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주식시장 뒷골목과의 전쟁 선포

[일요서울|최은서 기자] 박근혜 정부가 ‘경제민주화’ 첫 단추를 뀄다. 정부는 지하경제를 양성화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검은 돈이 흘러 다니는 주식시장 뒷골목을 메워버리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박근혜 정부의 주가조작 근절 종합대책의 핵심은 ‘빠른 조사’와 ‘엄격한 처벌’이다. 중대한 사건일 경우 패스트 트랙을 실시해 금융위나 금감원을 거치지 않고 검찰이 직접 수사하고, 부당이득의 최대 3배까지 환수하는 등 금전제재도 대폭 강화했다. 이를 위해 금융위원회 안에 전담부서가 신설되고 검찰에도 관계기간이 참여하는 ‘증권범죄 합동수사단’이 설치된다. 이를 두고 사정기관과 관가 주변에서는 “과거 저축은행비리 합수단 때처럼 굵직굵직한 사안이 드러날 것”이라며 “금융권, 기업을 대상으로 한 내부자 거래 조사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에 그 대상이 될 기업이 어디인가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박근혜 대통령 <정대웅 기자>
최근 주식시장의 최대 화두는 ‘주가 조작’이었다. 자원개발테마주와 정치테마주 광풍이 연이어 몰려오더니 셀트리온 공매도 논란까지 이어졌다. ‘주가조작’이 최대 화두로 떠오르면서 주가조작범에 대한 금융당국의 처벌 수위가 솜방망이 수준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CNK의 경우 카메룬에서 다이아몬드 광산을 개발한다는 내용으로 3000원 대에서 1만8000원 대로 치솟았다. 이 사건은 현지 광산의 매장량을 부풀리고 외교부 명의의 허위 보도 자료를 배포해 주가를 띄워 ‘권력형 비리의 종합판’으로 불렸다. 당시 금융당국이 수사에 나섰지만 절차를 거쳐 검찰에 고발하기까지 1년 이상이 걸렸다. 그러는 사이 증거 자료가 증발했고 이 회사 대표도 해외로 종적을 감췄다.

지난해의 경우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치 테마주 열풍이 불었다. 국내 주식시장은 정치 테마주 35개 종목으로 인해 지난해 5월까지 1년 동안 개인투자자 손실이 195만 계좌에서 1조5500억 원이 발생했다는 금융감독원 조사가 있을 정도였다. 작전전세력은 증권 사이트는 물론 스마트폰, SNS 등으로 번지면서 상장사 10개 가운데 1개에서 주가조작이 일어날 정도로 피해는 심각했다.

코스닥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셀트론은 ‘공매도 논란’에 불을 지폈다. 지난 16일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2년여 간 악의적인 공매도 세력과 싸웠지만 이제 더 이상 싸울 능력이 없다”며 지분 매각과 경영권 포기를 선언했다. 그는 자신의 관계사 지분 전부를 다국적 제약사에 매각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한 것이다. 시가총액 4조 원에 육박하는 기업경영권을 ‘작전세력’을 이유로 들어 내려놓겠다는 발표에 증권가에는 파문이 상당했다.

주가조작으로 얼룩진 2012년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3월 취임 후 첫 국무회의에서 주가조작 근절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개인투자자를 절망으로 몰아넣고 막대한 부당 이익을 챙기는 각종 주가조작에 대해 자금출처, 투자 경위 등을 철저히 밝혀 투명하게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이를 두고 박 대통령이 주가조작에 대한 상당한 보고를 받아왔으며 오랜 기간 동안 별러온 사안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박 대통령의 주문은 그동안 박 대통령이 강조해온 사회 정의나 지하경제 양성화와도 일맥상통했다. 일각에선 정부의 불공정거래 강화 방침과 관련 주식시장 위축 등을 우려하는 시각도 감지되기도 했다.

한국거래소는 2012년 이상거래에 대한 심리 결과 및 주요 불공정거래 혐의 특징을 분석했다. 불공정거래 혐의로 금융위에 통보한 종목은 총 282종목으로 2011년 대비 33종목(13%) 증가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혐의 적발의 증가는 시장 파급력이 큰 테마주 등에 대한 집중 심리를 통한 적발 강화였다. 정치테마주가 총 58종목 적발된 것.

