 보수’가 되지는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한다.
청와대 핵심관계자에 따르면 정부는 비핵화를 선결 조건을 내걸지 않으면서 ▲1단계 인도적 차원의 지원 ▲2단계 농업·조림 등 낮은 단계의 경제협력 3단계 비핵화를 연계시킨 대규모 경제지원을 구상하고 있다. 무엇보다 주목할 대목은 청와대가 선비핵화 없이 대북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는 점이다.
이는 기존 이명박 정부의 선비핵화 후대화 기조를 뒤집은 것인데,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실체가 명확히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는 이 같은 선대화 후비핵화 원칙을 내세우면서 자칫 국내외 대북제재가 북한을 너무 자극하지 않도록 유의하는 분위기다. 이는 필요이상의 대북제재를 가하면 북한이 대화에 나설 여건 자체를 봉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소식통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는 대북정책과 관련해 기초적인 경제지원을 시작으로 지원규모를 늘이면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낸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이는 어떤 면에서는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유사해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다소 차이가 있다.

한반도는 소리 없는 전쟁 중

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경제지원과 협상을 통해 한반도 안정을 도모하겠다는 것으로 이는 장기적인 정책이 일단 관계 정상화 이후 핵문제 등을 논의하겠다는 의도다.
청와대의 한 소식통은 “정부는 최근 북한의 도발위협이 실제 전쟁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란 확신이 있다”며 “선대화 후비핵화 원칙을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배경엔 이 같은 확신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청와대는 북측이 이명박 정부 당시 수차례 도발을 감행한 것에 대해 이명박 정부가 교전수칙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정부는 북한의 도발에 실제 교전수칙에 따라 강도 높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고, 군에 대응수칙도 강경대응으로 지시를 내린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정부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보수 측은 불만이 적지 않다. 일부에서는 “북한이 군 통신선을 차단하는 날, 박근혜 정부가 선대화론을 내놓은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박 대통령 측을 강하게 비판 중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보수 측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선대화론은 바꿀 수 없는 대북정책”이라며 선대화 기조를 밀어붙인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일단 정치적인 조치보다 북한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방침이지만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강국들의 물밑 움직임은 사뭇 다르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는 매우 치밀하게 북한과 의견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북한 문제에 정통한 한 국제 외교 소식통의 설명에 따르면 러시아는 북한의 실질적 우방국 중 하나다. 김대중 정부시절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대통령에 당선되고 남한보다 북한을 먼저 방문한 것이 그 예다. 당시 푸틴과 김 위원장은 정상회담을 통해 과거부터 지금까지 우방국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기도 했다.
러시아의 극동문제연구소가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는 이미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는 최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유럽 방문에서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체르노빌 참사는 애들 장난수준일 것”이라고 말한 것에서 드러난다. 푸틴의 발언을 해석해 보면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북한의 핵공격이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또 이 보고서에는 “북한의 핵개발 요인 중 하나는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필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김일성 사후 중국과 북한의 국경지대에서 끊임없이 중국군과 총격전 등 마찰이 있어왔다는 점에서 무게가 실리는 분석이다.
실제로 중국은 남북한 간에 유사상황이 발생할 시 북한으로 진군하는 군사작전 계획을 세우고 있고 관련 훈련도 정기적으로 실시한다.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하면 중국이 한반도 중 북한을 장악하고 남한까지도 장악한다는 계획이라는 것이다. 이때 국제사회에 내밀 명분을 위해 동북공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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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택 주도로 정계개편 지도 그려

보고서는 한반도 내에 핵전쟁 가능성에 대해 한마디로 “없다”는 분석이다. 북한의 목적은 경제개발이며 이를 위해 장성택의 주도로 정계개편 지도를 그렸다는 것이다. 최근 북한 주요 핵심인사로 부상하는 이들은 최룡해 등 대부분이 경제통으로 알려진 인사들이다.
만약 북한이 전쟁을 계획하고 있거나 핵전쟁을 위해 핵을 개발하고 있는 것이라면 북한 정권이 일사분란하게 경제개발 계획을 추진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하지만 러시아가 한반도 상황에 대해 우려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다. 러시아는 북한을 우려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돌발행동을 걱정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7일(현지시간)부터 이틀 일정으로 독일과 네덜란드를 방문했다. 푸틴 대통령의 양국 방문은 경제 협력 및 교류 확대를 위한 각종 행사 참석이 주요 목적이지만 두 나라 정상과의 회담에서는 한반도 위기 등 국제 현안도 논의됐다.
우샤코프 보좌관은 “푸틴 대통령이 독일 및 네덜란드 정상과의 회담에서 양자 관계뿐 아니라 국제 현안인 시리아 사태, 키프로스 금융위기 등과 함께 한반도 위기에 대해서도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외교가에서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분위기다. 한반도 문제를 러시아가 유럽과 논의한다는 것은 다소 생소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속을 알고 보면 이유는 따로 있다. 러시아는 유럽을 통해 미국의 돌발행동이나 독단적 행동을 견제하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또한 미국이 북한과 양자협의로 모든 문제를 마무리 할 경우에 대비한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동북아 지역의 균형이 깨질 수 있다는 게 러시아의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의 이 같은 움직임을 두고 국제 외교 전문가들은 “미국이 북한과 물밑 접촉을 한 정황을 포착하고 자국의 행보를 재촉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푸틴의 행보에 한 달 여 앞선 지난달 클리퍼드 하트 미국 국무부 6자회담 특사와 한성렬 유엔주재 북한 차석대사가 지난달 뉴욕에서 비밀리에 만난 것으로 지난 9일(현지시간) 알려졌다.
미국 외교전문매체인 포린폴리시는 하트 특사와 한 대사가 북한이 본격적인 도발 위협을 시작하기 직전인 지난달 중순 뉴욕에서 만났다고 보도했다. 두 사람은 북한과 미국 사이 비공식 외교 경로를 의미하는 이른바 ‘뉴욕채널’의 양측 책임자다.
당시 접촉에서 미국 측은 새로운 제안을 내놓지 않았으며, 대화에 특별한 진전도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포린폴리시는 “미국 측은 북한에 대해 도발행동을 중단할 것을 거듭 촉구하는 동시에 국제의무를 준수하고 비핵화 노력을 하면 외교 테이블에 복귀할 수 있는 입장을 밝혔다”면서 “이에 북측은 이런 의사를 평양에 알리겠다는 뜻만 밝혔다”고 했다.
이와 관련, 패트릴 벤트렐 국무부 부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우리는 북한과의 소통 채널을 갖고 있지만 현재로선 특별히 밝힐 게 없다”면서 “채널은 여전히 필요에 따라 열려 있다”고만 말했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미국과 북한이 이미 비선접촉을 통해 북핵문제와 경제협력에 대한 협상을 시작한 것 아니냐”는 말이 돌고 있다. 심지어 “이미 미국과 북한이 북핵문제 협상을 마무리하고 북한의 핵보유를 공식화 하지 않는 선에서 경제지원을 하기로 밀약을 맺은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남북, 북미, 한미 물밑접촉?

