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일본 총리가 주권회복 운운하는 행사에서 드디어 두 팔을 높이 쳐들고 “덴노 헤이카 반자이(천황폐하 만세)!”를 외쳤다. 논리의 단절이며 극치적 도덕 불감증을 나타낸 것이다. 긴 경제 불황과 10개월에 한 번꼴로 총리를 갈아치우는 일본의 오랜 정치 실패가 아베 총리를 멘붕에 빠지도록 한건 아닌지 모르겠다.
일본이 외형상은 입헌군주제 헌법인 것처럼 꾸미고 있으나, 그들은 덴노(천황)를 정점에 놓고 있는 신국이며 샤머니즘의 국가이다. 샤머니즘에는 원래 선악 구분이 없다. ‘길흉화복’만 존재할 뿐이다. 지금 세계인들이 아베 총리의 침략 부인 발언을 들으면서 느끼는 당혹감의 본질이 이에 있는 것이다. 선악 개념은 법치의 개방된 질서 속에서 비로소 자랄 수 있는 것 일진데, 독일인들이 히틀러의 반 유대 민족주의에서 빠져나온 것과 달리 일본은 도리어 과거 부정의 몽롱한 세계로 회귀하는 중이다.
아베 총리는 천황폐하 만세를 부른 그날 기념사에서 7년 동안 전범국가로서 연합국의 점령통치를 받은 점령기를 일본역사에서 처음, 그리고 가장 깊은 단절이고 시련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오늘 이 기념일이 미래를 향해 희망과 결의를 다지는 날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총리되기 전 이 ‘주권회복 기념식’에 보낸 메시지에서 “점령군이 만든 헌법이나 교육기본법, 그 바탕에서 배양된 정신을 바로잡아 진정한 독립을 되찾아야 한다”고 했다. ‘주권회복’ 운운하는 천인공노할 역사왜곡이 공식화 되는 자리였다. 2차 대전 후 일본과 함께 전범국가로서 연합국 통치를 받았던 독일은 패전일이면 자기들의 역사적 과오를 반성하면서 국민에게 침략의 교훈을 일깨운다.
이처럼 이웃 나라를 침략한 행위를 부끄러워하고 있는 독일을 일본이 비웃고 있는 판이다. 아베 정권은 남의 나라를 침범하지 못하도록 연합군사령부가 틀을 만들었던 군대 보유를 금지한 평화헌법 조항을 굴욕이라고 주장하고 재무장을 독려했다. 아베는 과거 일본의 침략 역사를 사과한 무라야마, 고노 담화를 고쳐 침략의 과거사를 정당화 할 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덴노 헤이카 반자이’를 패전 이후 일본 방위사관학교에서 마저 부르지 않는 것은 이 만세 구호가 군국주의 일본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이 막부통치를 끝내고 제국주의 침략기와 군국주의를 거치는 동안 ‘덴노 헤이카 반자이’는 저들 정신으로 고착됐다. 극우의 팽창과 살육의 광기 서린 구호라는 관점에서 ‘천황폐하 만세’는 나치 독일의 ‘하일 히틀러’와 놀랍도록 똑같다.
일본 국왕을 주변국들이 천황으로 부르지 않는 이유가 ‘천황’이라는 단어가 침략과 수탈의 동의어로 들리는 때문임을 A급전범의 외손자인 아베 총리가 누구보다 잘 알 일이다. 그런데 그가 이끄는 일본 정부가 패전 이후 처음으로 공식적인 자리에서 ‘덴노 헤이카 반자이’를 외쳐댔다. 침략과 수탈이, 그리고 살육이 그토록 그리운지 모르겠다.
침략 근성을 북돋기 위해 짜낸 광기 서린 그 ‘반자이’ 구호와 함께 태평양전쟁에서만 2000만 명이 넘는 민간인과 군인들이 부상당하고 죽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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