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 퍼즐조각 맞추기

 
[일요서울 | 김나영 기자] 금산분리 강화를 위한 법안들이 본격적으로 발의되면서 이달 중 임시국회에서는 금융규제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예상된다. 앞서 새 정부는 취임 전부터 경제민주화를 위한 공약을 내걸었고 여기에는 금산분리 강화도 포함돼 있었다.

사실상 ‘은산분리’인 우리나라에서 금산분리가 강화될 조짐을 보이자 직접적인 대상으로 떠오른 대기업과 금융사들은 물론 각계각층에서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금산분리 강화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짚어보고 향후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좋을지를 가늠해 본다.

<사진=뉴시스>

현행 은산분리만으로는 미흡…보험ㆍ증권도 분리 논의
주인 없는 금융사 괜찮을까…일부 대기업 겨냥 논란도

금산분리란 일반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을 갖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제한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금산분리를 채택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모든 금융사가 아닌 은행만 제한하는 ‘은산분리’에 가깝다.

현재 대기업집단은 은행을 제외한 보험ㆍ증권ㆍ카드사 등의 소유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삼성의 경우 삼성생명ㆍ화재ㆍ증권ㆍ카드 등은 그룹 내 계열사로 보유할 수 있지만 ‘삼성은행’은 가질 수 없다.

최근에는 경제민주화가 최대 이슈로 떠오르면서 금산분리 강화 관련 움직임도 속도를 더하고 있다.

지난 10일에는 강석훈 새누리당 의원이 대기업집단의 금산분리를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앞서 지난해에는 김상민 새누리당 의원과 김기식 민주통합당 의원도 금산분리 강화 법안인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금산분리 강화 법안의 주요 내용은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한도를 현행 최대 9%에서 4%로 낮춰야 한다는 것과 15%까지 허용되던 대기업집단 금융사의 비금융계열사 주식 의결권 행사를 5%만 허용해야 한다는 것, 대기업이 금융사를 보유하려면 중간 금융지주사를 추가로 설립해 자회사로 편입해야 한다는 것으로 간추려진다. 이는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금융지주회사법, 공정거래법 개정을 모두 아우르는 것이다.


“금융사가 재벌 사금고로 전락해선 안 돼”

현재 정계를 비롯해 일부 학자들과 시민단체들은 금산분리를 강화하자는 쪽에 서 있다. 재벌들이 금융사를 사금고화하는 것을 방지하고 대기업에 치우친 경제력 편중을 막아 금융 안정성을 끌어올리자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재벌들은 그룹 경영을 위한 자금줄로 금융사들을 이용해 왔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결합을 방치하면 산업자본이 금융사를 사금고화해 자사 계열사 확대 등 그룹지배 목적으로 악용할 가능성이 생긴다.

법안을 발의한 강 의원은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면 재벌총수들이 고객의 돈을 이용하여 지배력을 유지·강화하려는 시도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며 “지난 대선에서 약속했던 경제민주화를 실천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또 이기웅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간사는 “재벌은 현행법의 허점을 이용해 지주회사에게만 적용되는 금산분리 원칙을 피해 제2금융권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다”면서 “이를 통해 다시 산업자본 등 계열사에 재출자함으로써 총수의 지배력을 확장하며 계열사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일 큰 타격은 삼성…롯데ㆍ동부ㆍ한화도 ‘덜덜’

반면 재계와 주요 경제단체들은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금산분리를 강화하면 주인 없는 금융사가 많아져 적대적 인수ㆍ합병(M&A)에 무방비로 노출된다는 것이다. 또 아무리 금산분리를 강화해도 금융사의 사금고화를 근본적으로 방지하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 논란이나 자본건전성 저하를 부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김미애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금산분리 또는 은산분리에서 우려하고 있는 금융의 사금고화와 금융건전성 문제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건정성 규제나 대주주 지배권 남용 등과 관련된 규제를 통해 통제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며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지주회사 제도로의 전환을 유도하거나 지배구조 개선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민세진 동국대 교수는 “과거에는 금융사의 사금고화가 어느 정도 가능했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각종 법률과 시행령이 신설된 이후에는 사금고화 자체가 거의 불가능해졌다”면서 “그럼에도 금산분리 강화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는 것은 대기업에 대한 불신이 기저에 깔려 있는 것으로 금산분리를 법제화시킨다고 해서 부의 편중현상과 대기업 불신이 해소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대기업집단의 금융사 소유 현황은 지난해 4월 기준 삼성그룹이 삼성생명ㆍ화재ㆍ카드ㆍ증권 등 11개사로 가장 많다. 다음은 롯데그룹이 롯데카드ㆍ손해보험 등 10개사, 동부그룹이 동부화재ㆍ증권 등 10개사로 공동 2위였다. 한화그룹은 한화생명ㆍ증권 등 9개사, 태광그룹은 흥국생명ㆍ증권 등 7개사, 동양그룹은 동양증권 등 6개사로 각각 3~5위다.

만약 금산분리 강화 법안이 통과되면 타격을 받는 순서도 이 순위에 따라 결정되다시피 하는 까닭에 해당 대기업들의 행보에 촉각이 쏠리고 있다.

<김나영 기자> nykim@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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