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상태 숨긴 채 돈 빌려…피해자 속출

뻔뻔한 회장님들…배상은 나 몰라라
부당 지원 또는 비자금 조성 의혹도

사기성 기업어음(CP) 발행으로 인한 고소·고발 사건이 재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특히 지난 8일에는 구본상 LIG그룹 부회장을 향한 피해배상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고 같은 날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이 증권선물위원회로부터 검찰에 고발됐다. 그러나 두 회사는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공식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어 비난의 목소리가 증폭됐다. 이에 일각에서는 “피해자들의 자금이 계열사 부당 지원이나 비자금 조성에 쓰인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재벌이라고 불리는 대기업 총수들이 부린 꼼수는 말 그대로 사기행각이었다. 때문에 일반 투자자들을 외면한 채 오로지 자신들만의 이익을 고려한 처사였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증권선물위원회는 지난 8일 윤석금 웅진그룹 최대주주 겸 회장을 검찰에 고발하며 “지주회사인 웅진그룹이 ‘신용평가등급 하향조정과 채무상환능력 상실 가능성’을 은폐하는 위계를 사용해 CP를 발행했다. 이후 회생절차 개시신청을 결정했음에도 해당 사실을 은폐한 것은 부정거래행위 금지법 위반”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이 과정에서 웅진그룹 오너일가가 ‘지주회사 회생절차 개시신청’ 정보 등을 이용해 공시 전에 관련 주식을 매도함으로써 손실을 회피한 사건이 적발돼 “전형적인 오너가 배불리기”라는 지적을 받았다.

또 앞서 구본상 LIG 부회장이 비슷한 이유로 구속조치 된 바 있다. 구 부회장은 지난해 11월 사기성 CP를 발행한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검찰은 대규모 CP 부도사태를 LIG그룹 오너 일가의 ‘사기극’으로 규정, “구 부회장 등은 LIG그룹이 2010년 10월 이후 LIG건설의 재무상태가 나빠져 상환능력이 없는데도 작년 3월 법정관리 신청 전까지 총 1894억 원 상당의 CP를 발행한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

검찰이 최종 확인한 사기성 CP규모는 2200억 원대로 모두 법정관리 신청 직전 6개월 동안 발행돼 모두 휴지조각으로 날아갔다. 더불어 구 회장 일가는 1500억 원에 이르는 분식회계까지 저지른 것이 드러났다.

또한 검찰의 수사 결과, LIG 그룹의 CP발행과 법정관리 신청은 계열사 지분을 지키기 위한 오너일가의 각본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었다.

긁어모은 자금은 모두 어디로… 피해자만 애간장

그리고 결국 이들의 CP발행 피해 부담은 일반 투자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 비록 윤 회장이 검찰에 고발을 당하긴 했지만 아직 어떠한 법적 결정도 내려지지 않은 상태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날 윤 회장 명의였던 시가 100억 원의 상당 한남동 자택이 이명희 신세계 회장 명의로 넘어 갔다는 보도가 흘러 나와 “집까지 팔아넘기는 상황에 피해자들 배상은 물 건너갔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하지만 웅진의 경우보다 더 심각한 건 LIG그룹 측 피해자들이었다. 현재 구속조치 된 구 부회장의 재판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투기자본감시센터에 따르면 구 부회장의 변호인단은 ‘변호인 선임을 최근에 마무리해 사건기록 검토가 안됐다’는 등 명확하지 못한 사유로 재판을 지연시켰다.

또한 필요 이상의 과도한 증인신청으로 재판일정도 지연돼 다음 달 27일까지 증거조사 절차를 진행하기로 한 상태다. 이들은 또 LIG그룹이 2억 원 이하 피해자들에게 피해금액의 30-60% 정도만을 지급하면서 형사처벌불원서를 받아왔다고 주장했다.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LIG그룹에 대한 분노를 가슴에 품고도 생활고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형사처벌불원서를 내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구 부회장이 자신이 낸 처벌불원서 때문에 처벌도 제대로 받지 않은 채 풀려나지는 않을까 가슴을 졸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이대순 투기자본감시센터 공동대표는 “피해자들은 평균적으로 40% 정도의 금액만 받고 처벌불원서를 작성한 것이다. 여전히 이에 불안해하는 피해자들이 많다”며 “당장 생활고에 시달리는 피해자들에게 돈을 받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기에 검찰의 수사가 제대로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가 된 사기성 CP발행에 대해선 “형식적으로는 기업을 살리기 위한 방법들이라고 하지만 결국은 오너일가들의 배불리기 방법”이라며 “부도가 날 것이 뻔한 상황에서 거액의 자금을 자신의 보험용으로 빼돌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반 투자자들의 돈이 오너일가 주머니로 곧장 들어가는 꼴”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기업 자금을 빼돌려 계열사를 부당지원 한다거나 비자금을 조성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한국 기업의 경우 CP발행이 그 일부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구 부회장 보석신청 증거인멸 우려

한편 법원에 따르면 구 부회장 측 변호인은 지난달 30일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부장 김용관)에 보석 허가 청구서를 냈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말 구속돼 12일 구속이 만기됨에 따라 방어권 차원에서 보석을 신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표는 이에 대해서도 “구 부회장이 석방된다면 그는 LIG그룹 총수 후계자라는 지위를 이용해서 온갖 방법으로 증거인멸과 증인을 매수할 것이 분명하다”며 “그렇다면, 법정에서 구본상의 범죄 규명은 거의 불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반면 LIG 측은 “증거인멸의 우려나 도주의 우려가 없다”며 “6개월의 구속만료기간이 다가오는 만큼 불구속 상태에서 소명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 보석을 신청한 것”이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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