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방미·방중 이후 “청와대 대형이벤트 준비 중”

[일요서울 ㅣ 오병호 프리랜서] 개성공단 사태를 계기로 냉각 국면으로 돌아선 남북관계가 좀처럼 진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우리 정부와 북한은 서로 엇갈리는 입장차이만 확인했을 뿐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어 남북관계는 한치 앞을 예상하기 힘들게 됐다.

그러나 일부 북한전문가들 사이에서 “남북관계에 큰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이 지난 6일 남북 당국간 회담을 제의한 데 대해 우리 정부가 장관급 회담을 역제의 하면서 남북대화의 물꼬가 트이면서 부터다.

정부는 나아가 개성공단 정상화를 비롯, 금강산 관광 재개, 이산가족 상봉 문제 등을 합의하는 한편 북핵문제에 대해도 조심스럽게 접근해 북핵 6자회담 재개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이번 당국 간 회담은 북한이 먼저 제의한 이상 결과적으로 성사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무엇보다 북한과의 회담은 이번 정부 들어 처음 북한과 소통하는 것인 만큼 중간 과정의 진통은 예상됐던 부분이라는 일반적인 견해다.


이번 남북 당국 간 회담이 재개될 경우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의 근간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탄력을 받게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남북대화의 진전에 따라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본궤도에 오를 경우 남북관계는 이전 정부와는 전향적으로 다른 차원에서 진전될 공산이 크다. 특히 대선공약에 명시된 북한 인프라 확충과 국제투자 유치 등을 아우르는 한반도 경제공동체 건설을 향한 행보가 빨라질 수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당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3단계로 대북 인도적 지원→농업·조림 등 낮은 수준의 남북 경제협력→교통·통신 등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비전코리아 프로젝트 실현을 밝힌 바 있다.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궁극적으로 남북이 신뢰를 바탕으로 한반도 경제공동체를 건설하고 이를 통해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한반도 경제공동체’나 ‘비전코리아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정부 관계자나 박 대통령 측근들도 각론의 실천 방안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동북아 그랜드 플랜 부상

최근 박 대통령이 제시한 DMZ 내 평화공원 조성방안에 남북한 경제협력지구 성격의 제2 개성공단을 넣는 안도 함께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주목을 끌었지만 국토부는 이를 부인했다.

이는 정부가 대북해법을 명쾌하게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런 상황에서 2000년대부터 남북경협을 꾸준하게 추진해온 해외동포지원사업단의 '동북아 그랜드 플랜' 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남북의 통합, 특히 민족 통합에 관심이 많은 해외 동포들을 중심으로 추진돼 온 이 프로젝트는 남북한을 축으로 러시아와 연계해 동북아를 공동 발전시킨다는 내용으로 이미 북한과 러시아 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은 바 있다.

구체적으로 남-북-러를 잇는 경연선(서울-연해주), 38선하(휴전선 접경지역-경연선), 간도선하(신의주-혜산-청진-경연선) 등 교통망을 축으로 남한에는 제2 개성공단에 해당하는 해외동포공단을 조성하고, 북한의 동북지역을 개발하는 한편, 극동러시아 연해주, 사할린, 쿠릴열도 등을 개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동북아 그랜드 플랜' 에는 극동러시아개발은행이 남ㆍ북ㆍ러 개발에 투자 등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돼 있는데 최근 정부가 밝힌 동북아개발은행의 설립 취지와 상당 부분 일치한다.
경연선(서울-연해주)은 한반도 남쪽의 부산(또는 목포)에서 출발해 서울을 거쳐 북한의 원산, 청진을 지나 연해주까지 이어지는 철도 노선을 말한다.

이 프로젝트를 접한 러시아 측은 2000년대 초반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 극동러시아개발위원회를 창립할 정도로 적극성을 띠었고, 북한에서는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선당(先黨)ㆍ선경(先經)파들이 이 프로젝트의 현실화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의 북한 소식통은 “북한의 숨은 최고 실세로 자리 잡은 장성택은 김정은 체제에서 군과 당을 경제일꾼으로 교체하면서 남북경협에 큰 관심을 보여왔다”면서 “최룡해의 방중이 성과 없이 끝난데다 한ㆍ미ㆍ중이 공동보조를 취하면서 장성택이 남한과의 민족경협의 필요성을 재차 언급했다는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 남북출입사무소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남북 간 철도 연결이 핵심

최근 박 대통령이 남북대화에 주도적인 행보를 취하고 북한도 한결 유화적인 자세로 나오고 있는데다 푸틴 대통령이 극동 러시아에 관심을 보이고 있어 ‘동북아 그랜드 플랜’은 점점 구체화되는 분위기다.