특히 유가증권시장 57종목, 코스당 시장에서 143종목으로 현물시장에서 200종목이 적발됐다. 현재 국내 증시에 상장된 종목이 1921개인 점을 고려하면 상장사 10곳 가운데 1곳에서 불공정거래가 발생한 셈이다. 특히 기업규모가 작고 거래량이 적어 상대적으로 주가를 조작하기 쉬운 코스닥시장에 불공정거래의 72%가 쏠렸다.

혐의 유형별로는 작전세력에 의한 시세조종이 42%로 가장 많았다. 미공개정보 이용 35%, 부정거래가 13%로 뒤를 이었다. 지난해에는 총선과 대선의 영향으로 테마주 등 다수 종목을 대상으로 하는 단기시세조종 행위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불공정거래 혐의가 적발된 상장사 200곳 가운데 58곳(29%)이 테마주로 엮여 있었다.

지난해 불공정 거래의 혐의는 다수종목을 대상으로 한 단기 시세조종, 파생상품을 대상으로 한 초단기 시세조종, 회사내부자에 의한 시세조종, 증권방송·SNS 등 신종 미디어를 통한 투자자 유인, 경영진 또는 대주주의 허위정보·공시 유포, 부실금융기관의 BIS비율 제고를 위한 윈도우드레싱, 저유동성 파생상품을 이용한 손익이전 등이 있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최근 들어 다수 종목을 대상으로 단기간에 이뤄지는 불공정거래, SNS를 이용한 허위사실 유포, 허위공시 및 보도 등을 통한 불공정거래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 증시가 이처럼 주가조작에 취약한 것은 처벌 강도가 강하지 않다는 지적이 높다. 추징금 규모가 크지 않은 것. 또 적발에서부터 처벌까지 걸리는 기간이 길어 CNK사건처럼 혐의자가 증거를 없애거나 파산해 피해보상을 받을 수 없는 사례가 빈번했다. 현행 처벌 시스템으로는 주가조작을 밝혀내기까지 한국거래소 심리(1∼2개월), 금융감독원 조사(6개월∼1년), 증권선물위원회 심의(1개월) 등 보통 1년 이상이 걸린다.

힘 키우는 금융당국

이번 주가조작 근절방안에는 그동안 현장 실무자들이 요구하던 수준의 내용이 충실하게 담겼다는 평가다.

이번 조치에서 가장 중점이 되는 내용은 금융당국 실무자에게 특별사법경찰 권한을 주는 것이다. 그동안 금융당국의 조사 직원은 통신사실조회나 피의자에 대한 출국금지 등의 조치를 내리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번 조치로 실무자가 직접 검찰 지휘아래 자본시장 불공정 거래에 대한 조사를 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실무자들은 “거래소에서 사건 적출 후 금융감독원이 조사하는 약 1년 내외의 시간이 실체 규명을 위한 ‘골든 타임’인데 임의조사 한계로 인해 증거 확보가 곤란했다. 통화내역은 보통 1년간 보관되는데 강제 조사가 가능한 검찰 이첩때까지 보통 1년이상 소요돼 통화내역이 상실된다”며 “증거확보가 어려워 검찰 수사 후 기소되더라도 상당수가 집행유예 이하의 판결이 선고됐다”고 지적했다.

추가로 주가조작이 의심되는 현장에 압수수색을 할 수 있는 권한이 대폭 넓어지는 것도 이같은 현장 목소리가 반영된 조치다. 이번 조치는 압수수색 등 강제조사가 가능한 조사공무원을 지명해 금융위 조사 기능을 강화했다. 금융위에 사건 분류 및 중요 사건 조사를 담당할 조사전담 부서를 신설했다. 금융위 조사공무원을 배치하고 검찰수사관, 금감원 직원 등을 파견받아 패스트 트랙 대상사건 분류 및 조사 업무를 담당하게 했다.

포상금도 대폭 강화됐다. 그동안 주가조작 범죄를 신고해 받은 수 있는 포상금은 최대 3억원에 불과했다. 지난해 들어온 전체 신고건수가 60건을 넘지 못하고 지급된 포상금의 규모도 전체 1억 원이 채 못됐다는 점은 실효성이 거의 없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포상금 상한선이 20억 원으로 파격적으로 됐다는 점은 당국의 확고한 의지를 방증하고 있다.

동시다발 조사·수사 ‘파장’

합동대책이 발표 된 뒤 금융당국이 잰 걸음을 하고 있다. 긴급 사건을 추려내 검찰에 고발하기로 한 것. 현재 금융위원회는 한국거래소와 금융감독원에서 조사하고 있거나 보류했던 200여 건의 주가조작 사건에 대해 전면조사에 착수했다.