최근에는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를 사실상 제의한 막후에는 남북 간에 물밑 교감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한반도 긴장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나서 북한과의 대화를 추진 중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이런 관측이 제기됐다.
남북 간에 비선접촉의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지난 정부에서 그 예를 찾아 볼 수 있다. 그동안 남북 간 중요한 합의나 정상회담 등 획기적인 일들은 공식 라인이 아닌 최고 지도자의 '밀사' 성격을 띠는 비선라인을 통해 대부분 이뤄졌다. 실제로 2번에 걸친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된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는 물론이고 남북관계가 대결 국면으로 일관했던 이명박 정부에서도 비밀 접촉은 수차례 있었다.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이 노동부 장관 시절인 지난 2009년 10월 싱가포르에서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과 비밀회동을 갖고 남북정상회담 개최문제를 논의한 것 등이 당시 극비리에 추진됐던 대북 접촉의 하나였다.
박근혜 정부 출범을 전후해서는 최대석 이화여대 교수의 인수위원직 사퇴 이유를 놓고 중국에서의 대북 비밀접촉 시도설이 유력하게 돌았다.
러시아 소식통들 사이에서는 “러시아가 북한의 핵 개발 사업 내용을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으면 일부분에 대해서는 극비리에 관여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국방부의 복수 소식통과 북한 소식통은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조심스럽게 입을 모은다.
북한 로켓 발사체를 수거해 조사한 결과 러시아 기술이 접목된 흔적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두고 일부 로켓 전문가들은 “그것만으로 알 수 없다”고 반박한다. 북한의 기초과학은 과거 구소련 기술을 그대로 담고 있으며 최근의 기술도 여기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로켓제작기술은 북한이 러시아의 기술을 모방할 수 있는 문제이므로 러시아가 로켓제작을 도왔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강조한다.
이와 관련해 나로호 괴담도 돌고 있다. 나로호 발사를 두고 북한은 연일 규탄성명을 냈으며 이에 경쟁적으로 로켓발사를 강행했다. 우리나라는 각종 결함으로 발사에 연달에 실패했지만 북한은 성공적으로 로켓을 발사했다. 우리나라가 나로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한 것은 공교롭게도 북한의 로켓발사가 있은 직후였다. 러시아가 의도적으로 나로호 발사를 지연시켰다는 괴담이 도는 이유다.
외교적으로도 러시아는 중국과 서로 견제하는 관계다. 서로 관계도 원만하지 않아 국경지대 충돌이 잦다. 김 위원장은 생전에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와 동맹의 필요성을 강조했으며 지난 마지막 러시아 방문 때도 경협과 더불어 군사적으로 중국과 미국을 견제하는 방안을 극도의 보안 속에 논의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측하고 있다.
러시아의 최근 동향을 살펴보면 러시아는 북한에 대해 남침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는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북한이 지난 9일(현지시간) 남한에 있는 외국인들에게 전쟁 발발에 대비해 미리 대피하라고 경고했음에도 주한 러시아 대사관은 아직 한국에서 자국민들을 철수시킬 계획이 없다고 밝혀 주목을 끌었다.
러시아 대사관 공보관 니키타 하린은 이날 자국 리아노보스티 통신에 “현재 대책을 논의하고 있지만 아직 대피와 관련한 어떤 징후나 결정도 없다”고 말했다.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관도 여전히 현지에서 자국민을 철수시킬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평양의 러시아 대사관 공보관 데니스 삼소노프는 이날 이타르타스 통신 평양지국에 “현 시점에서 직원들을 대피시키는 방안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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