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경제사정이 좀처럼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새 정부 임기 초 사정 정국이 대기업들의 목을 한껏 움츠리게 하는데다, 일본 엔저 위세까지 겹쳐서 국내시장을 얼어붙게 만든다. 일본정부의 인위적 경기 부양책 일환으로 4년 만에 달러당 100엔시대가 열리더니 올 상반기에 110엔 되고, 연말에는 120엔에 근접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최근 실태조사에 보면 달러당 엔화 값이 110엔일 때 국내 수출 중소기업 총수출이 15%가까이 감소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엔저 피해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 해외건설 분야까지 최근 해외건설시장에 공세적으로 나서고 있는 일본 태도로 봐 여타 수출기업과 마찬가지로 엔저 영향권에 들것으로 보인다. 이미 일본과의 경쟁이 시작되고 있다. 해외 원자력발전소 건설 시장이 그렇고, 우리 건설사들이 진출을 확대하려고 하는 동남아시아 지역이 주요 경쟁국으로 일본을 맞을 공산이다.

이 같이 우리 경제는 안팎 꼽사둥이가 돼가는 현상이다. 말하기가 좋아서 고용창출을 부르짖고, 경제민주화를 찾고, 갑(甲)을(乙) 논란을 확대시키고, 온 사방이 정부쪽에 대고 경기부양책을 따지고 있지만, 어느 한구석도 시원해질 묘안은 없는 터다. 먼저 고용창출이 되려면 기업이 시설투자를 해야 한다. 공장이 들어서야 일자리가 얻어지고 돈이 돌게 되는 이치를 모를 까닭이 없다. 돈이 돌면 경기회복이 되고 국민생활이 안정을 찾기 마련인데, 이걸 지금 국민이 막고 있다는 생각은 왜 안 하는지 모르겠다.

과거 기업투자를 위한 환경조성은 분명한 정부 몫이었다. 공장부지 조성을 위해 그린벨트를 풀어주거나, 토지수용령을 발동시켜 기업들의 땅 매입을 수월하게 하는 등등의 모든 것들이 ‘산업화’ 명분 아래 국가가 해줘야 할 몫이었다. 지금 우리 기업들이 ‘그때 그 시절’을 노래할 만한 꿈속 같은 기업환경이었다. 그때는 강성노조가 발붙일 수도 없었고, 시민사회단체의 현장점거농성에 가로막혀 공사를 중단하는 사태 따위는 언감생심 일어날 수 없었다. 국민이 쌍수를 들어 ‘산업호’의 질주를 환영해 마지않은 시절이었다.

얼마 전 미국 GM사의 댄 애커슨 회장의 “한국 GM의 통상임금 문제 때문에 기업경영이 어렵다. 통상임금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발언파문이 일어났다. 애커슨 회장은 통상임금 문제만 해결되면 한국GM에 80억달러(8조원)를 새로 투자하겠다는 취지였다. 이에 대해 “글로벌 갑(甲)인 GM의 오만방자함”이라는 맹비난이 쏟아졌다. 애커슨 회장의 한국 철수설에 명분이 가해진 꼴이다.

오늘의 우리 노조 실태가 어떠한가, 현대자동차 노조가 정년퇴직자나 장기근속자 자녀를 우선 채용하도록 하는 올해 노사협상 요구안을 내놓았고, 기아자동차는 이미 장기근속자의 자녀를 우선 채용하기로 노사가 합의를 했다. 합의안은 1차합격자의 25%를 장기근속자 자녀에게 할당하고 면접 가산점을 줘서 우선 채용토록 한다는 것이다. 노동 권력의 ‘화룡점정’이라 할 일자리 세습이 가능해진 것이다.

일부 대기업의 강성노조는 경기가 좋든 나쁘든, 회사 이익이 있든 없든, 해마다 회사 발목을 잡고 별별 혜택을 요구한다. 기업입장을 두호하자는 게 아니다. 국내 제반 상황이 기업들이 신나게 투자할 환경이 아니라는 뜻이고, 이제 글로벌시대 기업들 투자 환경 조성은 우리 국민 몫이라는 사실을 단단하게 짚자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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