김대중 정부 당시 철도 연결 사업이 활발하게 추진됐던 적 있다. 이 사업이 당시 제대로 추진됐다면 남북한은 세계최대 무역허브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과 러시아 그리고 남한의 입장차이가 커 유야무야됐다. 가장 큰 문제는 러시아의 경협차관문제와 중국의 외교문제제기와 북한의 개방문제였다.

그런 의미에서 '동북아 그랜드 플랜'의 경연선 사업은 우리 정부뿐 아니라 동북아 지역의 최대 관심사로 다시 부상할 수도 있다. 이 사업은 무엇보다 한반도의 대륙진출 기지화의 교두보가 된다는 데 의미가 크다.
경연선 노선에는 남북경협을 상징하는 해외동포공단이 들어선다. 이 공단에서 남북이 공동생산한 제품(농식품, 경공업 제품 및 생활필수품)은 북한의 식량난 및 기초 생활난을 해결하고 경연선을 통해 물류비까지 낮출 경우 국제경쟁력은 크게 제고된다.

경연선을 거쳐 TKR(한반도 횡단철도), TSR(시베리아 횡단철도), 그리고 북극항로와 연결되면 남북한 상품의 경쟁력 증대는 물론, 남북에서 다방면의 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

또한 남북한이 경연선을 통해 식량, 농ㆍ임ㆍ해ㆍ수산물, 자원, 인력 등의 교류가 활성화되면 식량 자급자족의 기초를 마련할 수 있고 나아가 통일의 기반을 다질 수 있다.

아울러 경연선의 종착지인 북러 국경지대에 북한의 해외식량공급기지를 조성하면 북한의 식량난 해결에도 적잖은 도움이 된다. 또한 경연선을 통해 남한의 화훼 과일 종묘와 북한의 특산물, 러시아의 에너지, 임산자원을 교환하는 형태를 취하면 3국이 공동 발전할 수 있다.

경연선은 남한이 북한에 막혀 '섬'처럼 고립된 지정학적 특성에서 대륙으로 진출할 수 있는 동맥 역할을 할 수 있다.

38선하는 38(휴전선) 접경지대의 철도와 운하로 연결된 교통로를 말한다. 즉 서해에서 경기도 연천까지는 선박을 통한 운하로, 연천 이후부터는 철도로 연결돼 극동러시아 연해주까지 이어진다.

38선하는 '동북아 그랜드 플랜'과 관련해 경연선과 연결되는 데 주된 의미가 있다. 38선하와 경연선이 연결되면 교통망(물류 수단)으로서 경연선의 가치는 크게 증대되고 이에 따라 38선하의 중요성도 배가 된다. 38선하-경연선-북극항로·미주지역으로 이어지는 코스는 국내 물품은 물론, 중국에게도 수출입 물류효과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38선하-경연선이 활성화되면 파나마, 수에즈 운하에 버금가는 아시아의 물류 허브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

휴전선 접경지대 개발 지역으로 경기도 문산, 적성, 백학, 전곡(연천) 등이 중심 도시이다.

이 지역에는 남한이 주축이 되고 북한, 해외동포들이 참여해 경공업 제품 및 생필품을 주로 생산하는 공단을 조성한다. 특히 '해외동포'공단이란 명칭이 붙을 정도로 해외동포의 참여가 중요한데 이는 10ㆍ4 남북정상회담 합의사항(제8항)일 뿐만 아니라 '동북아 그랜드 플랜'취지에 부합하고 무엇보다 북한의 참여를 유도하는데 효과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북한 서서히 열리기 시작

경색된 남북관계에도 불구하고 변화 예고하는 프로젝트가 하나 더 있다. 동북아시아판 ‘세계은행’인 동북아개발은행(NEADBㆍNortheast Asia Development Bank) 설립 작업이다.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방문을 앞두고 동북아개발은행 설립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동북아개발은행 설립 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이 은행을 2016년 설립할 계획을 추진 중이다.

