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顯忠日)은 조국 수호를 위해 목숨 바친 순국선열들을 추모하기 위해 1956년 4월 19일 제정됐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은 현충일을 그냥 하루 노는 날로 치부하고 만다. 어른들은 신록이 우거진 산과 들로 나가 술판을 벌이는가 하면, 어린이들은 뜻도 모르고 학교를 하루 쉬는 날로 반긴다.

살아있는 우리들을 위해 전쟁터에 나가 혹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생명을 바친 영령들을 기리기 위한 경건한 날이란 점을 까맣게 잊고 지낸다.
현충일이 술판과 노는 날로 왜곡된 데는 여러 가지 연유들이 있다. 현충일의 잘못된 명칭도 여러 탓들 중 하나로 꼽힌다.

‘현충일’이란 말은 너무 추상적이어서 무슨 뜻인지 선뜻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 현충(顯忠)은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발현케 한다는 것으로서 막연히 애국심을 강요한다는 감을 금치 못하게 한다. 충남 아산의 이순신 장군 ‘현충사‘를 기리기 위한 날 인지 헷갈리게도 한다.

그러나 현충일은 조국수호를 위해 적과 싸우다 생명을 바친 전몰장병과 애국투사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데 있다. 그래서 현충일은 순국선열의 희생을 엄숙히 추모하는 ‘추모일(追慕日)’로 개명되어야 한다.

미국에서는 현충일을 Memorial Day (메모리얼 데이: 추모일)라고 한다. 남북전쟁이 끝난지 3년 만인 1868년 5월 5일 제정되었다. 5월 30일을 ‘추모일’ 공휴일로 했다. 처음에는 Decoration Day (데코레이션 데이: 훈장의 날)로 명명됐었으나 후에 메모리얼 데이로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1971년 미국은 추모일을 5월 30일에서 5월 마지막 주 월요일로 옮겼다. 토·일요일과 연계시켜 3일 연휴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3일 연휴로 추모일은 전사자들에 대한 정숙한 추모 보다는 흥청망청 즐기는 휴일로 전락되었다. 그래서 다시 5월 30일로 되돌아가자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어있는 상태이다.

영국에서는 Rememberance Day (리멤버런스 데이: 회고(回顧)일)로 지정, 법정공휴일로 삼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미국과 같이 메모리얼 데이로 한다.
미국, 영국, 캐나다 등 대부분 국가들에서는 현충일을 ‘추모일’ ‘회고일’이라고 한다. 국가수호를 위해 생명을 바친 영웅들을 ‘추모’ ‘회고’하기 위해서이다.

우리의 ‘현충일’도 ‘추모일’로 개칭돼야 한다. ‘추모일’이란 말 그 자체가 마음을 경건한 조의(弔意)로 가라앉게 하며 옷깃을 여미게 한다. 동시에 부모님의 제사 날 처럼 엄숙한 분위기로 감돌게 한다.

그에 반해 ‘현충일‘은 유가적(儒家的) 충성심 발현을 강요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장렬히 산화한 영웅들을 위한 추모의 날 이라기 보다는 정부가 충성심을 강요하기 위한 날로 받아들여진다.
실상 현충일을 영어로 직역한다면 Loyalty Day (로열티 데이) 또는 Patriot ic Day (페이트리아틱 데이)로 했어야 옳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현충일을 미국과 캐나다처럼 ‘메모리얼 데이’로 한다.

한국은 영어로는 현충일이 아니라 ‘추모일’로 쓰고 있으면서도 한글로는 ‘현충일’로 표기, 모순을 드러낸다. 현충일의 영어 명칭을 ‘메모리얼 데이’로 한다는 것은 우리 정부도 오래 전 부터 현충일의 뜻이 ‘추모일’임을 인지하고 있었음을 반영한다.

현충일은 ‘추모일’로 개칭되어야 한다. 남의 나라를 따라가기 위해서가 아니다. 조국을 위해 산화한 선열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그리고 국민들의 경건한 추모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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