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거래소(ATS) 도입 급물살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한국거래소(KRX, 이사장 김봉수)의 독점적 지위가 무너지면서 공공기관 지정 해제가 가능해질 전망이다. 표류하던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대체거래소 도입이 급물살을 타기 때문이다.

이를 오랫동안 염원하던 금융투자업계는 물론 거래소 역시 공공기관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반기는 분위기다. 하지만 거래소가 과연 독보적인 자리에서 내려온 후에도 자생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민간임에도 공공기관 지정 후 감사원 감사 받아
글로벌 구호 뒤에 숨은 급여ㆍ복지에 대한 기대

금융투자업계의 눈이 자본시장법 안착에 쏠렸다. 그동안 계류 중이던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지난 10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일부 통과됐다. 2011년 11월부터 논의된 지 1년6개월 만이다.

이제 국회 본회의 통과만을 남겨둔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대형 투자은행(IB) 육성과 대체거래소로 불리는 다자간매매체결회사(ATS) 도입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중 한국거래소와 관련이 있는 것은 대체거래소로 정규 거래소의 주식 매매체결 기능을 대체하는 증권거래시스템이다. 이번 개정안의 통과로 대체거래소 설립이 가능해지면 법령상 거래소의 독점 문제가 해소돼 공공기관 지정에서 풀려난다.

 
힘없는 거래소?…산은과 대비

본래 거래소는 1956년 민간 금융투자회사들이 공동으로 출자해 설립했으나 이후 증권거래법의 개정으로 정부 기관과 민간 기관의 범주를 오갔다. 현재는 정부 지분이 전혀 없음에도 시장을 감시하는 공적기능과 독점적인 주식 매매체결 기능을 들어 공공기관으로 지정돼 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2009년 1월 거래소의 기능과 수익은 물론 방만한 경영을 지적하면서 공공기관으로 재지정했다. 후일담에서는 MB 정부가 다른 공기업이나 금융권에 새 인사를 심은 것처럼 거래소 이사장을 특정 인사로 교체하려고 한 것이 발단이었다고 알려졌다. 정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재임 중이던 이사장이 자진 사퇴를 거부하자 홧김에 공공기관으로 지정했다는 것이다.

공공기관 지정 후 거래소는 민간이지만 감사원의 정기 감사를 받는 몸이 됐다. 이는 강만수 전 산은금융지주 회장이 정부의 뜻에 따라 산은에 부임한 지 10개월 만인 지난해 1월 공공기관 지정이 해제된 경우와 크게 대비된다. 공식적으로 산은이 공공기관에서 벗어난 이유는 민영화였지만 거래소 노조는 공공기관 지정이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정부 지분이 있는 산은도 공공기관이 아닌 마당에 민간인 거래소가 여전히 공공기관인 것은 결국 수장이 가진 ‘힘의 차이’라는 불만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거래소 안팎에서는 다시 공공기관 지정에서 해제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상승한 눈치다. 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인 지난해 12월 대선 직전 거래소를 방문해 “한국거래소가 글로벌 거래소로 발전하기 위해 공공기관 해제가 필요하다면 적극 검토하겠다”고 힘을 실어줬기 때문이다. 금융위 역시 “거래소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자는 취지에서 공공기관 해제에 대해 긍정적 입장을 전달했다”며 거들었다.

그럼에도 기획재정부는 지난 1월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고 ‘2013년도 공공기관 지정안’을 심의ㆍ의결하며 거래소를 여전히 공공기관으로 잔류시켰다. 다만 대체거래소 설립에 따라 독점적인 사업구조가 해소되면 해제를 검토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아줬다. 이로 인해 거래소는 공공기관에서 벗어날 기대로 부풀어 있었고 계류됐던 자본시장법 개정안 통과에 촉각을 기울였던 것이다.


본질 제치고 고삐 풀린 경영 재현될까

거래소가 공공기관 지정에서 해제되기 위해 애쓰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대외적으로는 자율적인 경영전략으로 글로벌 부문을 신장시키겠다는 것을 꼽는다. 특히 해외 거래소들이 기업공개(IPO) 후 인수ㆍ합병(M&A) 등으로 경쟁력을 키우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뒤처진다는 성토도 대단하다.

실제로 해외 거래소들 중에는 IPO를 통해 회원제 거래소에서 주식회사로 탈바꿈한 후 타 거래소와의 M&A로 몸집을 불리는 사례가 종종 있다. 글로벌 경쟁력이 결국 덩치 싸움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거래소 측은 “우리나라 거래소만 계속 공공기관으로 묶여있으면 로컬 거래소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며 “공공기관이라는 통제에서 벗어나 글로벌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일단 공공기관 지정 해제 후 급여와 복지 문제에 가장 관심이 간다고 실토한다. 공공기관에서 벗어나면 예산집행의 자율권이 보장되기 때문에 신규 채용은 물론 기존 임직원 인사 및 조직운영 등에서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앞서 거래소가 공공기관에서 해제돼 있던 2006년 10월부터 2009년 1월까지 이사장의 공식 급여만 봐도 답이 나온다. 1년 전인 2005년 3억 원 중반이었던 이사장 연봉은 2006년 공공기관에서 해제되자마자 6억 원 중반으로 두 배 가까이 올랐다. 급기야 2007년과 2008년 7~8억 원을 넘나들던 이사장 연봉은 2009년 공공기관으로 재지정되면서 6억 원으로 내려앉았고 2010년과 2011년에는 2~3억 원으로 주저앉았다. 거래소가 공공기관에서 다시 해제되면 이러한 수순을 재차 밟을 것이 불 보듯 훤한 상황이다.

게다가 거래소의 기초적인 경쟁력 자체가 약화되는 상황에서 섣부른 국제화에만 치중한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글로벌을 외치며 국내 증시에 17개 외국기업을 상장시켰지만 비용 대비 효과는 미미하다. 이에 반해 거래소의 본질적인 기능인 기업 자금조달은 점점 줄어들어 지난해는 전년대비 80%나 급감하는 등 빨간불이 켜졌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8월에는 시장을 관리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지닌 거래소가 도리어 기업 공시정보를 사전 유출해 도덕적 해이(모럴헤저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앞서 거래소는 2010년에도 일부 직원들이 차명계좌를 통해 주식을 불법으로 매입한 것이 드러나 감사원의 지적을 받았다. 또한 2011년에는 전직 상장폐지실질심사위원이 상장폐지 면제를 미끼로 금품을 수수해 검찰에 기소된 바 있다. 이는 모두 공공기관으로 지정돼 있을 때 적발된 사건들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현재의 거래소가 ATS 도입 등으로 독점적인 위치에서 내려온 후에도 경쟁력을 갖추고 도약할 수 있는지가 문제”라며 “장기적으로 봤을 때 공공기관 지정이 해제돼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지만 고삐 풀린 경영이 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한 후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nykim@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