정부는 동북아개발은행을 통해 북한과 몽골, 극동시베리아 일대에 국내 기업들의 진출을 돕는 한편 북방대륙과 한반도를 연계한 통일경제기반을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몽골ㆍ중국ㆍ러시아 간 철도 연결과 한ㆍ중ㆍ러 가스관 프로젝트, 북한 나진선봉 특구, 중국ㆍ러시아 도로 건설과 같은 북방경제 사업을 활성화 한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 시절인 2006년 9월 28일 북한의 핵 포기를 전제로 동북아개발은행 설립을 제안한 바 있다. 동북아은행을 북한에 지어주고 6자 회담 주도 국가(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가 주주가 되는 형태로 운영, 북한 경제를 발전시킨다는 방안이다.

동북아개발은행은 운영 주체나 방식, 설립 장소 등에서 동북아은행과는 차이가 있다. 정부는 이 은행 설립에 앞서 광역두만강개발계획(GTI) 회원국인 한국ㆍ중국ㆍ러시아ㆍ 몽골이 참여하는 가칭 '범북방프로젝트협의체'를 출범시키고, 이를 동북아경제협력기구로 격상시킨 후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개발은행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은행의 주력 사업은 남북한, 중국, 극동러시아(연해주), 몽골 지역과 연계된 북방경제 활성화로 알려졌다. 은행의 설립 장소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극동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가 유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동북아개발은행 프로젝트를 살펴보면 일찍이 남북한과 러시아가 연계해 추진한 '극동러시아개발은행' 모델을 떠올린다. 2000년대 초, 남북한과 러시아는 강화도 교동도 앞 청주벌에 남북 협력 공단을 세워 남북한은 물론, 극동러시아(연해주)까지 함께 발전하는 그랜드 플랜 '청주벌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여기에 소요될 막대한 자금을 제공할 금융기관으로 극동러시아개발은행 설립을 계획했다.

장석중 (주)극동러시아개발 대표에 의해 1990년대 말 입안된 '청주벌 프로젝트'는 청주벌 개발을 통해 연해주 개발 기금을 마련하고 남한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노동력으로 극동러시아를 개발하는 것으로, 남-북-러 3국에 걸친 사업에 필요한 투자금은 극동러시아개발은행이 담당한다. 이 은행 자본금은 북한이 매판자본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민족자본을 선호하는 것을 고려해 해외동포들이 중심이 돼 투자하는 형태를 취했다.

은행의 설립 장소도 남도 북도 아닌 제3 지역이 바람직하다는 분석을 토대로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를 후보지로 지정했다. 러시아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과 북한 군부의 극동러시아와의 관계 등을 고려한 것이었다.

'청주벌 프로젝트' 는 남북한, 러시아가 2001년부터 이듬해 4월까지 직접 실행에 나섰다. 2001년 4월 러시아 무역대표부 일행은 몇 차례 청주벌 현장을 방문했고, 같은 해 7~8월에는 북한에서도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관 직원들이 북한 관계자들과 청주벌 너머 북측 일대를 답사했다. 2002년 4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장석중 대표를 비롯한 이 프로젝트 관계자들을 모스크바로 초청하기도 했다.

이 프로젝트는 정부 차원에서도 진행됐다. 2001년 2월 김대중 전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제주도 정상회담 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동북아 공동개발 및 38(휴전선) 접경지역 개발기금 마련을 위한 극동러시아개발위원회(한국.러시아 총리 직속기관)를 창설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기구는 러시아에서만 창설됐고, 한국에서는 당시 정부 사정으로 미뤄진 채 아직 설립되지 못했다.

동북아개발은행은 설립 취지가 '동북아' 개발이지만 북한이 주요 대상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프로젝트의 내용은 앞서 '청주벌 프로젝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즉 해외동포지원사업단이 러시아개발은행을 통해 '청주벌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휴전선 접경지역에 '해외동포공단'을 조성하는 등 남-북-러 3국이 공동 발전하는 방식안이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방미 과정에서 언급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구체적인 실천 방안과도 부합한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5월 21일 러시아와의 경제 협력, 정치·외교 관계 강화를 위한 새 '북방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남ㆍ북ㆍ러 3국이 연계된 극동지역에 한국이 적극적으로 관여할 것을 시사했다.

6월 말로 예정된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 과정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남북문제가 심도 있게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방중을 계기로 남북관계에 획기적인 변화가 올 것이라는 게 대북소식통들의 분석이다. 동북아개발은행 뿐만 아니라 '청주벌 프로젝트'나 극동러시아개발은행도 한층 관심과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ilyoseoul@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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