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식 서울 중구청장은 서울 중구 신당동에 ‘박정희 기념공원’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이 5·16 군사 쿠데타 때 까지 살던 집 일대를 286억 원이나 들여 박정희 기념 공간으로 확대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박근혜 대통령은 6월 10일 신당동 공원 조성에 반대했다. 박 대통령은 “국가경제가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국민 세금을 들여서 기념관을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따뜻한 마음으로 방문해서 마음으로 기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최 청장은 다음 날 기념공원 조성을 밀고 갈 것이라고 했다.

최 청장은 박정희 공원 조성을 고집하지 말고 2년 전 싱가포르의 국부로 추앙받는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의 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리콴유는 올해 90세다. 2년 전인 2011년 1월 그는 “내가 죽거든 지금 살고 있는 집을 기념관 같은 국가적 성역으로 만들지 말고 헐어버리라는 말을 가족과 내각에 말해놓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인도 초대 총리 네루나 영국의 위대한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집도 일정한 기간이 지나고 나서 결국 폐허가 됐다”며 자기가 집을 남겨둠으로써 이웃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고 하였다. “내집이 남게되면 주변 건물들을 높이 올릴 수 없게 돼 이웃들이 괴로움을 당하게 되지만, 집이 철거되면 도시개발 계획을 바꿔 주변 건물들이 더 높이 올라가고 땅값도 올라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리콴유는 싱가포르 출생으로 영국 식민지 시절 케임브리지 대학 법학과를 나왔다. 귀국 후 1959년 영국연방의 자치정부 시절부터 싱가포르 총리를 맡았고 1990년 물러날 때 까지 무려 31년 동안 이 도시국가를 지배했다.

그의 탁월한 영도력으로 싱가포르는 재임 기간 세계적인 금융과 물류 중심지로 올라섰으며 아시아의 스위스로 우뚝 솟았다. 그는 신생 독립국들을 모두 망쳐버린 부정부패를 철저히 척결했으며 법과 질서를 확립했다. 몇 년 전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세계 부패지수 보고서’에는 싱가포르가 ‘청렴도 1위’로 올라있다. 다만 리콴유는 싱가포르 시민의 자유를 유보한 권위주의 통치자라는 비판을 받는다. 그러면서도 그는 세계가 인종을 초월해 존경하는 정치지도자이며 싱가포르에서는 국부(國父)로 추앙되고 있다.

리콴유 전 총리가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기념관 같은 국가적 성역으로 만들지 말고 헐어버리라”고 당부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기념관이란 것은 시간이 흐르면 잊혀져 ‘폐허’로 변한다는 데서였다. 그의 냉철한 역사의식이 존경스럽다. 다른 하나는 이웃 주민들에게 재산상의 손실을 준다는 것이었다. 국부다운 애민애족 사상에 머리가 숙여진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기리는 기념관과 공원들은 적지 않다. 서울 상암동의 박정희 기념 도서관, 경북 구미의 박정희 생가공원, 경북 포항의 새마을운동 기념관, 청도의 박정희 동상 등이 그것들이다. 그밖에도 여기 저기서 새로 박 전 대통령 기념관 조성이 검토되거나 건립계획 중이다. 이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기념물들은 충분하다.

5·16 때까지 살던 집을 기념공원으로 확대 조성한다는 것은 기념사업의 중복일 뿐이다. 수백억 원을 들여 거창하게 확대할게 아니다. 기존의 구택을 “시민들이 따뜻한 마음으로 추모할 수 있도록”하면 된다. 리콴유의 유언대로 이웃 주민들에게 폐가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세금을 과도하게 축내서도 안 된다. 지도자의 위업은 마음으로 기려야 한다. 돈을 처바른 기념물로 대신해선 아니 된다. 그런 짓들은 북한에서 김일성·김정일을 위해서나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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