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TV 사극 보기가 황당하고 겁이 난다. 겁이 나는 이유는 혹시 젊은 청소년들이 가뜩이나 싫어하는 역사공부를 TV 연속극을 통해 마구 엉터리로 머릿속에 넣을까 봐서다. 지금 방영중인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는 퓨전 사극이 아닌 판타지 사극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지경이다.

패션디자이너 장옥정이라는 역사 왜곡의 설정을 드라마적 재미로 받아들이고, 아무리 상상력 집결의 허실적 판타지로 간주해도 암묵적으로 승인된 나름의 고증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하물며 실존 인물을 배경으로 한 사극을 구성하면서 고증을 개의치 않는 것은 역사 배신이다. 고증을 무시한 내 멋대로 사극을 만들려면 실존인물 장희빈을 주제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퓨전’은 라틴어의 ‘fuse(섞다)’에서 유래한 말이다. 어원적으로 보면 ‘뒤섞임, 조합, 조화’를 뜻한다. 따라서 퓨전 문화는 고정 관념적 틀을 과감히 제거해서 새로운 어울림의 문화를 나타내자는 것이다. 그처럼 문화 장르를 배격하거나 완전히 해체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각각의 문화가 조화를 이루면서 발전해 나가는 미래지향적인 문화현상, 즉 다양성이 존중되는 문화를 말함이다.

얼마 전 완전 판타지 사극으로 시청률을 높였던 ‘해를 품은 달’의 조선시대 고증이 오히려 퓨전극에 가까웠을 정도다. 이 장옥정 드라마의 호칭 문제가 또한 당황되고 억지스럽기 한량없다. 장옥정의 왕(숙종)은 자신을 지칭하는 용어로 ‘과인’ 아닌 ‘짐’이라는 호칭을 쓰고 있다. 조선은 황제국이 아니고 제후국이었던 만큼 황제가 스스로를 칭하는 ‘짐’이란 말을 절대로 쓸 수 없었다.

이 모든 문제들이 ‘판타지’이고 ‘퓨전’ 사극이라서 가능하다면 무책임의 절정판이다. 죽고 난 뒤의 인경왕후, 인현왕후 시호를 살아있는 사람 이름으로 ‘인경이’ ‘인현이’로 불러 시청자들을 무안케 하는 무례까지 범하고 있다. 역사를 새로운 관점으로 상상력을 발휘해 사극을 가깝게 느끼도록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긍정적일 것이다. 특히 젊은층에게 역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이 강하나, 바로 이 때문에 또 문제 제기가 되는 것이다.

충실한 고증과 책임감 없이 허무맹랑한 설정은 젊은층의 역사 인식에 큰 오류를 줄 수 있다. 실존 인물을 다루면서 허구로 보라는 말은 오류에 관해서 무책임하기 이를 데 없다. 재미와 고증 사이의 균형을 잡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는 것이 역사물 제작진의 준엄한 의무이다. 방송매체의 막강한 영향력을 즐기려고만 해서는 안 된다.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시대적 가치마저 무시하며 작품을 만드는 것은 역사의 오염 행위라는 강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장옥정을 처음 대중 앞에 선보일 때 제작팀이 한 말은 기존의 장희빈에는 진정성이 부족했다며 새 작품에서는 무엇보다 진정성 있는 장희빈을 만들어 보이겠다는 것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이제 와서 역사왜곡 비판에 놓여 퓨전 사극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버리는 비겁함이 형편없이 초라해 보인다.

TV 사극은 역사적 증거를 요구하지는 않지만 시청자들에게 역사를 감지케 하는 정서적 장치가 소홀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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