금융위는 기존에 적체된 200여 건의 주가조작 사건 재분류 작업에 들어갔으며 즉각적 강제 수사가 필요한 긴급 사건을 우선적으로 검찰에 고발한다는 방침이다. 200여 건을 조기에 털고 간다는 계획으로 사실상 주가조작과의 대규모 전쟁을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증거인멸의 우려가 크거나 주가조작으로 의심된 행위가 여러 차례 반복된 경우 등의 중대사건도 고발 대상이다. 시범사례 격으로 동시다발로 조사와 수사가 이뤄져 파장이 클 전망이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그동안 불거진 주가조작 의혹에 대해 본격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이다. 금융위가 검찰 수사를 거쳤으나 수사가 미흡한 사건을 다시 들춰볼지는 의문이다”라며 “특히 증권범죄 합동수사단의 역할이 주목된다. 저축은행 비리 합수단처럼 주가조작을 타깃으로 합수단을 꾸린 만큼 굵직굵직한 건들이 터져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번 합동수사단은 고검검사급 검사를 단장으로 검사를 포함한 검찰수사관, 금융위 금감원 거래소 등 유관기관 파견 직원으로 구성된다. 합동수사단은 1년간 한시적으로 운영한 후 성과를 보아가며 필요시 연장 운영될 예정이다.

이 관계자는 또 “한 기업, 그룹을 타깃으로 잡기 보다는 2,3세나 내부정보를 이용한 주가조작혐의에 주력할 것 같다. 특히 부띠끄 조직이 개입한 의혹이 있는 주가조작 사건에 주 타깃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라고 전했다.

·, 지하경제 양성화냐 활성화냐 논란 

지하경제 양성화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표적인 공약이다. 지하경제는 보고되지 않은 숨은 경제로 정부통계에 잡히지 않는 경제활동을 말한다. 조세연구원에 따르면 지하경제 규모는 2010년 기준 GDP 대비 17.1%.
 
이와 관련해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지난 18지하경제 양성화는 창조경제의 일부라며 실물경제의 지원과 금융산업의 발전을 도모하는 창조금융 차원에서 해석과 적용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지하경제 규모는 GDP17~23%의 수준으로 추산돼 OECD 평균인 13%를 상회한다지하경제 양성화는 잠재적인 세원을 적극 발굴하는 것만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우리사회의 통합에 기여하는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밝혔다. 특히 무엇보다 사회적 해악과 조치의 시급성이 큰 고의적 불법 행위 또는 악질적 범죄행위에 대해선 이를 정조준해 최우선적으로 척결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 위원장은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한 정책 방향으로는 외부감사의 범위 확대 비영리법인 등의 회계처리 강화 국세청·경찰청과의 공조를 통핸 불법 금융행위 단속 강화 자금세탁 취약분야 선제적 점검 및 발굴 등을 꼽았다.
 
그는 이어 지하경제 양성화가 중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와 사회의 선순환 구조에 기여할 수 있도록 자발적으로 양성화를 유도하는 인센티브를 마련하는 방안도 병행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지하경제를 양성화하는 것은 적지 않은 정책 자원이 소요되는 일인 만큼 비용효과 측면에서도 적절한 유인 구조를 병행해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지하경제 양성화는 정부부처 뿐만 아니라 민관이 함께 협력해야 하는 사안이라며 주요 직능단체가 자발적인 자율규제와 결의 등을 통해 동참해 줄 것을 요청했다.
 
반면 새누리당이 지하경제 양성화에 부정적인 입장을 표시해 박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인지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15일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국회 경제민주화 법안 추진에 부정적 입장을 밝히자 박 대통령도 경제민주화 논란과 관련, “(대기업의) 기술 탈취나 부당 단가 인하는 옳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기업이라고 벌주는 식의 때리기나 옥죄기로 가서는 안 된다고 말해 경제민주화 법안 추진에 제동을 걸기도 했다.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이 원내대표는 지하경제 양성화를 정부가 잘해야지 자칫 잘못하면 지하경제 활성화가 될 수도 있다며 기존에 생성된 지하경제에서는 세금을 거두지 말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이 원내대표는 지하경제는 이미 이루어진 것에 대한 제재를 위해 필요하기 보다는 지하경제가 될 수 있으면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더 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하고 자연스럽게 지상에 올라와서 정상적인 경제 활동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좋은 정책 방향이라고 말했다. 정우택 최고위원도 지난 15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무리하게 세무조사를 진행하는 것은 기업을 위축시키고 실물경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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