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로동당 제1비서의 군사도발 협박에 흔들리게 되면 내치(內治)에서도 흔들릴 수 밖에 없다. 야당을 포함한 국내 반대세력이 박 대통령의 꺾인 모습을 보고 대통령을 얕잡아보며 겁 없이 흔들어댈 수 있다. 정적들의 무분별한 도전을 받는 곤경에 빠진다.
비슷한 사례는 멀리 있지 않다. 5년 전의 일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8년 봄 광우병 파동 때 폭력·불법시위에 휘둘렸던 불행한 사태가 그것이었다.
이 전 대통령은 당시 청와대 진입을 기도하던 불법·폭력시위대의 위협에 눌려 굴복했다. 그는 6월 10일 담화를 통해 “캄캄한 산 중턱(청와대 뒷산)에 홀로 앉아 국민을 편안히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을 자책했다. 사과드린다”며 불법·폭력시위대에게 엄격한 법적 제재 대신 고개 숙였다.
이 대통령은 취임 3개월 반 만에 불법·폭력시위에 굴복함으로써 야당과 재야단체들에 의해 깔보여 임기 끝까지 곤욕을 치렀다. 보수 세력에 의해서는 “기회주의자”로 폄훼되었다. 대통령으로서 신뢰와 권위를 적지 않게 상실, 국정을 소신껏 그리고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동력이 떨어졌다.
이 대통령이 취임할 때만 해도 많은 국민들은 그가 “불도저”란 별명과 같이 소신을 굽히지 않고 돌파력을 발휘해주리라 기대했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자 야당과 재야 반정부 세력은 그의 “불도저” 배짱을 의식, 함부로 나서지 못하며 관망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 대통령이 불법·폭력시위에 밀리는 나약한 모습을 드러내게 되자 정적들은 그를 가볍게 보기 시작, 임기 동안 계속 흔들어 댔다. 북한도 그 나약한 뒷모습을 보고는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도발을 거침없이 자행하였다.
박근혜 대통령도 한나라당 시절 “소신과 원칙”의 정치인으로 평가되었다. 본인 스스로도 “영국의 병”을 두툼한 배짱과 신념으로 치유한 故 마가렛 대처 총리를 롤 모델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소신과 원칙”도 취임 2개월 만에 김정은의 협박으로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그동안 청와대 관계자는 “개성공단이 폐쇄되는 상황이 오더라도 우리가 먼저 개성공단을 유지해달라고 북한에 요구할 상황이 아니다”라며 “북한과의 기 싸움에서 밀리면 안 된다”고 맞섰다.
박 대통령도 대북 인도적 지원을 밝힌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진전시키기 힘든 상황이라며 김정은의 협박에 굴복하지 않을 뜻을 표명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지난 4월 11일 갑자기 “북한과 대화의 문은 항상 열려있고 인도적 지원은 계속하겠다”고 공언, 대화와 인도적 지원을 표명하였다. 북한의 전쟁협박에 2개월도 버티지 못하고 “기 싸움”에서 밀렸다. 대처 총리는 전투적 노조와의 기 싸움에서 12개월 동안이나 맞선 끝에 이겼다. 박 대통령의 4.11 대북 대화 및 지원제의는 5년 전 이명박 전 대통령의 6.10 담화를 상기케 한다.
박 대통령도 김정은 협박에 두 달도 버티지 못하고 굴복한다면, 이 대통령처럼 국내 정적들에게 얕잡혀 임기 내내 반대세력의 협박과 발목잡기로 시달리지 않을까 걱정된다. 기회주의자로 폄훼될 수도 있다. 김정은에게도 깔보여 보다 더 사나운 군사도발과 협박을 자행케 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김정은의 협박과 기 싸움에서 밀려서는 아니 된다. 한나라당 시절 보여준 흔들리지 않는 소신과 원칙을 지켜 국민들로부터 권위와 신뢰를 유지해야 한다. 3대로 이어진 북한 ‘김씨 왕조’의 고약한 버릇을 바로잡아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 시키기 위해서이다.
- 기자명 정용석 교수
- 입력 2013.04.22 14:09
- 호수 990
- 지면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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