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에 드러난 뒷돈 거래…금융권 촉각

신한생명은 시작일 뿐…금융당국 움직임 주목
보험사와 은행 간 힘겨루기… 갑을관계 청산?

신한생명(사장 권점주)이 일부 외국계은행과 지방은행에 방카슈랑스(은행의 보험 판매) 영업 대가로 금품을 지불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더욱이 관행처럼 여겨지던 보험사와 은행 간 뒷돈거래가 처음 적발된 만큼, 이번 사건이 향후 금융권에서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관심 역시 증폭되고 있다. 아울러 일각에서는 “신한생명이 첫 사례가 됐지만 앞으로 더 많은 사건이 적발 될 수 있다”며 “방카슈랑스 업계는 전폭적인 변화를 맞이할 것”이라는 전망도 흘러나오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5일 신한생명 정기 검사를 실시하던 중 신한생명이 자사 상품을 판매하는 은행 점포에 판매 촉진 명목으로 상품권 등 현금성 대가를 지불한 정황을 포착했다. 씨티은행과 같은 외국계 은행을 비롯해 대구·부산 등 지방은행 점포들은 신한생명으로부터 판매 실적에 따라 대가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방카슈랑스란 은행 창구에서 보험 상품을 판매하는 것으로 통상 은행이 소비자에게 상품을 추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보험사는 자사 상품 판매율을 높이기 위해 은행의 눈치를 살피고 대가를 지불한 것으로 풀이된다.

방카관련 수사 확대…배임수재 등 처벌

방카슈랑스에 대한 검사는 신한생명을 시작으로 관련 업계 전반에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현재 금융당국은 신한생명이 상품권 등을 건넨 것으로 알려진 은행을 대상으로 테마검사를 확대했다.

사건에 연루된 신한생명과 은행들은 금융감독원의 조사에 응하는 동시에 내부수사도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실상이 드러나면 금품을 주고받은 보험사직원과 은행원들은 배임수재 등의 처벌을 받게 되며 은행과 보험사 경영진도 관리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신한생명 관계자는 “현재 자체 조사가 이뤄지고 있으며, 금감원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며 “자체적인 감사 결과는 금감원 발표 이후에나 확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씨티은행 관계자도 사건조사 진행과 관련해 “우리 역시 금감원 조사를 받고 있으며 자체 감사도 벌이고 있다”면서 “다만 신한생명이 지급했다는 금액과 씨티은행 직원이 받았다는 금액에서 차이를 보여 조금 더 조사를 해봐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이처럼 금융권의 오랜 뒷거래 관행을 두고 당국이 강력한 제재에 나서면서 금융업계는 긴장감이 나돌고 있다.

특히 방카슈랑스 뒷돈 거래가 금융권의 오랜 관행이었다는 점에서 당국의 제재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인식이다. 또한 경제민주화가 정부의 핵심 과제로 부상하면서 금융권의 ‘모럴헤저드(도덕적 해이)’에 대한 당국의 제재 수위가 어디까지 치솟을 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한 업계관계자는 “이번 사건이 신한생명 정기조사에서 적발된 사안임을 고려할 때, 타 기업까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귀띔했다.

더불어 “방카 뒷돈은 만연해 있지만 한 번도 적발된 적 없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며 “업계에선 비상이 걸렸다고 봐도 무방하다. 특히 대형 보험사들의 이목이 가장 많이 집중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대 이슈 방카룰 싸움, 상황 급변할 듯

방카슈랑스 규제 완화를 두고 불붙었던 은행과 보험업계의 논쟁은 이번 파문으로 보험사측에 유리한 형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당초 표면적 이유로 제기됐던 “방카 채널을 통해 모든 보험 상품이 판매될 경우 보험의 은행 판매 의존도가 심화될 것”이라는 의견에 “방카 파문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자칫 은행 종속화가 심화돼 자사 상품 판매 청탁 등 잘못된 영업 관행이 깊게 뿌리내릴 수 있다”는 분위기마저 형성됐기 때문이다. 또한 ‘갑(은행)’과 ‘을(보험사)’의 관계로 대변됐던 영업 형태에도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와 관련, 한 업계 관계자는 “보험사와 은행 사이에선 은행이 언제나 ‘갑’이었다”며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은행들의 방카룰 규제 주장은 명분이 없어졌고 보험업계는 유리한 국면을 맞이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앞서 은행 측과 보험사 측은 ‘방카 25% 룰’ 폐지안과 관련, 첨예한 대립을 보여 왔다. ‘방카 25% 룰’은 개별 은행에서 판매하는 특정 보험사 상품 비중이 25%를 넘을 수 없도록 하는 규정이다.

은행 측은 “불완전 판매와 같은 부작용은 줄어들고 있고, 은행의 수익에 도움이 된다” 는 근거를 들어 해당 룰에 대한 완화 또는 폐지를 주장했다.

반면 보험사는 “‘방카 25% 룰’을 확대하거나 폐지한다면 은행들은 같은 계열 생보사의 상품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며 반대해 왔다.

공정한 상품·공정한 거래 필요성 대두

본래 방카슈랑스 판매는 금융서비스 개선 및 소비자 편익 증진 등의 취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뒷거래 영업’과 ‘방카룰 싸움’은 일부 금융업종이나 금융종사자의 이해관계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이에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이번 일을 계기로 소비자를 위한 영업과 공정한 경쟁이 필요하다는 바람이 불고 있다. 더불어 불법 거래에 대해선 보다 강력한 대응책을 강구할 것이라는 다짐을 보였다.

신한생명 관계자는 “관행이라고 해도 분명한 잘못이다. 이번 일을 기점으로 모든 업계가 공정한 판매를 시행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강력한 제재의 필요성이 느껴진다”며 “마케팅이 아닌 상품 자체로만 승부를 걸 수 있는 배경이 만들어지길 기대하고 우리 역시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씨티은행 관계자는 “현금성 대가가 오갔다는 소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며 “평상시 선물대장 관리 및 보고, 교육을 엄격히 진행했는데 빈틈이 있었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어 “다만 지점 간 거래가 아닌 개인 거래로 파악되는 만큼 더욱 세밀한 예방책을 강구하겠다”며 “더 깨끗한 모습으로 고객에게 다가갈 것”이라고 밝혔다.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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